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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세계 종말 예언과 추구미 작전의 개요

[ 요약 ]

○ 세계의 종말 예언과 추구미 작전의 개요






● 올해의 마지막 달에 진입하였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한 살이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자 바라는 경우를 제외하고,

시간이 가는 것을 마음 속으로 기뻐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해의 마지막달이 갑자기 온 것 같지만

사실은 꾸준히 1초씩 1초씩 흘러서

오늘이 된 것이겠지용.


그런 가운데 어제 뉴스를 통해

앞으로 21일 정도만 지나면 지구의 대변혁이 싸이에 의해서 일어나고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니

더욱 우울하게 됩니다.


관련 기사 - 노스트라다무스, 끔찍한 예언 “싸이로 인해 지구 종말할 것“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11/h20121130091631111780.htm


물론 그에 대해서는 글을 올렸습니다만,

그런 황당무계한 예언내용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있더라도 정말일까 아닐까 여러 의문이 생기지만,



그런 문제를 떠나서

그와 비슷한 예언들이 이전부터

다양한 예언가들에 의해

많이 중복되어 제시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좀 더 의문을 갖게 되는 점은

왜 한국에서 그 재앙이 시작되는가.

그런 종말을 가져오는 재앙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한국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피해율이 적은가도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한편 한반도에서의 피해율이 적다고 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생존자는 10명당 1명꼴의 생존률로

대략 480만명대에 그친다는 예언도 보게 되었는데

이 역시 생각해보면 충격적입니다.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로 간주하면, 그만이지만,

그러나 안 일어나는 것이 100%라고도 할 수 없고

모든 놀라운 일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기에

그런 차원에서

마음의 준비나 대비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오늘 내일 당장 일어나지 않아도

민방위 훈련도 하고

군대 훈련도 받고

또 당장 사고나 질병이 생기지 않는다해도

각종 보험을 미리 들어두는 것도

다 그렇지 않나용.


자신이 좋아하거나 희망하는 일이 아니라고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만 임하면

세상에서 희망하지 않는 모든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지는 않고,

비록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희망 하지만,

그러나 그와 함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자세는 또 이와 별도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궁금해서 왜 그 종말(끝)이 한국에서부터 시작되는가에 관심을

갖고 여기 저기 뒤져서 살펴보니,

여러 예언의 내용을 종합해보건대,

한국이 진앙지이면 진앙지이고

지구 자전축 변경의 중심지이면 중심지인 관계로

그렇다는 해석입니다.

피해가 좀 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


○ 그러나 늘 부정적인 메세지 뒤에는

긍정적인 메세지도 함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종말의 메세지 뒤에 숨어 있는

긍정적인 메세지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종말이 오기까지

하루 하루의 가치를

매우 뚜렷하게 인식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 점이라고 봅니다.


더욱이 그런 의식하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집중하여

전에 올린 글과 같이

주어진 하루 하루 동안

가능한 무한한 가치와 의미를 그 하루안에 채워 넣으려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그런 일이 정말 있더라도

그 이후 다행스럽게 생존하게 된다면

또 그런 바탕에서

이후 그와 같은 자세로

계속 꾸준히 노력하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 doctr님이 이런 보고를 받더니

남은 3주간 최선을 다해서

쓰고 싶은 말을 잘 정리해서 올리고

그 이후 비록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 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후회를 갖지 않게 되도록

남은 기간 동안 다 함께 최선을 다해 노력하자고 합니다.


○ 제 입장에서

추구미 작전이란

아름답고 선한 가치를 아름답고 선하게 즐겁게 잘 해나가자는

의미를 갖는 작전인데

이 추구미 작전을 서둘러 종료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기도 합니다.


다만 비록 제 추구미 작전이 종료된다해도

각 개인의 삶에서 진행되는 추구미 작전은

그 누군가가 살아 있는 한 무한히 앞으로도 계속되 나가리라고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한편 이와 별도로

제 추구미 작전은 지금 이 상태로 서둘러 종료한다해도

이와 관련해 큰 문제는 되지 않으리라고도 생각합니다.



○ 그런 입장에서

추구미 작전의 개요를 간단히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고 봅니다.


///


본래의 실재의 바탕에는

좋음이라거나 나쁨이라고 할 것이 결정되어져 있다고 할 수 없다.


좋음 나쁨은 실재의 바탕에는 있다고 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반야심경에 나오는 표현

공중 무색 무수상행식 이런 의미와 같다고 봅니다.


우리가 보는 현상의 모습도 그러한데,

그것을 다시 바탕으로 하여 얻는

좋음 나쁨은 더욱 그런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공한 실재의 바탕에서

차별된 감각내용을 얻게 되고

느낌도 얻고

다시 관념을 일으키고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다시 좋음과 나쁨 그 중간 등을 얻습니다.


참된 실재를 바탕으로 놓고 보면

이들은 꿈과 같은 것들인데


좋고 나쁨의 문제는

꿈 안에서의 꿈

그리고 다시 그 꿈 안에서의 꿈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처음의 꿈은 본래 차별이 있다고 할 수 없고

같다거나 다르다고 할 수 없는 실재의 바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감각내용(=현실내용)이 꿈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고


그것을 바탕으로 갖는 여러 관념들은

다시 또 그런 꿈 안의 꿈과 같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고


그리고 또 이들을 바탕으로 얻는 좋고 나쁨

더 나아가 선과 악 등등의 문제는

그런 꿈 안의 꿈 그리고 다시 그 꿈안의 또 다른 꿈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최종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가장 허망하다고 볼 수도 있는

바로 이 좋고 나쁨에 집약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만일 어떤 것이 좋음과 나쁨과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그렇게 현실에서

무엇을 고민하고 또 하는가.

이런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각 생명이 어떤 것을 좋게 느끼고 나쁘게 느끼는가는

결국 그 각 개인과 그 대상이 화합하여

얻는 내용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앞 글 들에서

파리가 좋아하는 좋음의 내용

사람이 좋아하는 좋음의 내용들을 놓고


그처럼 각기 다른 내용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등은

기본적으로는

각 생명이 삶을 출발할 때 걸리고

마칠 때까지는 지속되는

기본적 최면상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글을 올렸는데


결국 그 근거는 따지고 보면

그것들에 어떤 뚜렷한 결정된 성품이 있다고 할 것은 아니고

단지 그와 같은 바탕에서 그와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살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이 가운데

어떤 좋음은 비록 그것이 당장 좋지만, 그것을 중지하고 그 반대의 것을 행해야 한다고 보게 되고

어떤 나쁨은 비록 그것이 당장 나쁘지만, 또 그것을 해야 한다고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 좋음이나 나쁨 자체가 다른 좋음이나 나쁨과

본 성품이 결정적으로 특별히 다른 좋음이나 나쁨이기 때문이 아니고


구체적 경우에서 어떤 좋음은

당장은 좋음을 주지만,

그 개인에게 또 다른 생명에게도

장기간 다른 나쁨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나쁨은

당장은 나쁘다해도

또 그것을 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체적 경우에서

그 나쁨은 당장은 나쁘다해도

그 개인에게 또 다른 생명에게도

장기간 다른 좋음을 가져다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어떤 좋음은

그것이 당장 좋더라도

그것을 중지하고 그 반대의 것을 행해야 한다고 하게 되고


또 어떤 나쁨은

그것이 당장은 나쁘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고 행해야 한다고 하게 되는데,


문제는 당장의 좋음과 나쁨에

집착하고 이끌려 다니는 상태에서는

그것이 잘 안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또 그 결과

앞에서 본 것처럼 이후

자신과 다른 생명이 모두 나쁨을 오래 받거나,

좋음을 오래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결국 그런 경우의

어떤 좋음은

비록 그것만은 좋더라도

그것을 중지하고

그 반대의 것

즉 당장은 좋지 않은 것, 당장은 나쁨을 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이 경우에

이 당장의 나쁨마저

좋음을 주는 것으로 바꿔서 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고 보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도 좋고 나중도 좋고

자신도 남도 모두 오래 오래 좋음을 주는 방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이 관계를 이성적으로 관찰하여

장래 얻는 좋음을 지금 당장 얻는 좋음처럼 느끼며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다른 생명이 얻는 좋음도 자신이 당장 얻는 좋음처럼 느끼며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습니다.



또 만일

장기간 자신과 다른 생명에게 나쁨을 가져다 주기에

지금 당장은 좋지만 중지해야 하는 좋음이 있다면,

위와 반대의 방식으로

그것에서 당장 나쁨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음과 나쁨의 느낌은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거쳐 그런 방식으로 얻기가 쉽지 않고

또 행동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당장 느끼는 좋고 나쁨에 이끌려 행하게 되기 쉽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 좋고 나쁨의 문제에서

결과적으로 늘 장애가 일어나게 됩니다.



○ 결국 이 장애를 극복해 내고

가장 원만하고 좋은 형태로

이 좋음과 나쁨의 문제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각자의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생명은 당장 플러스(좋음, 즐거움)을 주는 것을 좋아하고

그에 집착을 갖게 되고

그런 가운데 그것을 얻으려 하고


그러는 중에 누군가 그런 자신의 플러스를 침해하거나

자신에게 마이너스(고통, 불쾌)를 가져다주면

당장 싫음을 느끼고

그 마이너스를 참지 못하고 분노를 일으키고

미움과 원망을 갖고

그에 대해 역시 같은 마이너스를 가져다 주고

보복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자신과 다른 모든 생명에게

길고 오랜 마이너스를 무한히 주게되는 상태로

확대시켜 나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모든 생명에게

길고 오랜 플러스를 무한히 주게되는 상태는

이와는 반대로

그런 반응체계에 따라 반응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반대의 내용을 해나가는 것이 그 방안이 됩니다.


이 내용은 다른 글에서도 반복했지만

다시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모든 생명은 당장 플러스(좋음, 즐거움)을 얻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러나 그에 대한 집착을 끊고

오히려 그런 플러스의 내용을 다른 생명 즉 남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남들이 집착하고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침해하고 취하려 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남이 집착하는 것- 즉 다른 생명의 목숨, 신체, 재산, 가족, 명예 기타 이익 등등 -을

자신은 침해하지 않으려 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 이와 반대로 자신이 집착하는 것

-즉 자신의 목숨, 신체, 재산, 가족, 명예, 기타 이익 등에 대해서는

자신은 또 이에 대한 집착을 끊고

이런 내용을 다른 이가 침해하고 파괴하거나 하려 할 때는

앞과 같이 집착과 분노에 기초하여 반응하지 말고

자신은 그것을 참고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그런 마이너스를 가져다 주는 경우에 그 상대에게

또 다른 마이너스를 돌려주어 보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포함하여 모든 이에게

모두 플러스를 돌려주려 노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가능하면

그런 것으로부터 마이너스(불쾌, 고통)를 처음부터 받지 않고,

또 분노를 처음부터 일으키지도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고

고 요약하여 제시할 수 있습니다.


doctr님이 좀 추가하라고 요구해서 덧붙이자면

어차피 할 수 밖에 없는

기본적 행위

먹고, 싸고, 놀고, 하고, 쉬고, 자는 모든 행위를 함에 있어서

이를 모든 생명의 최상의 상태의 실현을 위하여~ 한다는

의식 하나를 늘 덧붙여

그런 의식을 갖고 방안을 찾으며 임하는 것도

같은 취지에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각 경전에서 나오는 내용,


즉,

다른 생명을 죽이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그러나

자신은 어려운 이웃을 돕고 베풀고

또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해치고 침해하는 원수에 대해서는

자신은 사랑으로 대하라.


이런 경전의 가르침은

결국 이와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좋음과 나쁨에 대해 갖는 집착에서

풀려 나와야 하는데


그러나 자신부터 같은 내용에 같은 집착을 갖고 임하고

그렇게 자신부터

좋은 것에 대해 갖는 탐욕과

나쁜 것에 대해 갖는 분노의 집착에서 풀려 나오지 못하므로

위 각 경우에 그렇게 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처럼

자신과 다른 생명이 모두 함께

오래 오래 좋고 좋은 상태에 이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애요소는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부터 이 좋음과 나쁨 각각에 모두 집착을 갖고

탐욕과 분노로서 임한다는 것이

그 장애의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애로 인해

그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

앞에서 본 것처럼

자신과 다른 생명이 모두

오래 오래 무한한 마이너스(고통과 불쾌 두려움 악..)를 받는 상태를 향해

한없이 나아가게 됩니다.



○ 그래서 이 좋음과 나쁨의 문제에서 나타나는

이런 장애를 극복하는 방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우선 무조건

앞과 같이 이성적으로 규범적으로 해야 할 내용으로

판단되고 제시된 내용들을 행해야 하며,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당장 좋음을 주지 못하고 즐겁지 않아

잘 하지 않게 되고 못하게 된다고 하는 경우에는,


우선 그를 통해 얻게 될

미래의 자신 또는 다른 생명이 받게 될

좋음을

그대로 마음에서 그려서

그로부터 당장 좋음을 얻어내고


그 좋음을 그런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현재의 상황에 덮어 씌어

좋음을 얻어 낼 수 있다면 좋다고 봅니다.


또 반대로 당장은 좋아보이지만

좋지 않아서 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위와 반대로 나쁨을 얻어내 그에 덮어 씌우고 느낄 수 있다면

좋으리라 봅니다.



또는 그렇게 행해나가면서 당장 마주하게 되는 현실에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좋음 ( 또는 나쁨)을 찾아내거나

그렇게 좋음을 찾아낼 수도 있도록 해석을 해서

좋음 ( 또는 나쁨) 을 얻거나,


또는 단지 가장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또는 그 반대)를 떠올려

그런 결과 얻는 좋음( 또는 나쁨)의 느낌을

위처럼 행해야 하거나 피해야 할 현실내용들에 덮어 씌어

좋음 ( 또는 나쁨)을 얻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앞의 이성적이고 규범적으로 올바른 내용과 같이 일치시킬 수 있다면

비교적 이 장애가 줄어들 수 있다고 봅니다.


또 가장 기본적으로

이 모든 문제의 근본 바탕에 서서

이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기본적으로 당장 좋음과 나쁨에 이끌려 반응해나가는 반응체계에서

벗어나고

그런 상태에서 앞과 같이

모든 생명이 모두 최상의 상태에 이르는 방향을 향해

이를 추구해 나가는 것은

이 모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


○ 갑작스런 종말 예언을 염두에 두고

남은 시간의 촉박함을 느끼고

추구미 작전의 개요를 기술해보게 되지만,


내용이 간단하다면 참 간단합니다.


다만, 그것을

직접 실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 모든 구체적 내용들이

각 개인이 깊이 집착하게 되는 것들과

모두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그리고 가족, 명예, 기타 이익등

그리고 또 자신이 사랑하는 다른 이의 그것들과

관련해

좋음, 나쁨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 그렇게 집착하는 것과 관련된

당장의 좋음 나쁨의 문제를 대하면서

위와 같은 자세로

행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정을 의미합니다.



○ 여기에는 또 조금 살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집착을 갖게 되는 이유에도 좀 구별할 내용이 있다고 봅니다.


즉, 가장 삶에서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생존 자체와 관련되어 집착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식주와 건강 문제와 관련된 집착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그렇지는 않지만,

즐거운 맛과 깊이 관련되어 집착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집착을 갖는 한 어느 집착이던

그것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은 같다고 보지만,


문제를 조금씩 완화해 나가려면,

우선 즐거운 맛과 관련된 것들에서부터

집착을 풀어서

이 문제를 앞과 같이 이성적인 입장에서

행해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그런 즐거운 맛의 집착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적어도 살고 죽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하는 입장에서

그런 집착부터 풀려 나오려 노력하는 것이

좀 더 쉽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집착을 가진 상태에서는

그런 맛에 대한 집착이라고 다른 집착보다

덜하다고 느끼지 않고

때로는 생존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하튼 그런 단계로 점차 집착을 풀려나는

것이 좀 더 쉽다고 보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생존과 관련된 집착에서도

역시 풀려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가장 첫 출발점이 되는

참된 실재의 바탕에서 보면

이 모든 것에 그렇게 집착하고 매달려야 할

결정적인 성품이 그 안에 있다거나

기본적인 근거나 이유는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종말을 눈 앞에 두고

자신의 죽음이나 가족의 죽음을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되지 않지만,

그러나 이 문제도 다음과 같이 생각해봅시다.



사실 종말이 오던 오지 않던

이미 수만년 수십만년의 과거를 생각해본다면,

그간 살아온 수많은 생명들은 다 한 번 씩

그런 상황을 맞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놓고

자신이 생각하는 종말이나 죽음, 질병의 문제를

이와 관련시켜 생각해보는 것도

한 방안이라고 봅니다.


평소 이런 객관적 사실에

자신이 담담하게 임해왔거나, 또는 무시하고 대해왔듯,

자신이 지금 집착하는 자신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그처럼 담담하게 임할 수도 있어야 하고

또 기본적으로 그처럼

큰 문제가 아닌 것이라는 입장에서

바라볼 수도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집착의 문제도

사실은 그와 사정이 같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어떤 주체가 무언가에 집착하면,

그로 인해 좋음과 나쁨과 관련해

그런 현상들을 나타나게 하고,


더 나아가 그 집착으로 인해

자신이나 관련된 다른 이들이

원만하게 좋음을 얻는데 수많은 장애를 만들고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오히려 좋음을 원만히 잘 추구하여

자신도 다른 생명도 모두 오래 오래 좋은 상태를

원만히 실현하려면


그와 반대로

기본적으로 집착을 떠난 가운데

모든 생명이 최상의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보게 됩니다.



///



○ 최근 여러 뉴스를 보고

우리나라 안에서 겨울을 나기 힘든 상황에 놓인 생계곤란자

그리고 세계 각국의 극빈자들의 어려운 사정을 보는데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다 일시에 해결하는 것은

또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문제의 해결방안을 고민하다보면

이런 문제 역시 그 문제를 완화시키고 해결해나갈 방안도

사실은 위와 같은 방안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선 이 모두에게 모든 것을 다 뜻대로

성취시켜주는 것은 매우 곤란할 지 몰라도,


적어도 이 모두가 다 함께 건강하게

생존을 유지해나가려면,


각 주체들이

단지 즐거운 맛을 이유로 집착을 갖는 경우와

생존 자체를 이유로 집착을 갖는 경우만이라도

우선 분리시키고

이 각각에 대해 조금 달리 생각하고

즐거운 맛에 대한 집착부터 풀어나가면

또 어느 정도 많은 해결을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이 모든 집착에 대해 다 동일한 집착을 갖고 임하는 경우에는


결국 어떤 다른 이의 생존은

자신의 즐거운 맛에 대한 집착을 해결하기 위해

희생될 수 밖에 없음도 의미합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본다면,

생존이나 즐거운 맛의 문제도

다 함께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라기 보다는

모두가 최상의 가치와 즐거움을 얻게 되는데

필요하기에 그것이 중요하다고 보게 됩니다.


단지 그저 생존만 무한히 오래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심지어 오로지

집착으로 인한 고통과 번뇌 그리고 악만

가득한 가운데 그래도 생존만 계속하면 된다고

보는 것이 아니고,


그런 생존을 통하여

위와 같은 가치를 실현해야 비로소

자신과 다른 생명 모두에게

가치가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결국은 이 모두가

그 모두에 다 함께 집착을 떠난 바탕에서

그런 바탕에서

모두가 최상의 상태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

오히려 요구되고

중요한 내용이 된다고 보게 됩니다.


그런데 다시 그런 가운데

그렇게 모두가 다 함께 최상의 상태로 나아가는데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또 생존의 문제의 해결이 됩니다.


그리고 이 생존의 문제는

각 개인이 맛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덜고 임해 나가면

좀 더 쉽게 해결될 가능성이 보인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는

그처럼 다른 문제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여기에서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점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think twice가 요구된다고 봅니다.



○ 종말이 하루하루 앞으로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렇다고 지금 사과나무 심어야 할 계절도 아닌데

사과나무를 심으려 하지는 마시고용.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think twice를 하면서

오늘부터 하루 하루

그 하루의 시간에

무한대의 가치와 맛을 그 안에 넣어나가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봅니다.



[ ● 세계의 종말과 개인의 종말 + 추구미 작전의 개요 ]




fr http://essay007.tistory.com/794#comment11546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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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2/12/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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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2012/12/01 14:11

역시 오늘도 한 분은 잡담코너를
글자 폰트로 열심히 도배를 해놓으셨군요

제가 강제적으로 메인페이지에 등록해 놓고 링크만 걸고
삭제를 해볼까 생각중입니다.

lab님은 종말을 걱정하시는데용
전 개인적으로
가수 ses가 부르는 love에 대한 연구를 위해
기본 자료를 찾던 중
많은 사이트가 차단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각 사이트의 종말!!
이것이 더 충격입니당.

연구에 기본자료들이 항시 필요한데용


///

이전 내용

http://essay007.tistory.com/793#comment11544876


  • Lab value 2012/11/30 13:01

    ● 지구 종말 예언

    지구의 종말일이 12월 21일 쯤이 된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지구 종말을 일으키는 주범은 평소 본인이 혐의를 두고 있던 싸이다. (^^)
    싸이의 코를 조심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줬건만,

    대통령 선거일이 19일인데,


    ○ 여하튼 종말은 갑자기 매우 충격적으로 오는 것이어서
    미리 마음으로 준비하고 대비하지 않은 경우에는
    마치 우산을 쓰지 않고 갑자기 소나기와 천둥 번개를 맞는 것처럼
    당황스런 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세계적 종말은 그러나 소나기, 천둥, 번개 이런 정도의 놀라움을 주지 않고
    엄청난 대지진 쓰나미와 함께
    대륙판이 조각 조각 나는 정도의 충격으로 일어나리라 예상되고 있다.
    일본의 대지진 이후 징후도 그렇고

    그런데 이런 예언은 늘 불투명하여 정말일까 긴가민가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무시하고
    준비와 대비도 함께 게을리하게 만드는 심리적 요소가 있다고 본다.

    기상청에서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여서 태풍피해를 막으라고 말한 것처럼
    경고를 해줘야 하는데

    그러나 또 옆 집은
    올 여름에 기상청 예보시 붙인 테이프를
    아직까지 유리창에 붙여 놓고 떼어내지 않고 있다.

    아마도 내년을 대비하는 듯 싶으나,
    이것은 또 너무 대비가 심해서 보기가 흉하다.

    대비는 하지만,
    그러나 보기 흉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

    ● 너무 갑자기 지구 종말이 찾아오기에
    그 경우 대부분 놀라서
    즉 심장 마비나 흥분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는데
    드라큐라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어떤 화면이 나타나서 심장마비로 영화 관람객 대부분이 사망하게 된다면,
    그 영화를 보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나 불행하게도 강제 관람을 해야 하는 영화라면
    어떤 자세로 보아야 그런 불행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



    ● 다만 다행인 것은
    그나마 한반도에서의 생존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도 생존을 계속하는 인구가 그렇게 많은 것은 또 아니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이 순간에 마주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대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있을 때 서로 잘 해야 한다는 금언은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종말은 항상 비극적인 면이 있지만,
    그러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로운 상황에서는
    평소 그렇게 흔하게 구할 수 있었던 물건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라이터 하나도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고 그런 엄청난 대 재난이 닥친 상황에서는
    일일히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기본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

    전기 - 수도 -도시가스- 이런 것이 기본적으로 있는 상황과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의 생존 방안
    여기에는 차이가 크리라 본다.

    그런 점에서 마음의 대비는 하지만,

    그렇다고 닥치기 전에 미리 방 안에서 천막치고
    등산 코펠로 밥 해먹으면서
    생존 훈련을 하는 것도
    그다지 도움이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가까운 이웃과 평소에 잘 지내고
    서로 화해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미리 미리 잘 하는 것이
    더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보게 된다.

    원래 자신이 편하게 잘 사용하던 것들은 모두
    그렇게 이웃에서 제공해주었던 것이 었습니당.


    ● 어제 뉴스를 보았는데
    올 겨울 난방 에너지가 결핍해 힘들게
    겨울을 보내야 할 사람의 수가 1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실업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미 뉴스도 아니고 그냥 현실이 된지 오래다.

    이 두 문제가 같이 맞 닿아 있다.
    실업상태이므로 돈이 없게 되고 생활하기 힘들고
    노인이나 질병 장애 이런 상태까지 겹친 경우
    병원비 등에 우선 순위가 밀리게 되고
    더욱이 어떤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기대할 수 없고

    그래서 결국 전기도 연료도 구하지 못한 채
    지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무슨 방안이 없을까 고민 중인데,

    가만히 있으면 때가 되면 밥그릇에 그날 식량이 채워지고
    때가 되면 옷이 나타나고
    때가 되면 보일러에 자동으로 불이 들어오고
    때가 되면 침대에 누워서
    + 아름다운 여인 ( 또는 멋진 남자) 가 시중을 들면서 잠을 자면서 보낼 수 있고
    그러면서 수명도 아주 길고 긴
    그런 곳이 어딘가에는 있다는데 ~

    현실은 아니라는 점이 매우 안타까운 일로 생각된다.


    ● 그래서 우울한데
    또 싸이가 노스트라다무스와 함께 약속을 미리 했는지
    지구 종말 일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겠다고 나서는 기사를 보게 되니
    더 심난스럽다.

    ○ 기사는 - 노스트라다무스, 끔찍한 예언 “싸이로 인해 지구 종말할 것“ 이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211/h20121130091631111780.htm
    .

    ● 이 예언을 믿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기상청 일기 예보든
    미리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대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본다.

    그런 사태가 닥치면
    평소 반복해 대비하고 준비한 대로
    놀라지 않고 준비된 대로 잘 해나가는 것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 물론 위 예언은 별로 안 맞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와 달리 아주 확실하게 100 % 맞는 예언이 있다.

    당신은 그리고 본인은 앞으로 100 년 안에 반드시 죽는다.
    그 전에 무언가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해서
    죽을 만큼 고통을 겪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 예언능력을 본인도 갖고 있다.

    세계가 종말이
    정말 오던 안 오던 관계없이
    자신과 자신이 보고 대하는 세계만은
    100% 종말이 온다는 것은 생각하면 놀라운 일 아닌가.

    그러나 이와 함께 세계의 종말도 또 가까운 시일 내에 온다고 하니
    그것과 이것을 함께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안하면?
    마음의 준비와 대비를 안하고 살면 그 때 살아 남은 당신만 손해!
    그리고 지금도 손해!다.

    그 이유는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가는 지금
    무엇이 정말 삶에서 중요한가를 생각하지 않고
    또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있는 것들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단지 눈앞에 보이는 쓸모없는 것들만 마음에 가득 담아두고
    임하고 살아가기 쉽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 날이
    3 일밖에 안 남았다거나
    3주 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고
    그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고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그로 인해
    최소한 오늘 평온하게 보내는 하루의 가치라도
    느끼게 되는 것이 어디인가.


    늘 죽음을 대비하고 사는 입장에서는
    이런 경우라고 특별히 대비를 달리 할 무언가를
    찾아내기 힘들고
    평소의 대비대로 임하면 되리라 본다.



    ● 그리고 앞에서 집착을 버리라는 글은
    이 경우에도 매우 쓸모가 있다고 본다.

    다만 집착을 버리고 임하라는 글은
    또 다른 오해를 낳기 쉽다고 본다.

    집착을 버리고 이제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런 의미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니다.

    원래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많은 현실문제는
    종말이 오건 오지 않건
    늘 사람을 괴롭힌다.

    누군가 자신을 침해할 것 같다. 침해한다.
    침해하면 보복한다.

    이런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떠나

    좋은 것을 남들에게 베푼다.
    본인은 그러나 남들의 좋은 것을 함부로 취하려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남이 집착하는 것- 즉 다른 생명의 목숨, 신체, 재산, 가족, 명예 기타 이익 등등 -을 자신은 침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자신이 집착하는 것-즉 자신의 목숨, 신체, 재산, 가족, 명예, 기타 이익 등을
    다른 이가 침해하고 파괴할 때는
    자신은 그것을 참고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한다.
    한 마디로 그런 상대에게 또 다른 마이너스를 돌려주어 보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포함하여 모든 이에게 모두 플러스를 돌려주려 노력한다.

    심지어 가능하면
    그런 것으로부터 마이너스(불쾌, 고통)를 처음부터 받지 않고,
    또 분노를 처음부터 일으키지도 않도록 노력한다.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어떤 입장에서
    원만히 할 수 있는가하면

    앞과 같이 자신이 근본적으로
    이들 모두에 집착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만
    원만하게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각 경우에
    온 생명이 모두 최상의 상태가 되게 하기 위해
    바람직한 행위 유형을 자신의 삶에 채택하고
    이를 원만하게 잘 행해 나가려면,

    우선
    기본적으로 모든 것에 집착을 버린 가운데
    자신 스스로 집착을 버리려 노력하고
    또 다른 이도 그렇게 집착을 버리고 올바로 임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함께 요구되는 것이라고 본다.


    ● 그런 이유로
    집착을 버려야 함을 강조하게 되는데
    그러나 집착을 버려야 함을 강조하면
    오히려 이를 오해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본다.

    즉, 집착을 떠났는데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아무렇게 살지
    왜 굳이 그런 일을 또 해야 하는가?
    이런 오해를 하기 쉬운 것이다.

    여하튼 이런 오해는 잘못이다.

    앞과 같은 내용을
    어떤 상황에서든 즐겁게 잘 해나가가 위해
    기본적으로 모든 것에 집착을 버리고 임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원만히 잘 해나가기 위해
    심지어 스스로 집착을 버리는 것 그리고 남도 집착을 버리게 하는 일마저도
    역시 집착하지 않는 가운데 노력해야 함을 제시한 것이다.


    ///

    ○ 이번 싸이가 일으키는 지구 종말은
    대단히 전 세계적으로 많은 극심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겠고

    또 한반도도 엄청난 피해를 받으리라 보지만,

    그러나 또 그런 일로 전 인류나 생명이
    다 죽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예언서 내용을 심심해서 참조하다 보면
    그래도
    한반도에서는 한 1/3 정도는 살아남게 되고
    또 그것이 세계 최고 비율이라고 예언들을 하는데

    여하튼 이런 내용도 긍정적으로 보면
    그런 엄청난 재앙이 다가와도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도 있고

    또 그런 경우에도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다시 개인적으로 자신의 개인적 종말이 올 때까지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참고 견디면서
    새로 시작해 나가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 이런 예언은 좀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생각되고
    그래서 다 터무니 없고
    오직 자신이 평소 갖는 희망이나 이미 일어난 현실의 내용만
    그럴 듯한 것이라고 믿고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자세는
    오로지 예언만 믿고 사는 것과 비슷하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상청에서 예보를 해준다면
    비록 그 예보가 100 % 맞는 것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어느 정도 준비와 대비를 갖추고
    살아가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 또 한편
    태풍이 온다고 기상청에서 예보를 하여
    열심히 준비하고 대비했는데

    막상 그날이 되자 기상청 예보와 달리
    태풍이 다른 경로로 빠져 나가 안오게 되면

    매우 섭섭해 하는 분이 있고
    속았다고 속상해 하거나
    공연히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였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고
    심지어 다음 예보나 경보 때는
    그런 대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분이 있는데

    오히려 그런 자세는 안 좋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과거 임진왜란을 맞이한 선조대왕이
    생각나지용?

    따라서 안 좋은 자세를 중지하고
    그 반대로 행하는 것이 늘 좋다고 보게 됩니당.


    그래서
    예보나 예언과 달리 그런 사태가 안 오면
    섭섭해 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그런 예언과 비교해가면서
    감사하고 그 맛과 가치를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동시에 대비는 또 대비하고
    또 즐겁게 대비해가면서 ~

    그렇게 새롭게 느껴 보게 되는
    평온한 하루의 가치는
    매우 소중하다고 봅니다.

    ○ 다만, 위 싸이 종말 예언과 달리
    제가 예언해드리는 각 개인의 개인적인 종말은
    유감스럽게도 100% 확실합니다.

    비록 저만 할 수 있는 예언은 아닙니다만,

    다 언젠가는 죽는 것 아시죵 (^^)

    따라서 위 싸이 종말 예언과 달리
    개인적인 종말을 위 내용에 준해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고 봅니당.

    ○ 집착을 버리고 모든 생명의 최상의 상태를 위해서 즐겁게 잘 ~~ 합시당.

    [ ● 지구 종말과 개인의 종말 - 그리고 그 대비와 준비- 집착을 버리고 대비와 준비를 잘 해나가기 ]










    • Mun Tokyun 2012/11/30 11:51

      lab님 겁먹지 말고 잘 들으세용

      지금까지 예행 연습과 달리

      이번은 정말입니다.

      심호흡 3번 하시고
      꽉 붙잡으세용.

    • Lab value 2012/11/30 13:04

      매달 민방위 훈련을 실전처럼 생각하면서 훈련에 임하는 저로선,
      그 날 실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섭섭해하면서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또 이번 달 민방위 훈련이 단지 훈련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역시 실전상황으로 생각하면서
      임할 예정입니당.

      이번 예언에 대비자세는
      라면 한 개를 잘 끓여 먹고
      ~푹 잡니다.~

  • Lab value 2012/11/30 23:05

    함초가 도착해서 먹기는 먹는데 pun님은 없고 어떻게 불을 붙이는 것인지 몰라서
    일단 마늘을 함께 먹어봅니당. (^^)

    약이라고 보면 싸고 음식 반찬이라고 보면 비싸다고 봐야 하는데용

    앉아도 아프고 서도 아프고 누워도 아프고 운동해도 아프고 쉬어도 아픈
    증세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상한 약품이나 식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담배를 끊고 운동을 열심히 해보라고 합니당.

    의자에 작은 전기장판을 설치해서 앉으니
    좋은데용(^^~딴전 부리는 중)

    ○ 우체부 아저씨가 배달을 해주시고 가셨는데
    오늘 기사를 보니
    우체부 아저씨들이
    힘이 많이 들고
    과로나 사고로 사망 부상을 많이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21129102735&section=03&t1=n

    ○ 또 tv를 보다보면
    아프리카에서 영아사망률이 50%가 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 담배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 집착을 갖지 말고 계속 피어야죵(^^)



  •  

     

     









     

     

    ● 종말의 조크와 가치의 중요성 =>
    http://essay007.tistory.com/794#comment11548766


    ○ 사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일종의 조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관계없이,
    늘 종말의식을 갖고 산다는 것은
    물론 그 역기능을 빼고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종말이 정말 없더라도,
    죽음은 찾아 오고,
    또 종말이 정말 없더라도
    이웃과 가족의 소중함은 느끼면서
    살아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하나 피워도
    최후의 담배라고 생각하면서
    -결코 끊지 않는 제 입장에서는 -
    사실 반대로 생각하면
    담배를 끊으리라고 봅니다. (^^)

    무한한 날이 주어져 있지 않은데도
    마치 무한한 날이 주어져 있는 것처럼
    마냥 계획만 세우고
    실행을 뒤로 미루는 경우에는

    종말과 함께
    시간과 그 안에 채워 넣어야 할 가치들에 대해서
    음미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리 조크라고 해도
    좀 진지하게 종말을 생각합시당.(^^)




    fr   http://essay007.tistory.com/794#comment11549269

    ● 노스트라다무스가 싸이에 관해 예언을 했고 그래서 21일 후에 지구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합니당.

    20 일 후로 정정합니당. (^^)

    참고로 노스트라다무스 예언 전체시
    -영어나 불어를 잘 아시면 참조하세용
    http://www.sacred-texts.com/nos/index.htm#prophecies

    ○ 참고로 Edgar Cayce 도 비슷한 예언을 한 사람이라는데
    이 경우는
    http://near-death.com/cayce.html

    ○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늘 종말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cayce도 일본과 미국의 많은 부분이 가라 앉는다고 말하지만,
    2100년 Nebraska에 다시 태어나
    과거에 자기가 cayce 였다고 말해서
    ufo 같은 비행기를 타고 과거에 살던 곳을 찾아가 확인한다는 이야기도 적혀 있습니다.
    http://near-death.com/experiences/cayce11.html

    ○ 제가 모래알을 신경을 기울이며 세보는 것은
    그런 이유라고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갠지스강 모래알로 보통 수행을 처음 시작한 후
    수행을 하고 마치는 기간을 재는데,
    그것은 무한한 시간에 비교하면 유한이고
    따라서 찰나와 같다는 의미이지만,
    생각해보면 모래알 하나하나가 그냥 모래알이 아니고
    수를 세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그 모래알 하나가 1겁이라고 할 때,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로 센
    항하사 겁의 의미가 와 닿습니다.

    갠지스강의 모래알이 표준인데, 지구가 격변하게 되면
    그것도 영향을 받지 않을까용?
    줄어들려나, 늘어날려나,
    이런 것이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까.

    좀 더 심해지면, 세계를 부셔서 그 가루로 수를 세기도 합니당

    그것은 그런 차원이고
    이번 생은 또 이번 생이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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