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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오늘의 작전-승대승-재미와 가치의 결합



 

[ 요약 ]

○ 재미와 가치의 결합








little님의 암기방안과 본인의 암기방안을 결합하여
오늘은
대반야바라밀다경 2분 14품 승대승품의 내용을 이 안에 기재하는 것이 목표다.
( 관련글 http://story007.tistory.com/760 )



○ 사실 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추구미 작전의 일환으로
'재미있게 연구하기 방안'-을 연구중이며

다시 재미의 연구에 돌입했는데
무언가 반복되고 힘들고 하기 싫고 그러너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을
재미있게 ~ 잘 하는 것이 주제가 된다.

어제 배봉산을 걸어간 길이
만일 99999~999번째 가고 또 갔던 지루한 길이고 재미없는 힘든 길인데
그러나 건강을 위해 걸어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
● 우선 이것을 바꾸어 재미있고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 
즉 ( 본인의 II 의 반응체계 = 원만한 행복, 만족, 기쁨, 즐거움, 재미, 웃음, 보람, 가치, 평온, 안정, 의욕, 희망..을 주는 상황을 떠올려 최고의 좋은 느낌을 얻기) 
[ doctr님의 장점을 얻기, little님의 psss ]

● 그리고 그 따분하고 지루하고 의미없는 길을  -> 의미있고 아름답고 가치있는 길로 바꾸어야 한다.

(본인의 III의 체계 -> '온생명을 위하여' ~ "걸어간다.는 의식을 갖고 그에 필요한 문제의식을 갖는다."
~> 세계가 자신에게 플러스를 주던 마이너스를 주던 이 모두에 과연 어떤 플러스를 어떻게 줄 수 있나
그에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고 어떻게 얻는가 등의 연구 )  
[ doctr님의 선한 희망의 실현, little님의 Go, mun님의 5-6-7 ]
 

이런 변환이 우선 요구된다.


● 여기에는 한편으로 뭔가 하지 않아야 하기에
버리고 끊어야 할 내용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것은 현실에서 선택하지 않고 행위를 안 하는 것이서 소극적으로 배제된 것 뿐이다.
( 본인의  I의 본능적 감성적 반응체계 - 탐욕-분노 집착에 바탕한 일반적 반응체계 1-2-3-4 
에 '따라 반응하지 않는다'.
[ doctr님의 단(斷), little님의 Stop, mun님의 1-2-3 ]

○ 한편 사운드오브뮤직의 줄리앤드류스 선생님의 버전에 의하면
무시하고 외면해야 할 천둥번개도 생각할 수 있다. =>
천둥번개를 무시하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My favorite thing)을 생각해내 노래부른다는 방안이다.


=>> 
* 본인의 수정안 
늘 행하는 필수적 생리적 활동 (먹는다.싼다. 논다. ~한다. 쉰다. 잔다. )
또는 기타 
별로 가치없다고 할 수 있지만, 매일 반복하게 되는 모든 일상생활의 부분 부분
한편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 하고 다른 대처를 할 수 없는 모든 것들 ( 늙음, 피할 수 없는 병, 사고, 죽음의 고통)을
 
모두 III의 의미와 내용을 접합시킨다.
+
그리고 동시에 II 와도 접합시킨다.

( 한마디로 보고 듣고 하는 이상
그것을 모두 III 과 II 를 접합시켜서 가치있는 의미로 만들고 이를 즐겁게 잘 한다. )


* 이유
doctr님의 선한 중심희망이 본업이라면 이는 부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과 삶은 사실 본업에 주력하는 활동도 많지만,
사실은 이런 (사소하다고 볼) 부업의 꾸준한 반복 순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부업을 III 과 II 를 접합시켜
가치있고 + 즐겁고 재미있는 활동으로 변화시키고
결국 자신의 중심희망과 접목시켜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참고- 기존 doctr님과 little님의 방안
가치없는 것들에 대한 무시, ~에 대한 수정의견
[ doctr님의 무시(無), little님의 turn, mun님의 4  ]


// 이유 //
가치없고 다른 방안이 없어 맞이하는 이런 성격을 갖는 것들에 대해
무시한다고 하고 무시하려 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사소한 일들을 늘 상대하고
이에 마음을 기울이고
또 매일 매일 자주 반복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들어 세수하는 것
양치하는 것
옷을 입거나 기타 일상생활의 가지가지 일들을 
아주 가치있다고 보기도 힘들지만,
그러나 외면할 수도 없다.

다른 생리적 활동도 다 같다.

정말 가치없어서 안 한다면 몰라도
하고 또 하지 않는가..

또 어떤 것은 아무리 원하지 않는다해도
피할 수 없이 맞이하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이왕 그렇게 어차피 매일 매일 반복하는 바에는
여기에도 어떻하든
최상의 가치와 즐거움, 행복을 묻혀 접합시켜 놓은 것이 필요하다.



한편 결국
접합시켜야 할 III 이란 그 핵심내용은
'온 생명을 위하여~ 한다'는 마음을 갖고
온생명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플러스를 어떻게 만들고 나눌 것인가.
그리고 그에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 연구하고 익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 III을 하는 바에
어차피 하는 III을 즐겁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어차피 하는 바에 잘하려면
그것을 즐겁게 여기고
그런 즐거운 마음에 바탕하여 또 하고 또 하고
그리고 또 하고 싶어하고 또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재미의 연구가 필요하다.

본래는
재미없고 즐겁지 않다고 여기고
I의 본능적 감성체계에 바탕하여 외면하기 쉬운 성격을 갖는 것이 III 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좋은 것을 자신이 탐욕을 일으켜 차지하려 하지 말고
필요한 이에게 베풀라.
이런 요구는 규범적으로 요구되기는 III의 성격의 일이지만,

그러나 당장 재미없고 즐겁지 않다고 여기고
외면하기 쉬운 성격을 갖는 것이다. 
 III 은 그런 성격을 갖기 쉽다.

그리고 대신 I의 본능적 감성체계에 바탕한 일만 
집착하여 재미있고 즐겁다 여기고
반복하여 행하기 쉽다.  

따라서 이 III을 하면서
최상의 재미와 즐거움을 얻어나갈 수 있게 할 방안이 필요하다. 

I을 떠나고 III을 선택해 II의 최상의 즐거움 재미 행복을 얻으며 행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기본적으로 IV 가 필요하다.

IV는  
집착을 갖게 되는 자신의 생명-신체-재산-가족-명예-기타 이익...수단에
대해 집착을 끊는 것
또 이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 진리와 가치판단을 얻고
그를 바탕하여 옳고 올바른 관을 얻는 것이다.
또 그런 가운데 집착을 버리고
세상에서 가치있고 올바른 내용을 선택해
얻을 것이 없음을 방편으로 하여
즐겁게 잘 해나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기본적 진리와 가치판단을 통해
집착을 끊고 관하는 것을 의미한다. )


그리고 그런 IV의  바탕에서 
집중된 마음으로 III을 행하고
또 한편 III에서 즐거움을 얻으려면
집중된 마음을 통해  
II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가운데 
 결국 재미의 연구가 필요하다. 



///

●  본인의 재미의 연구 ( 재미와 가치의 결합방안 연구 )

///


어떻게 보면 일상생활의 반복을 통해 만나게 되는 
여러가지 지루하고 힘들고 하기 싫은 
그러나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을

재미있고 즐겁게 만드는 방안의 연구를 진행하는 중
doctr님과 little님의 협조를 받지 못해
연구가 중단되고 있다.

자료제공을 거부하고 있는데용
악의라기 보다는
파일을 못찾아내서 (^^)

저도 그래서 이 내용에 대해서는 키워드만 
몇 개 적어 놓고 갑니당.

///




1 - 따분한 길(비유)을 같이 걸어갈 대화 친구를 만들라.
없다면 mp3 스피커 + 경전의 내용(대화상대)

2 억지로 강제로 끌려가 어떤 길을 걷게 되었더라도 (^^)
자신이 자발적으로 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자신이 상대를 미리 최면을 걸어 그렇게 날 위해 나에게 그렇게 강제하도록 장치했다고 스스로 우겨본다.



3. 따분한 길(비유)의 단조로운 풍경에
아름다운 시인이 되어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마구 생각해내어
이 따분한 길 각 부분에
이들 내용을 덧붙여 놓는다.
그리고 이들을 이어서
종합적으로 아름다운 시를 써낸다. 
( <= 쥴리앤드류스 선생님의 My favorite thing 을 생각해
각 길의 각 특징을 찾아 붙여 넣기 )

따분한 길을 하나 오래 참고 걸었다.
=>
수많은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교향곡이 배경으로 울려 퍼지는
하늘의 길을 즐겁게 걸어보았다.



4 . (키워드 분실)



5. IV의 상태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집착을 버리고
모든 현실의 내용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마음을 갖는다. 



6. 그리고 그 영화 안에서 자신은
하나의 선 안에서 무한한 즐거움을 반복해 얻어내는 파도를 일으킨다. 
(나쁨에서 좋음의 파도가 아니라,
IV의 바탕에서 모두 영화 속의 내용과 같음을 보아
다 그냥 괜찮고 무방하다고 하는 바탕에 선 다음
여기에서 그냥 무방하고 괜찮음에서 더 좋음 더더 좋음
그리고 단일하고 평탄한 좋음에서 또 다른 좋음 또 다르고 다른 좋음으로
물결을 일으키는 방안 )




파도를 일으킨다는 것은
단조로운 직선에서
자신이 매번 관점을 달리해서
무방함 - 더 좋음 - 더 좋고 좋음의 파장을 일으켜 얻음을 의미한다.

고스톱 도박게임이 재미를 주는 것이 나쁨 - 좋음의 교차 반복으로 재미를 주는 것이라면
여기서는 영화관의 영화로 - 현실에 갖는 집착을 일단 분리시킨 상태에서
게임에서 가장 최악의 패배마저도  무방함으로 일단 다 놓고

단조롭게 지루한 길(비유)안에서
무방함- 더 좋음 - 더 좋고 좋음
이 좋음 - 저 좋음 - 또 다른 좋음 - 또또 다른 좋음을 일으켜 얻는 것을 말한다.

선이 한 직선이지만,
이런 파장을 일으키면
그 만큼 삶의 폭과 깊이와 의미와 가치가 함께 상승한다.

한마디로 재미있고 의미가 많고 다양하고 아름다우며 가치있고 선한 상태가 함께 얻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들어
그냥 단조로운 길(비유)을 걸어가며
길은 길이고 지루한 긴 길이다 이런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일으켜 좋음의 파장을 일으키고 이것으로 일으키고 저것으로 일으키고 해서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파장을 일으켜 얻고 또 얻는 것이다.

예를들어 생각하기를
자신이 설령 지옥에서 모든 손발과 눈귀코혀가 다 빠지고 고통을 받어도 무방한 것이지만,
그러나 현재 - 자신이 건강하게 걸어갈 수 있는 다리를 보며 -
이렇게 지금 건강하게 걸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더 좋은 일인가. ( 재미의 파장1)
또 손은 어떤가.

이 길을 전부 내가 내돈으로 닦고 나서 걸어가야한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길을 나 혼자 소유한 다음
나 혼자 또는 매일 보는 내 가족들하고만
걷고 또 걸어야 했다면 얼마나 따분 지루했을까.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좋음을 갖고 있고
어떤 좋음을 난 줄 수 있을까..

이 길과 이 나무 이 돌들에 각기 
무슨 시 구절을 떠올려 붙여 놓으면 좋을까

이곳에는 어떤 경전 구절을 새겨 넣어 놓고
다음에 또 올 때 그것을 찾아내는지 못하는지
소풍갈 때 하는 보물찾기 놀이를 해보자.

...

이런 식으로 좋은 내용을 찾아내고
감사할 내용을 찾아내 느끼고 
또 재미있고 즐거운 내용을 만들어내고
복사해 붙이고 ...
등등 여러가지 다양한 파장을 만들어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길이다. 운동안하면 병 걸린다. 그러니 싫고 힘들어도 참고 의미없어도 걷고 또 걷자.
=> 지루한 길 하나를 1시간동안 걸었다 - 소감은 피곤하다.

=> 천상의 아름다운 길을 아주 재미있고 즐겁고 가치있게 ~~ 걸었다
마음도 몸도 상쾌하고 즐겁다.
내일도 또 가고 가고 싶다  ( 정말? 아니 더 좋은 것이 있다면 말고..)


만일 없으면 안 될 
소중한 눈, 귀, 코, 입,
손, 발, 심장이 평소에 있어도
그냥 덤덤하게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 뿐이다.

그렇다 해도 다만 고통스럽거나 무료하고 지루하다고
비명만 지르지 않으면 다행인데(^^)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 기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또 오락게임 도박중독 등이 갖는
나쁜 점 독소를 빼내고 결합시키기 위해
위 방안을 제시해보게 된다.


8. 몰입 - 레이저빔을 완성시키고 임한다. 

담배, 커피 -> 흡기, 흡수 관조법 (집중!!)


///

분실한 키워드 몇개를
금방 찾았습니다.




8 하기싫고 해야만 하는 학습과 같은 경우

예: 회계학 공부의 경우

지옥의 수험생
아귀고를 받는 고시생
석방을 고대하는 가석방된 죄수의
마음과 집착된 의식을 벗어나

딱딱하고 재미없는 회계학 공부를 만일 하려 한다면
바로 회계사나 대기업 경영자로 취임을 마친 상태에서

문제를 찾고 의문을 일으키고
이에 대해 바로바로 필요한 답을 잘 알려주는 선생님(=회계학책)을
옆에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고
회계학책을 보면서 배워간다.



9.
기본적으로 자신이 눈으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세계가 영화라면
이 영화에 늘 출연하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사실은 자신이다.

문제는 그 자신이 주인공이기는 한데
자신의 주인공이 되어 출연하는 영화(세계) 안에서
자신은 멋진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거나,
또는 아예 주인공이 아니고 보조출연자도 못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또 오히려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다른 엑스트라들이
오히려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 일단 자신이 주인공임을 확인한다.

다시 문제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멋진 영화가 아니고 또 자신도 멋진 주인공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
만일 자신이 본 다른 재미있는 영화
예를들어
007 영화나 소림사의 주인공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현실에 임하면

곧바로 위험에 빠지고
치명적 부상, 사망의 상태에 도달하기 쉽다

보는 영화가 재미있지만,
현실이 그런 영화가 되고 그 영화의 주인공이 되면
매우 위험하고 재미도 없게 된다는 이 차이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2번 환가가 필요하다.
우선 현실이 사실은 그런 영화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극한 위험도 사실은 영화속 내용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또 한 번 원 현실상태를 환가하여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만,

○ 위험은 1번의 생노병사로 충분하다.

공연히 필요없는 위험을 만들어 나가려 해서는 안된다.

즉,
○ 우선 스스로 폭군 가리왕을 자꾸 초대해서는 안된다. 

( 이는 다른 선량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고
상대가 중요하게 집착하는 것-생명,신체, 재산, 가족, 명예, 기타를
- 침해하면
그 상대가 바로 폭군 가리왕이 되어
본인을 쫒아다니는 현상^^을 의미한다. )


○ 또는 가리왕의 교묘한 초대에 곧바로 I의 본능적 감성적 반응체계에 바탕하여
곧바로 따라 반응하여
가리왕의 고문장에 끌려가면 안된다.

( 이는 자신이 집착을 갖기 쉬운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가족, 명예, 기타 이익,,,등을
어떤 이가 침해하거나 침해하려고 시도할 때
이에 곧바로 자연스런 본능적인 반응을 취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 이후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하거나
모두 가리왕의 고문을 받는 것이 된다.
쉽게 말해 가해자가 되어 성취하면 죄수가 되어 고문을 받게 되고 
피해자가 되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화장실에서 고문을 받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본래 모든 생명이 다 평등하게 차별없이
가리왕의 고문(늙음, 질병, 사고, 죽음의 고통)에 1번은 응해야 하고
그 1회의 고문 초청장은
가리왕으로부터 이미 다 공평하게 발부받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1회의 고문도 사실 극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인데
그 외에 덤으로 자꾸 고문을 받고 또 받는 코스를
자청해 밟거나
쉽게 별도의 추가초청장에 곧바로 응해 밟어 나가기 쉽다.

그러면 자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영화가
곧바로 이상한 잔혹 영화가 되고
자신은 그 안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로 분장한 주인공이 되기 쉽다.

=>

한편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멋있는 주인공으로 변신하기 위해
탐욕을 일으키고 집착을 갖고
좀 더 무리한 방안을 지혜를 동원해 교묘하게 또 찾고 또 찾아나가다 보면
결국 또
곧바로 빠삐용과 같은 영화, 범죄영화, 또는 병상투기 영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하기 쉽다.



현실에서 가해자->죄수
피해자->응급실 중환자실의 환자,
도박실패->파산자...
기타 등등의 모습으로 이후 변신해
그런 비극적인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 쉽다.

이러면 더 곤란하다.


따라서 
=> 결국, 유익하고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하고
아름답고 선하고 가치있게 살고 
또 온 생명에게 그렇게 만들고
자신이 출연하는 배경도 모두 가치있게 만들고
그래서 자신도 최상이 되고 온 생명
온 우주도 함께 최상으로 만드는
그런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I ii III iv의 결합방안의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Ω♠문서정보♠Ω

 

 


™[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2-11-화-20-11-07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D:\G\G\02\재미.HTM
ж[ 웹 ]ж [web] http://essay007.tistory.com/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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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링크--}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 연구원 가운데 한 분이 꼭 가보지 않은 장소를 통해서만
그런 가치변환과 암기 재미와 가치의 결합 연구가 가능한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예를들어
이런 바다 위 요트 사진을 놓고
바다 해변과 요트 위에
여러 가치 있는 내용을 접합시키고
연구를 진행하면 안되는가 의문을 제기한다.

참고로 사진에 나오는 모델은 이름은 Galatea 로서
피그말리온과 관계깊은 여인이라고 한다.

원래 피그말리온 이론은
상대가 어떻든 늘 최상의 상태로 관하고 대하면
상대도 자신도 다 함께
최상으로 자연스럽게 변하고 나아가게 된다는
이론이 피그말리온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 단호히 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처음 초보자는 상대 Galatea가 피그말리온에 의해 변화된다기 보다는
피그말리온이 Galatea의 상태에 동화되어
사람이 조각상 상태나 수준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이다.

그래서 이 사진은 본인이 압수하고
자신이 상대에 끌려 변화하지 않고
반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상태가 된 다음에야
연구에 임해 볼 일이라고 본다.

앗! Galatea가 더 좋은 것 같은데용 (!!)

그렇게 좋다면, 좋은 것만 뽑아내 자신에 합치면 되죵~~

안된다니까용
l, m 초보자들은
무슨 안만 하나 제시하면
제발 좀 극단으로 나아가지 말아주세용.
무슨 극단 귀류논증 비판 방법이라고 하는 것 같은데용

전 그런 입장이 아닙니당.

좀 적절하게 멈추어 주세용
공연히 극단으로 나아가지 말아주시고~

이미 이런 여러 연구원의 극단 귀류논증 비판에 대해 제가
검토해 의견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만,
의식을 갖고 하는 행위를 할 때마다
'온 생명을 위하여 ' 라는 구호 하나를 첨가하여
늘 그 기준에서 문제를 보고 임한다
이런 방안에 대해
한 분은 이왕이면 '온 존재를 위하여' 라고 하면 어떻겠는가 하는데용

그것은 또 지나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잡담코너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http://essay007.tistory.com/786#comment11512917

앞의 내용도 성격이 비슷합니다.
원래 탐욕과 분노에 따른 감성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체계에
따라 가지 말고
중지하고 그 반대의 행위 III를 행하고
결국 하기 힘드므로 II를 결합시켜서 즐겁게 행하는게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런 안에 대해
더 극단으로 나아가
I을 그대로 하면서
여기에 II III을 접합시키면 안되는가.
이런 의문입니다.

연구하는 김에 초극단으로 가보자는 것이죵.

이론상으로 말한다면 꼭 안되어야 할 이유를 제시하기 힘들다고도 봅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그것은 핑계에 불과하고
I을 집착해 떠나기 싫으므로
I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가운데
교묘하게 II와 III의 의미나 느낌 가치를 덧 붙여 놓으면 되지 않는가
이런 이론적 제시라고 봅니다.
꼭 불가능하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대부분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론은 이론이고
사실은 그것은 핑계고
원래의 I에 대한 집착을 바탕으로
I을 교묘하게 계속 해보겠다는 그런 것에 지나지 않고
스스로나 다른 이나 모두 I의 독과 부작용에 함몰시키고 말게 된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세상에는 온갖 사교집단도 많습니다.
구호나 슬로건으로 내거는 내용이나 그 이론을 놓고 음미해보면 그럴듯 하고 좋아 보이는데
그러나 알고 보면
교주가 온갖 악행을 그 안에서 다 기획하고
최면걸린 신도를 농락하고 재산을 갈취하고 빼앗고
향락에 빠지고 자신도 남도 다 망치고
함께 지옥에서 또 만나게 되는
사교 XX교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는 생각하면 참 심각합니다.

결국 이론여부를 떠나서,
좀 적절하고 바람직한 모범안을 찾아
모범안의 방안을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위와 같은 극단적인 내용은 어떤 의미에서는 취할 내용이 분명 있지만,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자신이 피그말리온이어서 갈라테이아를 변화시킨다기 보다는
자신이 갈라테이아에 동화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원래 I에서와 같이 본능과 감성에서 취하기 쉬운 반응체계를 중지하고 떠나
반대의 행위를 하고
그로써 상대와 자신을 변화시켜 모두 구해낸다는 성경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런 가르침 가운데 하나로 앞의 관계와 혼동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킬 내용도
일부 있다고 봅니다.

예를들어
상대가 좀 안 좋은 악한 일을 요청하면 거절하지 말고
아예 그 상대와 함께
상대가 50보가자고 하면 아예 100보 더 나아간다.
뺨을 때리면 엉덩이까지 때려달라고 내민다.
카메라를 달라고 하면 카메라 가방과 카드까지 함께 내준다.

이런 비슷한 내용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취지는 I에 따른 반응체계 안에서
자신이 침해하거나 (1)
상대의 악행이나 침해에 자신이 분노를 일으키고 나아가 다시 그에 상대해 악으로써 보복을 가하거나, (1-2)
또는 자신도 완전하게 선하지도 않고
자신의 흠이 대들보라면 남의 티끌만한 잘못을 놓고 이들 악에 대해 자신이 마치 어떤 심판관이나 된 것처럼 
더 가혹한 자신의 악으로 직접 응징하려는 가해에 나서려 하거나 (1-2-3)
하려 하지 말고

이런 탐욕-분노-에 따른 반응체계를 중지하고
실질적으로 상대와 자신을 모두 선하게 할 방안을 선한 방편을
반대방향에서 찾아 보라는
그런 가르침의 취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발쟌이 훔쳤는데 아직 가져가지 않은 은 쟁반까지 더 가져가라고
내밀어 장발쟌을 선하게 바꾼 신부님처럼 행동하라는 의미라고
봐야 한다고 봅니당.

또 그것이 앞에서 말한 갈라테이아를 변화시킨
피그말리온의 방안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잘못 그 의미를 오해하여
중지하고 떠나야 할 I에 계속 머물러 있고
더 나아가 누가 하자고만 하면
반대로 자신이 더 심하게 나서 극단적으로 악을 행하고
또 그렇게 할 뿐이고
그 결과 끝내 자신도 상대도 모두 탐욕과 분노와 악에 함몰되버리고 말자는 의미로
이를 잘못 오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남들이 돌을 죄인을 향해 던지자고 할 때
자신은 더 심하게 나서서
아예 창이나 도끼나 수류탄을 찾아 던졌다던지 하는 것이
과연 그 본 가르침의 취지와 맞는가.

설마 앞의 가르침이 누군가 하나 악을 행하고
자신에게 동참을 권하고 나서면
자신이 더 극단적으로 악에 협조하고 더 악하게 행하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 것인가.

그것은 사실은 모두 그것이
상대와 자신을 모두 선하게 이끌고자 한 취지에서
앞의 I의 반응체계에 따라 행하는 것이 좋지 않고
탐욕과 - 탐욕 분노에 바탕한 가해- 그 가해에 대한 탐욕과 분노에 바탕한 또 다른 가해 보복
- 악에 대해 악으로 응징 하는 이런 여러 반응체계가
처음 갖는 그 취지처럼
선한 결과를 이끌어내거나
상대를 선하게 변화시키지 못함을
가르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I에 II III IV의 내용을 다 결합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일부 일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통상적으로 사실은 단지 I의 본능적 감성적 반응체계에 그대로 자신이 머물러 있으면서
심지어 그것을 더 심하게 행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 단지 핑계로 III을 갖다 붙여 놓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만일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옳다고 보아야 하는가는
그런 관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본다.

또 I을 실제로 마음에서 떠나지 않으면
마음은 그 자체로 자신과 다른 이를 해치며
더 나아가 실제 그런 행위를 행하게 만드는 동인이 된다.

따라서 순수 이론적으로야 가능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이런 여러 문제가 있게 되는 위험한 방안이 된다고 봅니다.
글쎄용

불교의 입장에서 살펴본다면, 거의 수행에서 999999.... 단의 단계에 있는 문수보살 정도가 된다면
또 모르겠습니당. (^^)




● 관련글
http://essay007.tistory.com/786#comment11512917


Lab value 2012/11/19 09:42

다람쥐님과 본인과 상당히 입씨름을 하였는데
그것은 두가지 문제점 때문이었다.

사운드오브뮤직에서 천둥 번개가 치자 아이들이 놀랄 때
줄리앤드류스 선생님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 생각하라고 하여
아이들이 천둥 번개에 반응하지 않고 놀라지 않게 하는 방안이
정당한 자기최면인가에 대한 논의가 하나 있었다.


○ 두번째는 일상생활에서
예를 들어 먹을 때, 쌀 때, 걸을 때,,,등등
의식적으로 의식을 갖고 행위를 할 때마다
본인은 모든 생명의 최상의 실현을 위해 ~ 이렇게 의식을 갖고 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반해

다람쥐님은 모든 존재의 최상의 실현을 위해 ~ 이렇게 의식을 갖고 하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다.

● 첫번째 논의는 천둥 번개의 예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비유가 현실 문제에 적용될 때는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자신을 쫒아다니는 스토거가 있다거나,
자신을 괴롭히는 여러 사소한 문제가 끊임없이 자신을 귀찮게 하거나,
또는 어떤 코치로부터 계속 힘든 훈련을 해야 하는 경우처럼
일상적인 문제의 경우에

쥴리엔드류스 선생님이 사용한 - 제일 좋은 것을 생각해서 만족을 얻기 방안이 - 주효한가..
아니면 그 상대의 의도나 목적을 헤아리고 고려하면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이런 이상한 문제였다.

본인 생각은 우선 행위는 - 그런 현실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맞대응을 하는 쪽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단은 그것은 1-2-3-4 의 반응을 계속 하겠다는 것이어서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본다.

그것은 비록 상대가 악의나 해의를 갖고 임한다고 하더라도
같다고 본다.
그런 경우에도 역시 장발쟌을 대한 신부의 태도가
훨씬 좋은 결과를 향하게 만들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이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관계로 살펴본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자세는
상대가 악의나 해의를 갖고 자신을 갖고 대할 때
더 의미가 있고 그 차이를 크게 만든다고 본다.

그래서 그런 고려와 그에 바탕한 행위선택은 자제하고
중지해야 하고
오히려 그런 경우에도 역시
반대의 반응체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만족을 주지 않기에 기꺼이 행하기 힘들어진다.
대부분 원수임이 분명한데
그 원수를 상대하여 사랑하는 자세로 임하라는
이상한 요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잘 하지 않고
현실적인 악순환 과정에 끌려가게 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이런 경우에도
쥴리앤드류스 선생님의 자기최면 기법은
이런 경우에 특히
맞대응을 중지하고
반대의 선한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매우 유효한 처방이라고 본다.

원수와 마주쳐
하기 어려운 상대를 호의와 사랑의 자세로
대하는 것을 오히려 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런 앤드류스 선생님의 자기최면 기법은
그런 경우에 더 요구되고 필요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 두번째 문제는
모든 존재의 최상을 위하여 ~라고 의식하면서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과잉이라고 보게 된다.

이는 물질적인 대상을 포함시켜 그것의 최상을 생각하는 입장이 된다.
그런데 사실 물질 대상이 어느 상태가 나은가에 대한 판단은 물질 자체입장에서의 판단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사람 (또는 기타 생명)의 판단이다.

만일 애니미즘적인 생각으로 물질에도 어떤 영혼이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그런 의미에서 생명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본다면 좋고 나쁨 가치의 판단에
이런 존재를 널리 포함시키는 것은 오히려 문제가 된다고 본다.

그것은 예를 들어 어떤 예술품이나 집을 위해서~~
어떤 사람이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런 지나친 반응이 있게 된다고 본다.


○ 물론 '모든 생명의 최상을 위하여~' 라는 의식을 덧붙이는 것은
그런 의식으로 어떤 행위가 정말 그런 결과를
만들어 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적어도 매 행위시 의식 속에서 그런 초점을 갖고 현상을 볼 수 있게 해준다고 본다.

음식을 하나 먹는다고 할 때
모든 생명의 최상을 위하여 먹는 경우와 다른 경우는 의식에서 초점을 맞추는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어떤 이는 오늘의 식사반찬의 맛의 고하가 의식에 들어올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즉 무엇을 볼 것인가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어떤 기준에서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의
의식의 초점과 기준이 달라진다.

그리고 사실 그 방향에서 문제되는 내용을 생각하고 어떤 연구나 고민을 한다해도
그 방면에서 행하게 된다.

예를들어 돈 문제나 회계장부가 늘 머리속에 있는 사람은
음식값의 문제가 머리에 떠오르게 되고
수입 지출이 고려에 제일 먼저 들어올 수 있다.

그래서 무엇을 슬로건으로 걸고 자신이 의식하며 행위하는가는
자신의 행위의 방향을 달리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최상을 위하여 ~
내 가족의 최상을 위하여 ~
너와 나를 위하여 ~
이런 것보다
온 생명의 최상을 위하여 ~가 이왕이면 어차피 가장 낫다고 보는 것이다.

자신이 걸어간다면 걸어가는데 어떤 구호를 붙이는가에 따라
힘이 더 들고 덜 들고 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사실 이런 구호가 있는가.
또는 다른 구호가 있는가
아예 그런 구호도 없고 본능적인 자기 중심의 반응에만
시종 일관하는가 등등의 경우에서
그 구호가 갖는 의미의 내용과 그 유무에 따라서
자신의 행위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떤가.

보통 자신의 일에만 바쁘고
또는 자신의 가족의 일에만 신경쓰고 살아간다.

다른 이웃을 신경쓰고 고민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의미다.

그런데 어떤 이가 이런 범위를 벗어나
적어도 이웃과 한 동네의 문제에 신경쓰고 그런 입장에서
가치판단을 하는 어떤 동네 모임 대표를 생각해본다면 어떤가.

분명히 앞의 경우보다 훨씬 가치의 범위가 넓어지고 커졌으며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작은 자신의 문제
그것도 당장 당장의 현재의 자신에만 얽매인 상태보다는
분명 큰데
그러나 좀 더 큰 범위와 비교하면
더 그 범위가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보게 된다.

예를들어
동네 어떤 모임의 대표와
어떤 국가의 대표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좀 더 넓은 국가의 대표가 훨씬 가치판단의 의식에 넣는 기준의 범위가 넓고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그 동네 한 모임의 대표가
어떤 의사결정과 선택 행위를 할 때마다
그의 의식의 앞머리에
' 온 생명의 최상을 위하여 '
또는 ' 과거 미래 현재의 온 인류를 위하여 '
등의 의식이 있다면
그 의미와 가치가
그것 하나로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때로는 지구의 대표 슈퍼맨과 대화를 할 자격을 갖게 만들고
또는 그 이상의 지위의 다른 가치있는 이들과 대화를 할 기본 자격을 만들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매번
작은 나--를 위해서 라는 의식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곤충 축생 들과 대화를 나누고 살어야 한다고 보게 된다.
가치에 대한 의식 수준이 그와 같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들과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이 대립하고 충돌하여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할 때 주의해야 한다.

각종 곤충 예를들어 개미나 세균을 만나면 패배하기 쉽기 때문이다.
(^^)

그러나 사실 우스개 소리같지만,
자신이 늘 중요시하고 생각하는 가치의 범위나 기준의
높이로 볼 때

제 3자의 입장에서 어떤 그런 한 주체를
다른 축생이나 곤충의 경우와 특별히 달리 취급을 해야 할 근거를
찾아야 한다면
그 주체에게서 다른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해야 하는가가 의문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즉 제 3자의 입장에서
이런 경우 그런 주체와 다른 주체를 구별하여
서로 다른 대우를 해야 한다고 하기 곤란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자신의 경우로 돌아와
늘 자신의 입장만 고집하고
자신만의 최상을 바라는 상태에서 행위를 하는 것은
결국 곤충 세균의 입장으로 자신의 가치수준을 낮추는 것이 된다.

일찍이 곤충이나 세균이나 축생도
자신처럼 먹, 싸, 놀, 하, 쉬, 자고 하는 행위를
자신을 위해서 추구하고
좋음과 나쁨을 느끼면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그런 입장에서 때로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좀 더 뛰어난 지능을 통해서
자신의 희망을 실현시키려 노력하고
성취해 낸다는 것은

그것은 자신이 그 시점에서
다른 세균보다 좀 더 힘센 세균이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자신의 병이 걸려 죽음을 맞이할 때는
그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자신보다 사실적으로 위대한 존재라는 것도
함께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가치의 우열이 이처럼 그 때 그 때의 힘의 우위나
각 주체의 수의 우위의 문제로만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 서로 반대되는 두 경우에
더 이상의 다른 기준을 통한 우열 판단은
곤란한 것이다.

○ 그래서
어떤 주체가 자신의 가치의 기준을 좀 더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형식적인 것에 불과할지라도
늘 자신의 행위를 하는 의식 앞에
'온 생명의 최상을 위하여 ~을 한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보게 된다.

그것은
그 의식만으로 어떤 다른 것을 곧바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하더라도
적어도 당연히 그 이후
어떻게 하는 것이 그런 것인가.
무엇이 그런 것에 도움도는 일인가하는
자기 의문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그 이후
또 그에 대한 길과 방안도 보여주게 된다고 본다.

어떤 이가 유쾌하게 놀고 난 뒤에
또 다른 이를 위해서
자신이 만들어낸 가치없는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면,
적어도 그런 의식이 바탕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갓난아이라면 그런 것을 기대하지 못하는데
성인이라면 그런 행위를 기대하게 되는 것도
결국 같은 의미라고 본다.

● 그런데
그런 의식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이제 이를 또 너무 극단으로 만들어

'모든 존재의 최상을 위하여~ ' 라는 의식을 갖고
임한다는 것은
이는 또 지나쳐서 오히려 문제라고 본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책상을 위하여 무엇을 한다는 것은
사실 책상의 입장에서는 어떤 방향이 나오지 않는다.

책상을 바라보는 갑이나 을이 있을 때
그들 각각이 책상에 대해 감정이입이 이루어져
책상의 입장에서 어떤 상태가 더 나은 것이라는
어떤 결론이 나올 수는 있지만,

그러나 이런 감정이입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면
오히려 바로 그런 지나친 의식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좋고 나쁨을 문제삼게 되는 주체만
이 범위에 넣어 고려해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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