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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 tarika

지옥의 형구

사람들은 지옥을 스스로 가보거나 경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지옥이 본래 없다 라는 말에 더 이끌립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람이 지금껏 몇번의 생을 살았는가.

경전에는 지금껏 몇번의 생을 살아왔는가에 대한 설명을 위해
바닷물의 비유를 듭니다.


사람이 죽으면 한 항아리 분량의 피를 흘리는데

지금껏 죽으면서 흘린 피를 모은다면,

바닷물이 많겠는가..그 피의 양이 많겠는가..


그 피의 양이 더 많고
흘린 고름의 양이 더 많고
흘린 눈물의 양이 더 많다라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런데 그 과거 생에 대한 기억을 하지 못하고
또 다시 지옥을 향한 길을 걸어가는가..


사실 수행으로 6신통이 열리면
자신의 과거생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왜 기억을 못하고 살아가는가.

반대로 말하면 과거의 불쾌하고 고통스런 기억이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무수한 끔직한 일들이 기억나고 잊혀지지 않고 생각나고,
그래서 그런 기억들이
자신에게 그리고 남에게도 도움되는 경우란,
오직 수행자가 일정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이지,
그렇지 않을 때는 그런 기억이 도움되지 않습니다.


일반인들은 사실 30일전 무슨 음식을 먹었나 라고 물으면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누군가 맛에 민감하고음식장사를 한다면

1주일전에 먹은 음식의 맛,
3일전에 먹은 음식의 맛도 쉽게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일반인들이 그렇지 않다면
그런 기억은 자신에게 이롭지 않고
그래서
먹었기야 했겠지만, 그것이 무슨 맛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라는 상태가 됩니다.



한편대승 경전에서는 지옥과 하늘이 둘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여 말하게 되는데
이 말 뜻을 오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보거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보거나 하면서,
다시 망치를 들고 나타나 두렵게 할 때

그런 고통 두려움이 아예 없는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내용대로 그 내용들은
그렇게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부처님이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되는 지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를 전제에놓고
다시 지옥과 하늘에 본체적인 차이, 실재적인 차이가 있는가를 물을 때

우리가 현상에서 서로 다르다고 보는 연필과 지우개가
본체적인 차이, 실재적인 차이가 있는가를 물을 때 "있다고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처럼 지옥과 하늘에 중생과 부처에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잘못 현상내용에 대한 가르침으로 오해하여
아무렇게 행하고 악을 행해도 다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결국 악을 행하면 살아선 머지 않아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렇게 살다 목숨을 마치면,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해도

수형기간을 알 수 없는 긴 지옥에 끌려가 머루르게 됩니다.



그러니, 악을 향해 가지 말아야 하고
악에 몸담고 있는 상태에서는
벗어나려 생각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누군가 호주에는 코알라가 살고 있다고 말해도
코알라가 무엇인지 정말 있는 건지를 모르는 사람이 있듯,

수행자들에게는 엄연한 사실로
그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모습이 있고
이라 고통당하고 저리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는데도


그것을 자신이 직접 보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여
목장의 소는 죽어도 되고 맛있는 음식일 뿐이다..이렇게 생각하는 이는
자신이 죽어서 팔릴 몸의 모습이 그와 같음을 미리 보지 못하고
오직 맛만 탐하여
고깃집을 기웃거리는 이들과 같다고 보게 됩니다.


그러면악을 행하면서도 그 과보로 끌려 가야만 하는지옥에 가지 않고 피할 길이 있는가..
그렇게 되지는 않고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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