작성자: Mun Tok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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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수정하다--잠깐 나가게 되어 나중에고치기로 하였는데, 평화유지군 봉사 활동?을마치고
밤에 돌아왔습니다...계속 이어서 쓰는데 일부 내용을고치다 보니 새 파일로 올리는 것이 낫다고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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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님이 올린 사진을 보고 처음엔
혐오감이 생겼다가,,
갑자기 의문이 생겼다..
파리가 얼마나 뛰어난 존재인가..
사람이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고를 가지고 살아갈 때 다시 이에 '날고'를 추가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파리가 상당히 재빠른데, 어떻게 체포를 그것도 쌍으로 했는지 의문이긴 한데,
보다 중요한 의문은
파리가 물체를 대부분 정확히 보고 날라다니는 것 같은데,
왜 약간은 끔직해 보이는 암파리를 좋아하는가--이다.
뭐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면
세상에 이상한 일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보면 참 이상하지 않은가..
공중을 서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두 파리가
prince님의 보고에 의하면 1시간 이상을 같이 저러고 있었다니....
그러니까 한편으론 많이 하고 길게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왜 수파리는 많고 많은 사람들가운데 암파리를 좋아하는가...
이런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 일어난다..
대부분 사람들은 다 암파리의 모습을 보고 추하다고 보는데
이 수파리만 암파리를 아름답다고 잘못 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수파리는 암파리의 아름다움을 올바로 아는데
사람들만 암파리의 아름다움을 잘못 무시하고 있는건가...
이 파리사진은 little님이 처음 찍어 올린 것인데,
문제가 많다고 해서 삭제되었는데,,
다시 찾아 올릴까 말까 고민중인데,,
굳이 안 올려도 되지 않을까.....( 꼭 필요하다고 보면 몰라도 )
--- 그러나 참조 자료상 두 대조적 사진자료가 필요하다고 보고,,결국찾아 두 종류 사진을 올려 놓아 보기로 합니다. --
여하튼
사람과 파리의 입장을 놓고 이 두 입장을 왔다 갔다 해가며
생각하면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사람을 놓고 생각해보면,
남자는 아무리 자신이 추남이라도 미인을 좋아한다.
아마 그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이야 어떻든 미남을 좋아할 것 같다.
- 최근 보고에 의하면 돈 많고 명짧은 여자-남자라는 설도 있습니다. -
여하튼 남자가 미녀를 좋아할 때
꼭 거울을 보고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난 후
누구를 좋아하고 안하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이 점을 우선 하나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기타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정말 자신이 어떤 재물을 가질 자격이 있다거나,
그에 적절한 노력을 했다거나 안했다거나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은 누구나 많은 재화, 아름다운 여인, 멋진 듬직한 남자 등을 원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람인 이상 그렇게 거의 차별없이
사람들 간에서 원하는 내용이 서로 엇비슷하기에
또 문제가 발생한다면 발생한다.
즉 서로 같이 원하는 것을 차지하려고 하고
이를 원인으로 서로 다투고
또 미워하기도 하고
그러다 누군가 원하는 것을 못 차지하면
그렇게 만든 원인으로 보이는 다른 이를 미움으로 대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런 모습이 사회적 문제의 원인의 하나고.
이런 관계로 서로 미움 나쁨을 서로 주고 받으며 되풀이하기에,
서로의 불행도 커진다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여하튼
파리도 눈이 있어서 물체를 보고 날아다니고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할 텐데
어찌 눈이 있으면서
그 추한 암파리에 붙어 지내려 하고
암파리는 그 추한 수파리를 피하지 않고 맞아 들인다는 말인가.
파리들의 눈이 잘못되었나,
이것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눈이 잘못되었나.
직접 알 도리는 없다해도 미루어 짐작하건대
눈으로 보고 얻는 모습까지야 파리나 사람이나 서로 엇비슷하리라고 보고,
그 다음 부터 그것을 좋다 싫다 느끼고 판단하는 부분부터 서로 달라서 그렇지 않을까?
여하튼 결과적으로 이렇게 서로 좋아함과 싫어함이 다른데
이를 다시 뒤바꿔
수파리가 암파리를 싫어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쁜 연예인 주변에 구름처럼 모여들어
사인해달라고 나서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보기도 힘들다.
또 반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쓰레기통 주변에서
아름다운 암파리나 잘생긴 수파리를 찾아 헤매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또 이렇게 보기도 힘들다.
사정이 그래서,
사람이 암파리나 수파리를 혐오하고
아름답지 않다고 여기고 멋지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수파리가 암파리를 좋아할 때의 좋아함과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좋아하고
여성이 멋진 남성을 좋아할 때의 좋아함에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가.
좋아함의 연유와 과정이야 서로 다르지만
그런 결과 무언가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자세나 내용만은
파리나 사람이나 같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마치 장난감을 좋아하는 아이가 장난감을 바라보고 좋아할 때의 느낌이나,
어른이 새로 산 벤츠 자동차를 바라보고 좋아할 때의 느낌이나
그 좋아함이야 엇비슷하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가 좋아하는 좋아함만 가치가 있고
다른 이가 좋아하는 좋아함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사실 남들이 좋아할 때 그 좋아함 슬퍼함 등은 모두 그처럼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무시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도
다른 사람, 다른 생명이 좋아하고 싫어함에 대해 이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함만 잘 이해하고 존중하는 경향을 갖는다.
심하면
마치 사람이 예를 들어 수파리가 암파리를 좋아하거나
썩은 음식찌거기를 집착하여 달라붙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듯,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좋아해 집착해 몰두하는 것만
가장 좋은 것이라 고집하여 나아가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그런 좋음을 갖게 한 대상에 좋음을 그대로 투영시켜 고집한다.
예를 들어 장미꽃이 잡초보다 좋게 느껴졌다면,
장미꽃에는 본래 잡초보다 좋음이 많다...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고집해 머무른다.
그래서 사실
사람들이 기호가 같아 하나의 대상을 놓고 다퉈도 문제지만,
또 서로 기호가 너무 달라 서로 이해하지 못해 반목하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보고 싶어하는 영화 하나만 놓고도 싸우고
여행갈 장소를 놓고도 싸우고
저녁식사 메뉴를 놓고도 싸우는 것도 이런 모습의 하나다.
그래서 자신과 달리 다른 것을 좋아하는 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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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들 각 입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이들은 모두 수파리가 암파리에 집착하는 마음이나,
어떤 한 사람이 소중하게 사랑하는 이를 향해 갖는 마음이나
큰 차별없이 엇비슷한 상태의 마음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입장에서는 이 말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
마치 자신이 몹시 혐오하는 파리와 사실은 같다는 말처럼
도무지 납득과 이해를 할 수 없게 되고,
심지어 자신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욕하는 것처럼
오해해 기분을 상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세상의 남성이 누군가 어떤 여성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 각 남성들이 각기좋아하는마음에 어떤 큰 차이가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말하면 조금 쉽게 이해를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다른 이가 좋아하는 여성이 자신이 좋아하는 타입이 비록 아니더라도,,
그런데 이 말이 앞 말과 사실은 같은 이야기다..(어이쿠~)
그리고 다시 이 부분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좋음만을 고집하고
다른 이의 좋음을 무시하려 하기 쉽다.
이제 그렇다면 그렇게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하여 고집하고 있을 때
그런 좋음에 그 정당성의 확고한 기준과 근거를 찾을 수 있는가.
즉 사람이 좋아하는 어떤 대상에 일체의 다른 모든 생명이
거기에서 자신처럼 좋음을 반드시 같이 느끼고
동의해줘야 할 어떤 필연적인 요소가 거기에 들어 있는 것인가.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것은 찾을 길이 없다.
단지 찾을 수 있는 것은 이유와 근거까지는 정확히 모른다해도
자신이 지금 좋아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는 것만을 반복해 되뇌이게 된다.
그래서 그 좋음은 결국 자기나 자기와 같은 입장의 몇몇 동호인들에서만 확고한 내용으로 남게 되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그것은 사실 또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면
엉뚱한 집착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마치 각 연예인 별로 팬 그룹이 서로 달라, 심지어 이를 가지고
서로 다투는 현상은 그래서 발생한다.
그런데 각기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좋아하여 집착해 머무르는 것이고,
그것을 바로 달리 말하면 앞의 상태처럼
수파리가 암파리에 대해 집착하고
암파리가 수파리에 대해 집착하여
같은 수파리나 암파리들끼리만 서로 그 심정을 이해하는 그런 좋아함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자신에게서만은 확고부동한 어떤 대상이나 상태에 느끼는 좋음에
본래 절대적인 좋음의 실체가 없다면,
그렇다면 이제 거기에 어느 정도 집착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사실 이런 사실로부터 가장 먼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비록 각자가 각기 다른 것을 좋아하고 집착한다는 사실만은 동의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가 좋아함에 집착하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각자 자신의 아이들이 사랑스럽고 예쁘다고 여기고
또 반대로 다른 이의 아이는 별로 그다지 예쁘지 않고 오히려 극성맞고 귀찮다고 속으로 여기게 되고,
또 사실은 대부분 그러함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서 내 아이가 가장 중요하지,
앞과 같이 다른 아이를 다른 사람이 또 그처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이
도대체 뭐 그리 중요한가 하는 자세를 갖게끔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현재 좋아함을 그대로 자신만은 절대적으로 고집해
계속 나아가면 되고 그렇게 나아가겠다는 자세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실 제일 간단하고 마음편하게 사는 방안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남들이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는 남들에 대한 관심을 일체 끊고
그저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은 내게 분명하게 좋은 것이고
싫다고 느끼는 것은 내게만은 분명하게 싫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내가 좋은 것을 내가 추구하며 살면 그뿐이다..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를 구체적인 경우를 하나하나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즉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술꾼이 술을 좋아하고,
마약중독자나 게임중독자들의 마약이나 게임을 좋아하고 집착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런 상황에서도 그 각각은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 고집하고 집착한다.
하지만 그렇게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그 입장에서는 좋음이 분명하고 명확함에도 그러나 좋지 않다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나의 당장의 좋아함이
나 자신과 그리고
나와 관련된 우리,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생명에게
좋음을 오래 오래 주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때문이다.
술, 담배, 게임, 마약 등이 그렇게 당장 자신에게 좋은 맛을 주듯
장기적으로도 아무런 불쾌를 주게 되지 않고,
가족이나, 사회에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초등학교 급식 메뉴에도 대마초 1대 담배 1갑 알콜 반잔씩 꼭 넣어 주고
매일 일정시간 강제로 게임을 하게 해야 마땅할 것도 같은데,
상식적으로 그렇지는 않음은 누구나 쉽게 안다.
그래서 무언가 이 양쪽 극단의 해석이
모두 다 적절하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1 내가 정말 좋다고 확신하여 집착하는 것에 극단적으로 절대성을 부여하고 이것만을 고집하는 것도 하나의 극단이다.
1 또 내가 정말 좋다고 확신하고 집착하는 것을 포함해 일체 각각의 다른 주체가 각기 달리 갖는 그런 좋음은 일체 다 무의미하다고 고집하는 것도 또 하나의 극단이다.
1 우선 내가 정말 좋다고 확신하여 집착하는 것에 극단적으로 절대성을 부여하고 이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우선 그 내용이 주체나 시기나 상황별로 매번 달라진다는 것이 우선 그 극단적 주장이 옳은 입장이 아님을 말해준다.
또 각 경우를 검코해보면 앞의 예처럼
내가 당장 분명하게 좋음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사실은 나자신에게 정말 좋은 것은아닐 수 있다.
더욱이 오래 오래 모두에게 좋은 것 역시 아닐 수 있다고 탄력성을 가져야 한다.
그 반대도 그렇다.
즉 내가 정말 당장 싫다고 분명하게 느끼고 확신하는 것이 또 나 자신에게 나쁜 것이 아닐 수 있다.
오래 오래 모두에게 나쁜 것이 역시 아닐 수도 있다.
우선 이런 사실들을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최소한 너무 자신의 애착 또는 반대로 증오가 강해서 도저히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때에도
앞과 같은 이유로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좀 탄력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근거가 확실하고
더 이유를 따지고 물을 것도 없이 분명하다고 느끼고 있다하더라도
그러나 그것은 사실은수파리가 암파리를 좋아하는 것과 같이
그래야 할어떤 확고하고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단지 환각에 걸리거나 최면같은 상태에 빠져 그저 이유나 근거없이
맹목적으로 좋게 느끼고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 각 주체가 그 내용을 달리해 좋아하고 집착한다고 할 때
그런 사정은나만 그런 것은아니고 사실은 파리도 또 다른 각각도 사정은 다 마찬가지일 수 있음도 의미한다.
1. 그러나 이제 앞과 같은 입장을 반대로 극단적으로 나아가서
나 자신이던 또는 다른 주체이던 그처럼 절대적으로 확고부동한 좋고 나쁨은 아닌 것이므로,
그런 이유로 일체 좋고 나쁨의 느낌이나 생각을 갖는 것은
또 다 일체 근거없이 갖는 부질없고 무의미하기만 한 것들인가..
본래는 그 확고한 기초나 절대적 근거는 없다.
또그 때 그 때 자신과 대상 그리고 상황이 화합하여 좋음을 느끼게 되어 사정마다 그 내용이 달라진다.
마치음식은 같지만, 배고플 때는 그 음식이 좋고 배부른 후에는 그 음식이 싫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처럼 변화하고 절대적으로 고정되는 내용은 찾기 힘들다.
그러나 그렇다해도매순간 그렇게 좋아하고 싫어함 그것만은 또 분명하다.
또좋아함의 근거가 앞처럼 유동적이고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개인의 활동의 최종 종착적 목적점은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이 좋음 이외에는 찾기 힘들다..
결국은 모두 각기 좋은 것을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좋음을 완전히 배제하고 무시하면
개인적으로 삶의 목적이나 이유도 찾을 수 없게 되고
더 나아가 선이나 윤리의 기초도 세울 길이 없게 된다.
선도 결국은 각 개인의 좋음을 바탕으로 할 때만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거가 절대적이지 않은 상태로 각 주체가 달리 좋아하는 것을 일체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은
또 다른 극단으로 보게 된다. 한마디로 문제점이 있는 입장이 된다.
이제 자신의 좋음만을 극단적으로 고집함도 문제가 있고
또 일체 좋음을 배제하고 무시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면
어느 것이 비교적 적절한 자세인가..
우선 내가 좋아하는 분명한 좋음을 떠나
좋고 싫음의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나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좋아해야 정말 올바른(?) 상태라고 할 것인가..
이제 나보다 더 우수한 다른 존재( 파리 입장에서 사람과 같이 어떤 뛰어난 다른 존재?)의 입장을 받아들여
그 존재가 좋아하는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이 따르는 것을 정말 올바른 상태라고 할 것인가..
예를 들어 사람이 다른 여자나 남자를 좋아하는 것이라면
파리는 이제 암파리 수파리를 좋아하지 말고
사람의 좋고 싫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할 것인가.
파리가 그렇다면 다른 문어나 참새도 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할 것인가..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좀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데 파리가 인간에 대해 그렇듯,
사람도 그런 성격을 갖는다.
사람은 사실 스스로 생각하건대 사람보다 더 높고 우수한 지적 존재를 직접 만나지는 못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보다 뛰어난 어떤 초월적 존재를 약간 추상적으로만 그리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 기준을 그 존재를 기준으로 좋고 나쁨으로 바꿔 다시 고집하는 것만을올바르다고 하기는 곤란함을 위 예가 말해준다.
그래서 만일 이제 어느 주체를 특정해 그 주체만을 이 좋고 나쁨의 판단에서 절대적 기준으로 놓고
그 존재의 좋고 나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름의 기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런 입장이 타당하지 않다면,
이제 또 달리 모든 주체의 기준을 다 받아들여 수많은 존재의 좋고 나쁨을 다 받아들여 적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제 그러면 수많은 각각의 다른 기준들을 받아들여 다 좋아함이올바름의 기준인가..
그래서 사람은 그가 만일 남자라면
널리 광범위하게 암 오랑우탄, 암 원숭이, 암캐, 암소, 암파리 이런 것을 다 망라해서 좋아해야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할 것인가...
사실 그런 입장도 어처구니 없기는 마찬가지다.
또 그렇게 자세를 취하면 좋고 나쁨이 뒤섞여 어떤 결론을 얻기 힘들다.
예를 들어 썩은 음식은 자신은 몹시 혐오스러운데 이를 좋아하는 주체도 파리를 포함해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 이유로 자신이 싫어하기도 좋아하기도 곤란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되지도 않지만, 그런 상태가 올바르다고 해야 할 근거도 찾기 힘들다.
결국 위 입장은
누군가 다른 주체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 - 특히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존재가 갖는 기준을 그대로
자신의 좋아함과 싫어함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경우이거나,
아니면 널리 다른 주체들의 기준을 모두 넓게 받아들여 자신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경우이지만,
우선 본능적으로 자신이 갖는 좋고 싫음은 자신에게 분명하고
다른 주체의 내용들은 분명하지도 않고 직접적이지도 않기에
그 이론의 부당함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실현이 잘 되지 않게 된다.
특히 추상적으로 추리하고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어떤 아주 뛰어난 존재의 경우
그 존재를 자신이 직접 만나 그 존재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를 사실은 명확히 모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사실 그 추상적인 뛰어난 존재가 갖는다고 여기는 좋음과 싫음의 기준은
자신의 좋음과 싫음에 밀접하고 또 이를 기초로 이성적으로 추리해낸 내용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뛰어난 신과 같은 존재를 생각하고 그 신을 위해 자신이 제사를 지낸다고 할 때
그 신을 위해 제사 음식으로 만드는 것들은
사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들로 채우게 되는 현상과도 같다.
또 반대로 말하면 어떤 추상적인 신의 뜻이라고 내세우는 것들은
그 주장자의 개인적인 좋음과 밀접하고, 또 거기에서 출발한 이성적인 추리에 기초하여
구상된 좋음인 경우가 많다는 의미도 된다.
**
∴ 결국 각 개인이 좋음을 존중하고 그러나 오직 그것만 절대적으로 고집하는 양 극단을 떠나 적절한 자세를 찾다보면
다음과 같은 입장을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 극단적으로 수파리의 암파리에 대한 애정을 놓고 사람이 생각해본다면,
사람은 암파리나 수파리를 좋아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그렇지만, 수파리나 암파리가 서로에 대해 갖는좋아함에서 '그 좋아함'만은 인정하고 수긍해 받아들여줄 필요가 있다.
이는 각 주체가 무언가를 달리 좋아한다는 사실 그리고그 좋아함은
자신이 무언가를 좋아함과 같은 성격이고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그리고 다시 그 좋아함을 바탕으로 그 대상에 대한 가치도 같이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비록 파리를 좋아하게 느끼지는 않지만,
수파리가 암파리에 대해 갖는 '좋음'도 인정하고
또 수파리나 암파리가 갖는 가치도 최소한 인정해 준다는 자세가 일단 필요하다.
이 좋음을 바탕으로 놓고
다시 지금의 좋음보다 그 수와 양과 질, 기간의 면에서
각 주체가 얻는 좋음의 크기를 넓히려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게 된다.
더 나아가 그런 이성적인 가치판단을 기초로 노력하여
정말 그 좋음까지 따라 좋아하고 느낄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또 결코 나쁘지 않고 바람직하다고 보게 된다.
이미 예를 매우 혐오스럽고 해충인 파리로 놓고 생각해서
이것을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자신이 시시각각 달리 평가한 좋음의 대상 둘을 놓고 생각하면 우선 쉽게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어릴 때 좋아하던 것과 그 좋음, 또 커서 좋아하던 것과 좋음의 사이는 매우 쉽게 이해가 된다.
또 예를 들어 배고팠을 때 느낀 음식에 대한 좋음을 이제 입장이 달라져 배가 불러 음식이 먹기 싫을 때에도
좋아함 만은 유지하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된다.
이제 다시 주체를 조금 넓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이나 부모로 이 관계를 놓을 때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즉 비록 자신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이나 부모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따라 좋아해주는 일이 조금 쉽게 이해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제 그것이 가능해지면 다시 범위를 넓혀 자신이 애정을 갖는 애완동물을 놓고 생각해도 조금 쉽게 이해가 된다.
이처럼 점차 자신이 사랑하고 심지어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넓혀
사랑하는 대상을 모든 인류로 넓혀 가고
더 넓혀 원수로 넓혀 가고
다시 모든 생명으로 넓힌 가운데,
각 생명이 좋아하는 좋음을 위 예와 같이 다시 생각하면 조금 심정적으로 행하기는 몹시 어렵다고는 해도
또 이 역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어떤 상태가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하면
가능하다면 뒤의 상태가 앞의 상태보다 조금씩 더 낫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성적인 선이란,
결국 각 주체가 좋아하는 - 근거가 절대적이지 않고 유동적인 - 좋음을 바탕으로 놓고
그 주체의 좋음을 수와 양과 질 기간의 면에서 그 좋음의 크기를 이전보다 좀 더 넓게 키워나가는 것이라 보게 된다
그리고 감성적으로도
그와 같은 자세를 익혀 나가는 것을 바람직하다고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바탕에서 모든 생명을 구제하고 보호하는 마음이 열리게 된다고 본다.
사실 이론상이야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 이를 실제로 행하는 것이 힘든가..
자신을 죽이거나 해치려는 원수나, 지극히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다른 이종 생명채, 바이러스, 세균, 기생충, 해충...곤충,
이상한 동물들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런 마음을 벗어나 이들을 넓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또 성인들이 가르치는 내용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이렇게 결론을 이론적으로 도출해 적어 놓기는 하지만,
내 개인 입장을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자신의 좋아함과 그 내용이 먼가..
또 반대로 말하면, 자신과 여러 성인의 상태는
그 만큼 그 상태가 그만큼 멀리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종교가 각기 다르다 해도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와 자신은 얼마나 멀고
모든 생명을 가리지 않고 구제한다는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 등과는 또 거리가 얼마나 먼가 하는
질문과도 같다고 본다...
사실은 그렇다 해도
또 노력해 나아갈 방향은 또 결국 그런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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