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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 value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기초


mun님의 글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다. 


원래 이 잡담 댓글란은 간결해야 좋은데 

쓰다 보니 글이 길어진다. 

다른 페이지에 독립해 올리기로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이 댓글란의 글자제한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글이 길어지면 그것이 완성된 글이 아닌 상태라면 

휴게실 내 별도 페이지에 올리던 과거 방식을 사용하고 

조금 완성되었다고 판단되면, 

각 블로그메인 페이지에 복사해 옮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http ://blog.paran.com/thebest007/47282172

=> http://essay007.tistory.com/50

[ 옮김 ] 




●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기초 


● 인식한 내용의 옳고 그름의 차이, 

좋고 나쁨의 차이, 

그리고 그 좋고 나쁨을 

다수가 오래 많이 얻을 수 있게 할 방안에 대한 차이, 

이런 것은 사실 매일 현실에서 대두되고 

경험하는 문제 내용이기도 하다.


또 개인의 행복이나 

이상사회의 실현이나 

현상의 진리에 관해 연구를 하는데에서도 

매우 기본적으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 최종적으로 도달할 목표나 가치도 

이 문제와 곧바로 직결된다.


그래서 매번 누구나 다루는 진부한 내용도 되고 

본인 역시도 비슷한 내용을 

기존부터 많이 반복해 이야기한 내용이기도 하다.


부처, 예수, 공자, 맹자,...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아위시타인, 뉴턴, 갈릴레이, 코페르니코스,...기타 등등을 비롯하여 

초등학생...

그리고 갓 태어나 울기 시작하는 갓난아이, 

심지어 곤충, 미생물까지 

결국 매순간 또 생각하고 

풀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이 문제고, 

그래서 누구나 이 문제에 

집중할 수 밖에는 없게 된다고 본다.


삶을 잘 산다는 것, 

사회를 인류를 생명모두를 모두 좋게 잘 살게 만든다는 것과 같은 

모든 중요한 일들이 

결국 여기에서 출발하고 여기에 귀착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MUN님이 사실판단, 가치판단의 가장 기본적 내용은 

서로 기본적으로 같게 확보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 

그리고 비록 그것이 다를 수도 있지만 

다르다면 그 다름을 서로 인식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문제지적이라고 보며 

이에 공감한다.


그것이 반드시 옳고 바람직한 내용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의 다수 표준이 생각하고 느끼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관계에서는 

더더욱 기초적으로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철학적으로는 

사실판단은 참거짓을 가리고 얻을 수 있는 판단이라 하고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은 그렇지 않고 

단지 타당한가 적절한가 부당한가 그 정도만 

가릴 수 있는 판단이라고 구별한다. 


그런데, TOK님을 비롯하여 PRAJNA님, PUN님은 

그 사실판단도 근본적으로는 가치판단과 정도차이의 문제일 뿐이며 

사실판단이나 가치판단은 

모두 사실은 그처럼 절대적 옳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속성을 같이 갖는다고 본다.


가장 근본적인 진리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일의 진리[승의제]의 차원에서는 

그런 사실판단은 사실은 언어분별을 떠나고 

그 내용을 끝내 얻지 못하고 

그래서 공하다라는 결론이 된다. 


얻지 못하니, 구체적 내용에 들어가면 

위 문제대상에 포함시키지 못하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은 

위 내용 정도가 

그나마 제시할 내용이 되고 그치는 것이다.


나머지 현상적인 세속의 진리[세속제] 차원에서의 사실판단은 

사람들은 자신이 얻은 학문적 진리가 

절대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또 그 바탕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하등 불편을 느끼지 않고, 

그 진리가 자신을 실망시키는 예도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고 믿으며 생활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분별을 통해 얻는 현상적 세속적 진리의 모든 판단은 

사실 각 주체의 주관의 상태에 따라 

원초적으로 그 내용을 주체별로 얻는 가운데 건립된 내용이다.


그리고 그런 현상적 내용들 가운데 

가장 기초적 내용요소라고 할 수 있는 감각, 관념은 

주체간 그 내용을 직접적으로 서로 교류하지 못한다. 

단지 언어를 통해, 서로 간접적으로 불완전하게 내용을 추리하고 

교류하는 상태에서 생활하는 상태인 것뿐이다.


즉, 다수 주체가 공통적으로 얻어 갖게된다는 진리의 내용이란, 

사실은 언어교류나 외관 형태를 기초로 

서로 추리하여 다른 주체가 얻었으리라 추리되는 감각과 관념 내용을 

또 다른 주체가 추리하고 믿는 가운데 성립시키는 것뿐이다. 

안타깝지만 서로 초능력자가 아닌한 그런 기본적 한계를 갖는다.


이번에 병원에 가서 귀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청력검사를 하는 것도 그런 테스트의 일환이다. 

만일 색각검사나 시력검사를 한다면 

그것도 그런 기초적 문제와 관련된다. 


그런데 혼자서 실험을 해봐도 

양쪽 눈의 시력이 다른 상태라 한 주체안에서도 

그런 내용을 얻지 못함을 쉽게 알게 된다. 

어느 쪽이 절대적 기준인가. 

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쪽이 그것일 뿐이다. 


그리고 색도 양쪽 눈에서 얻는 내용이 

아주 조금은 다름을 스스로 느낀다 (나만 그럴 지도 모르지만, ) 

여하튼 나 하나만으로도 

100% 확실한 진리는 깨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안경을 서로 달리 쓰고 이어폰도 꼽고, 

또 각기 다른 희망을 갖고 

또 서로 다른 곳을 서로 집중해 바라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각 주체들을 놓고 

이들 각각의 생각이나 판단이 

얼마나 서로 공통된가를 따지면 문제는 더 어려워진다.


사람을 떠나 다른 곤충이나 동물 등을 죽 벌려놓고 

하나의 대상을 놓고, 

감각부터 공통된 감각을 얻는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곤란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심지어 무엇이 동일한 하나의 대상인가 하는 

기초적 문제부터 엄밀히 따지면 

이 역시 같은 어려움에 빠진다.


단 하나의 주체만 놓고 

단 두 순간만을 놓고 

어떤 대상이 전후로 동일한가 아닌가를 판단하고자 할 때마저도 

이는 그것을 결정한 기준을 정할 수 없다는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정말 깊고 엄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들면, 

사실판단에서 엄밀한 참을 건립할 수 없고 

두 판단사이의 판단대상의 동일성부터 확보할 수 없다는 가장 근본문제가 제기되므로, 

이 문제가 갖는 한계는 

모든 학문의 기본 바탕을 

다 함께 무너뜨리는 논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TOK님이 

열심히 무너뜨리고 다시 세우려고 노력중인 것도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다. 


그것은 엄밀하게 깊게 논의한 가운데 

절대적 동일성이나 참의 기준을 세울 방안이 있어서 

연구를 진행하는 입장이 아닌 것으로 안다. 

그런 입장이라기 보다는 

그런 근본적 한계는 있지만, 

그러나 최소한 서로간 지금처럼 

생활함에 지장이 크게 없는 정도로 

즉 현실에서 우리가 확고한 진리로 

믿어 의심치 않는 정도의 진리의 내용을 

그렇게 진리로 앞으로도 계속 세워나가고 

또 그렇게 세운 내용들을 서로 믿고 살아가게 하는 

기초적 토대가 무엇인가를 찾고 

그 토대를 다시 명확히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말 그대로 세속에서 생활하는 데 

서로 큰 지장이 없는 정도의 진리가 어떤 바탕에서 

무슨 근거로 확립이 되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지, 

원래부터 세울 수 없는 절대적 기초를 

새로 만들어 놓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실은 엄격하게 그렇다고 할 수 없는데,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다고 그 내용을 믿고 

실제로 그것을 믿는 가운데 생활하면 

큰 지장이 없게 되는 이유와 

근거를 밝히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 사실의 진리에 관한 판단이 

앞과 같은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정도가 좀 더 심한 것이 가치의 판단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이는 MUN님이 일찍이 제기한 문제로 

그 문제를 대변해 제기할 수 있다. 


한마디로 왜 암파리는 그 이상한 숫파리를 좋아하는가.

달리말하면 

왜 파리는 파리가 ( 사람이 보는 그런 추한 ) 파리임을 보지 못하는가..


그 문제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제기해 물을 수 있다. 


왜 남자 사람들은 (파리가 이상하다고 여길 그런 ) 

여자 사람을 그토록 좋아하는가.


이 역시 달리말하면 

왜 사람은 자기자신을 포함하여 

사람을 그렇게 보지 못하는가.

이런 근본문제가 제기된다.


이 모두를 원래 그런 것이다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이면 

고민될 것은 없지만, 

그러나 깊이 답을 찾으려 하다보면, 

역시 미스테리의 함정에 빠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얻을 수 있는 내용 하나는 

각 주체는 그 근거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해도 

그래도 여하튼 각기 좋고 싫어 하는 내용은 

얻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기초로 이후 

모든 대상과 상태에 대한 가치판단이 행해지고 

그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목적과 

다시 그 목적에 대한 실현방안의 체계가 건립된다는 점이다.



무엇이 선인가 악인가의 어려운 문제도 여기에 바탕하고, 

무엇을 최종목적상태로 놓고 

어떻게 추구하는 것이 '좋은가'도 

결국 결국 앞의 근본적 문제상황을 바탕으로 놓고 

논의되고 해결되야 할 어려운 문제가 된다.



그런데 그런 가치판단의 근본적 성격은 

사실은 앞에서 본 바탕이 공허한 진리판단보다 

더 공허한 물거품과 같은 상태다.


처음 현상내 사실판단이 

공한 실재를 바탕으로 

각 주체의 마음에서 일어난 물거품이라고 비유한다면,


이제 현상내 가치판단은 

모두 그런 물거품을 기초로 

다시 그 물거품안에서 일어난 물거품과 같은 것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가치문제는 

사실은 허무한 꿈 가운데에서 꾸는 

또 다시 허무한 꿈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삶에서 가장 최종적으로 의미를 갖는 것은 

오히려 앞의 물거품이 아니라 

바로 이 뒤에 일어난 물거품 바로 이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이 사실적으로 황금이든 대변이든,

최종적으로 어떤 한 주체가 

그 대상을 통해 좋음을 얻지 못하면 

그 현상은 그에게 개인적으로 무익한 것이고, 

또 반대로 좋음을 얻으면 

그 현상은 그에게 개인적으로 유익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가 얻는 그런 현상과 좋음이 

다른 주체에게도 

그처럼 좋음을 얻게 해주지 못하면, 

그 정도만큼 사회적 악에 가까운 것이고 


반대로 그처럼 좋음을 얻게 해준다면, 

그 정도만큼 사회적 선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결국 문제는 여기에 집중되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비유해 말하면 

강간범의 행위와 사랑하는 부부의 행위가 

그 결과나 내용에 차이가 있고 

서로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도 이것일 뿐이다.


그래서 가치판단이 사실판단보다 더 허무하고, 

비유하면, 허무한 꿈가운데 생겨난 꿈 속의 꿈임을 알면서도, 

그러나 문제의 포커스는 오히려 이 문제에 맞추고 

계속 생각을 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어려운 숙제라면 숙제다.





○ 한 어머니가 매번 자식과 식사를 할 때마다, 

자식이 즐겨 먹는 것을 안 먹고 

대신 안 먹는 생선머리나, 맛없는 부분만을 먹으면서, 

자식에게 자신은 그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어버이날, 

자식이 일부러 어머니가 좋아한다고 말해온 

그런 것들만 모아서 

선물로 보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 반대로 한 어머니는 

아들이 평소 라면국물에 밥 말아 먹는 것이 좋다고 매번 말했는데, 

어느날 아들이 집에 돌아와보자, 

어머니는 외출나가고 대신 메모지가 남겨 있는데, 

다음과 같은 메모내용을 보고 

어처구니 없어 했다고 하는 우스개 실화가 들려진다. 


그 메모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아들아 네가 라면국물을 매우 좋아해서, 

엄마가 라면을 일부로 끓여서 먹고 

남은 라면국물만 냉장고에 넣어 두었으니, 

엄마 외출한 동안 맛있게 먹기 바란다." 

이렇게 써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사정이 그랬다면 

상대가 그처럼 행하게 되는 바탕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상대의 행위에 대해 

상대는 평소 자신이 한 말과 달리, 

상대에 대해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혀하여 하거나, 

심지어 분노까지 일으키게 되기 쉬운데, 

이런 현상은 사실 또 어떤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가.


그런데 현실에서 조금 상식밖이기는 하지만, 

이와 유사한 상황은 정말 많다. 


그리고 위 예에서도 자식이나 부모도 

서로 상대에게 좋음을 주기 위한 것이지 

상대를 약올리게 하고자 한 노력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 역시 

앞에서 제기한 근본적 진리와 기치에 관한 문제상황과 관련된다. 

즉 모든 주체에게 절대 불변하고 

공통된 사실판단이나 가치판단의 내용은 

생각처럼 확고하게 세울 수 있지 않다. 


그리고 교류관계에서 

서로 일정한 착오가 발생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이런 문제들을 만든다. 


또 착오가 없더라도, 

모두가 서로 좋게 된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좋은 결과를 얻는 방안을 

언제나 잘 찾고 실현하는 것은 곤란하다. 


결국 그래서 문제가 많이 어렵게 되는 것이다.



또 그런 관계로 MUN님이 처음에 제기한 문제는 

매우 의미있다고 본다.


즉, 어떠한 내용이 첫 물거품 단계에서 

서로에게 생성된 내용인가. 


또 어떤 내용이 두번째 물거품 생성과정에서부터 

각 주체에게 기초적으로 형성된 내용인가..


또 어떤 내용이 그 각각의 내용을 기초로 

다시 그 이후 여러 판단 처리과정을 거쳐서 

최종 방안과 결론으로 얻어진 내용인가 등을 

서로 구별할 필요가 이런 이유로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그래서 mun님이 제기한 질문처럼, 

적어도 상대가 갖고 있는 인식과 

최초의 좋고 나쁨의 느낌의 내용과 

최종적 가치판단의 내용이 각기 무엇이며, 

그리고 적어도 세상의 표준은 무엇이고 

다시 그런 표준을 바탕으로 할 때 

다시 같이 향해 나갈 올바른 방향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문제해결에 필요하다.


만일 다르다면 

다른 바탕에서 문제해결을 꾀하고 

같다면 또 같은 바탕에서 

문제해결을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좋음을 가장 많이 주고자 하는 것이 

최종목적이라는 점은 같다.


물론 목적이 

상대나 모두에게 좋음을 주는 것을 

최종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또는 몇몇 소수 가족이나 집단만을 위해서 전념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 해도 위 문제제기는 그 범위에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위와 같은 경우 

각 목적에 맞춰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 말고 

다른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것을 상대가 받아들이게 하던지,


그렇지 않다면 위 예처럼 

자신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상대가 좋아하는 내용을 파악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것을 오래 실현시켜 줄 방법을 찾던지 해야 한다.



방안의 차이에 관한 대립도 

사실 이와 같은 문제의 연장선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다. 


즉 앞의 문제의 바탕을 놓고, 

그 바탕에서 

각 주체가 목적으로 하는 상태 

또는 여러 주체가 

모두 많이 오래 좋음을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것을 실현할 방안이 

정말 무엇인가의 문제가 제기되게 된다.


그리고 여기에 핵심적인 내용은 

곧 인과관계에 관련한 진리판단의 문제가 된다.


그런데 

모든 경우의 인과관계가 다 명확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해결이 

역시 최종적으로 제기되는 어려운 난제가 되어 

현실에서 매번 대두된다.


즉 어떻게하면 좋은가에 대해서 

대부분은 잘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단지 그래도 경험이 좀 많은 쪽이 

다른 입장보다는 조금 낫다는 것일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그렇게 

서로 100% 보장할 수는 없는 각 주장들이 서로 대립하고 

서로 나서 매번 자신이 더 옳다거나 올바르다 하며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로 

이것이 현실에서의 각 입장의 어려움이다.


이 어려움이 달리 말하면 

각종 신통한 점술사나 비법가들이 

그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받음에도 

그 직종이 말살되지 않고 

보존 번창해가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러나 그런 신통한 점술사가 

세계 수학 과학 경시대회나 

하다못해 바둑 장기 체스대회등에서 

매번 최우수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그 방안이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도 아니라는 사실을 같이 말해준다.


그러면 또 반대로 세계 수학 과학 경시대회 입상자는 

삶의 매 선택에서 가장 올바른 길을 잘 아는가. 

하다못해 복권 당첨번호라도 매번 잘 맞출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기대와 달리 그렇지는 못하다.


그래서 결국 문제는 같지만, 

이에 대해 해결방안을 찾아 고민 고민하며 

고수 위의 고수, 

다시 고수위의 고수를 찾아 자문을 구해 보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최고수의 지위를 

오랫동안 한결같이 점하고 있는 분들은 

또 한편 그 결론의 내용은 간단하기로 말하면 

의외로 간단하다. 

그러나 그 결론의 근거의 내용은 

더 한층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더욱이 그 결론이 

사실 우리가 당장 집착하는 내용과는 정반대의 내용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그 당사자분들의 삶 자체의 모습이 

우리의 기대에도 그대로 충족되는 형태는 

또 아니라는 점이다.


한마디로 그 분들의 가르침의 내용이 너무 좋아 

그 분들의 삶의 모습을 100% 그대로 복사해 

자신의 삶에 받아들이려고 생각해보는 경우에는 

당장 기대보다는 현실적 걱정들이 한없이 밀려오게 된다. 


당장 처분해서 세상에 나눠줘야 할 것들이 

한없이 나열되고

결국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만나 

고민끝에 집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처님의 경우를 놓고 생각해보면 상황은 같다. 

요구사항이 심하다면 

더 심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범위를 모든 생명으로 놓고 대하므로 

요구사항과 정도가 더 심해지는 측면이 있다.



결국 어느 쪽이 

그런 확실한 답이고 실천할 사항인가의 문제에 대해 

많은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는 없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에 얽힌 총체적 어려움이 

결국 개인의 삶과 사회적 문제해결의 어려움, 

그리고 진리를 따지는 철학이나 과학, 종교,,등의 진리발견 탐구과정의 어려움이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이를 아예 무시하고 

본능적 선택과 충동에만 맡기고 살아갈 수 있는가. 

그렇지도 못하다. 


유능한 점술사도 아닌데 

매 선택을 이 엉터리 점술사가 

스스로 자신의 점에 맞춰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겠다는 경우에 

만나는 결과들과 

삶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 1시간도 단 한 순간도, 

이런 문제와 그 문제해결을 피하고 

살아갈 도리는 원초적으로 없다. 


그래서 어렵고 어렵지만 

그래도 매순간 매순간 잘 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한 문제라도 잘못 푸는 순간부터 

그에 따라 발생하는 결과는 

그대로 고스란히 그 주체가 받아가게 된다.


잘못된 결과가 나타난 이후 

그 원인을 어디에 돌리는가는 두번째고 

첫번째는 그 결과의 피해를 스스로가 전적으로 받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남에게 적당히 떠 넘기고 살아가기 힘들다.


최초 근거를 어디에서부터 세우고 

어디서부터 출발하는가에 따라, 

결국 이 모든 결론이 

그 근거가 갖는 한계에 같이 묶이고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바둑은 바둑책을 보고 잘 이겼는데 

결과는 상대로부터 바둑판으로 얼굴을 가격받았다면, 

그 상황이 이를 말하는 것이다. 

바둑책은 그런것까지는 제시해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삶의 모든 방면이 그렇다. 

돈은 많이 벌었는데 그 돈으로 행복하게는 살지 못한다. 


싸움은 이겼는데 

자신부터 병원신세를 지거나 

교도소에 몸담고 살아가게 되었다는 측면도 그렇고, 


여차여차 수행을 하여 마음은 행복하게는 살았는데 

그러나 선하거나 정의롭게 살았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기도 한다. 


또 지혜롭기는 한데 

역시 행복하거나 선하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만난다. 


또 선하고 행복하게 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지혜롭게 산 것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게도 된다.


그리고 이런 문제 등등이 

모두 다 같은 문제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묶이고 고통을 받는다면 

그 근원의 출발점은 바로 자신이 받아들이는 

그 최초 기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자신을 묶는 쇠사슬이고 수갑이고 

자신을 위협하는 칼이기도 하다. 


그 반대도 같다. 

결국 반대가 반대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묶이어 살아가면서, 

심지어 남도 해치기도 하고 

자신도 스스로 해치기도 하는 비극이 속출하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현실에서 

그런 모습을 매번 옆에서 앞에서 

그리고 자기자신의 삶안에서 

바로 바로 보게 되는 것이다.


끔직한 것이 있어서 삶이 싫다면 

그것은 왜 발생하는가. 


앞의 여러 이유들 때문이다.





○ 그래서 문제를 풀기는 근본적으로 어려움을 알면서도 

매순간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또 당면하고 당면하게 되고 


그래서 풀지 않을 도리는 없고, 

풀려하다 보면 잘 풀리지 않아 

또 넋두리 비슷하게 주변에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리고 그 해결에 고민하게 된다. 


다음 문제도 그렇고 

그 다음문제도 

살아가는 한 또 그렇게 

계속 같은 유형의 문제를 

또 만나고 또 만나게 된다.


○ 그런데 생각해보면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문제들이 모두 이와 같은 기본적 상황에 있다는 사실 부터 

공유되지 못한다는 점이 더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사실판단과 가치판단 등에 관한 TOK님과 같은 입장이 

과연 세상의 표준적 인식 내용인가부터 검토해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쉽게 알게 된다.


즉 이런 사실의 진리판단과 가치판단의 문제에 관해 

표준적 인식이 정말 무엇인가 놓고 생각하면 

99 % 이상이 갖는 표준인식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만일 이 문제를 생명 전체를 놓고 따지면 

그 확률은 더 높아진다.


99.999....이렇게 가기 쉽다.


예를 들어 무엇이 절대적 진리의 내용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좋다거나 선하다는 것은 절대적이다. 

이런 확신에 차서 살아가는 사람과 생명이 

오히려 99.999 ... %에 가깝다. 


야구트트 병에 담긴 균들 하나만 포함시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설령 근본적 문제의 내용과 한계나 문제 성격을 알고 

문제를 대한다 해도 

사실 구체적 문제를 대하면 

그 해결이 쉽지 않은데, 

그러나 문제는 그 문제 의식부터가 그렇지 않다.


그렇기에 문제해결은 더더욱 어려움에 빠진다.


서로 각기 다른 느낌, 감정, 본능과 

자신이 얻은 감각 현상에 집착하고 

그리고 독자적으로 고집하는 분별과 견해에 집착하고 

그리고 각기 다른 가치와 해결방안에 집착하고 

그리고 고집한다. 

그리고 그 고집과 집착으로 

문제해결은 더욱 한계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자살테러가 단적으로 세계의 사회 문제를 대표한다면, 

그것은 바로 그 측면을 대표해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 여담으로 개인적 현실생활을 이에 소개한다면 

당장 지금부터 그런 유사문제에 부딪힌다.


막내 인턴연구원이 

어린이날 선물로 영화티겟을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막내인턴연구원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영화티겟이다.


문제는 혼자 가기 곤란하므로, 

대동할 연구원이 물색되었는데, 

본인이 평소 만화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평가되어 있기에 

본인이 주로 뽑힌다.


그런데 만화도 쟝르가 다양하고 취향이 또 각기 다르기에 

엄밀히 따지면 이 인턴연구원과 취향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만화에는 성인만화도 있고 

코믹만화도 있고 

순정만화도 있고 

추리만화도 있고 등등이다. 

소설이나 영화장르만큼 복잡하다. 


개인적으로 코믹만화에 집중하는데, 

만화가 원래 만화인것은 

허무맹랑 코믹하기에 그렇다는 입장인데,(^^)

거기에서도 또 취향이 

다 다른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여하튼 막내인턴연구원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어른 하나가 희생되어야 할 상황인데, 

본인이 그 역할을 그래도 맡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이제 그 시간에 내내 짜증과 불쾌를 갖고 

시간을 떼워야 하는가. 

그 정도는 어쩔 수 없이 참고 

받아들여야 할 사항에 불과한가.


아니면 어차피 본인이 해야하고 하기로 된 이상, 

다른 방안을 통해 

그것을 극복하고 즐겁고 유익하게 

시간을 보낼 방안이 있는가. 

그것이 지금 당면한 문제다.


생각해보면 문제가 쉽지 않다.


같은 영화를 같이 보면서도 

다른 시각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즐거움과 유익함 보람을 끌어내 얻을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 그런 것이 무엇인가가 

지금의 관심사항이다. 


그런데 마땅한 방안이 보이지 않아 

조언을 티겟을 구한 분에게 구하니, 

아이들은 분명 그것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알아내는 것도 

매우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생각말고 

어린이 관점에서 몰두해 집중하라는 오더가 내려왔다. 


그래서 통고를 오늘 하니, 

막내인턴연구원이 거부하는 한편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 막내인턴연구원은 

본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름 좋게 대해주려 노력하는데 

매번 최 하 순위 비호감 대상으로 본인이 꼽힌다. 


내가 막내 인턴연구원을 좋아하고 대하는 방식이 

매번 막내인턴연구원에게 결과적으로는 좋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갖고 노는 장난감이나 딱지들 

솔직히 관심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막내인턴연구원이 갖고 놀면 

매번 같이 좋아하는 척하면서 하나 달라고 요구해보는데, 

그때마다 박절하게 거부하고, 

그래서 조금 강제로 뺏어보기도 하는 것도 본인이고, 


별로 좋아하지 않아도 방귀폭탄이 생성되면 

모아서 기꺼이 선물을 보내는 것도 본인이고.

기타 등등인데, 


이것이 사실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는 

본인의 입장표시인데도 

정작 상대는 매번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다고 좋아하는 것을 원할 때 사주는가. 

그런 요청을 받으면 

바로 면담과정에 들어가 

사실은 그것을 살 필요가 없는 것이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거기에 속아 넘어간다. 

사실은 진짜 장난감이 세상에 수두룩하다.


차가 커서 갖고 놀기 불편하면 

옥상에 올라가서 보면 작게 보인다.

손에 올려 놓고 굴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다 잘 간다.

사람도 그렇고 다 같다.


이런 장난감으로 이뤄진 것이 세상인데, 

돈이 필요없다.

블록이 필요하면 

거리에 보도 블록이 가득하다. 

몇개 이 빠진 것 발견하면 

사진 찍어서 구청에 올리면 좋아한다. 

(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관심을 같이 가져준다.) 

이게 진정한 블록게임이고 

돈이 별로 들지 않고 사실성은 엄청 강하다..

좋은 게임일수록 사실성이 강한 법인데 

최고 강한 것이다.(^^)


정 찾는 게임이 질리면 

뺐다가 정확이 원상태로 끼어 놓은 종목도 

추천할만 하다.



게임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인데 

그 즐거움은 

그 게임에 동원되는 장남감과 

게임의 승률문제가 여기에 관련된다. 


매번 게임에 져서 우울해지고 

낙담하게 되고 비관적이 된다면,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신의 뜻과 

정확하게 100% 일치하게 만들고자 한다면, 

다음 방안을 추천하게 된다. 


우선 자신의 뜻을 세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인과법칙에 

100% 맞게 매번 만들어가지면 된다. 


물이 아래로 흐른다고 안다면 

물을 보고 아래로 흘러가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물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만일 미리 그 내용을 예측할 힘이 없으면 

일어난 일들은 

무엇이나 사후에 자신의 뜻으로 바꿔 가지면 된다. 


그러나 100% 자신의 뜻에 맞는 현실은 

게임으로 재미있는 게임이 아니다.


그래서 그것이 해보면 재미없음도 바로 알게 된다. 

그래서 그런 승률의 게임이 재미없다면 

이제 자신이 자신 혼자 

적당한 분야에서 그 기대확률을조금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그 분야에서 

조금은 인과관계에 거부해 보는 것이다. 

즉 안 될 줄 알면서도 거부하고 

어긋나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었는데 

무한히 살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가능한 희망을 가지면 된다. 


이제 아예 뜻대로 안되는 장난감들만 있는 승률 

0 %의 세상으로 만들려면 

이제인과관계와 전부 어긋나는 내용으로만 

자신의 뜻을 만들어 가지면 된다.


그런 식으로 자신만의 홀짝 게임을 

여러 형태로 만들어 가면재미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게임의 주관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어린아이를 상대로 

이 내용을 설명해 납득시키기에는 힘이 든다. 

더욱이 고집쟁이 막내 인턴연구원을 상대로 하면 

설득시키기 벅차다.



쉽게 방편을 찾아본다고 하는 것이 

고작 다음이다.


레고 블록이 좋아? 

그것은 그야말로 한국 곳곳에 있는데, 

레고블록과 달리 진짜가 나와..

물론 진짜라고 다 생각하게 되는 정말 진짜 "같은" 것.



사실 본인은 이런 식의 면담을 통해

알고 보면 더 쉽고 즐겁게 좋은 맛을 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설득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턴연구원이 

당장 집착하는 꿈들의 성취를 

끝내 실현 안시키려 노력하는 것이 본인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이들이 집착하고 그래서 아이들이

성화를 해대어 시달리는 상황에서 

비용은 비싸고 

내용의 실질은 허망한 수많은 어린이들의 장난감 게임 종목들에 관련해 

어른들이 속으로 솔직하게 생각하게 되는 입장이고 시각이다.


인턴연구원이 언젠가 한번 특수한 딱지를 좋아해 

아예 1박스를 통채로 가게에서 사달라고 

또 요구하고 요구해서

그것은 사줬는데, 

가격이 그리 부담되지는 않아서였다. 


그러나 내 예측대로 며칠 갖고 놀더니, 

온데간데 없다고 해서 알아보니 

갖고 나가 다 나눠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의하면 

친구와 내기 도박을 해서 한번에 

다 탕진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식이다.



영화보고 나서는 

코스를 아래층 장난감 가게로 향하는 것이 정식화되어 있는데 

처음엔 3000원 미만으로만 골라 산다고 

약속을 굳게 해서 또 데려가 보기는 하지만, 

가서는 마음이 바로 변하고 10만원짜리 정도를 붙잡고 

계속 투쟁모드 비슷하게 돌입하는 것도 

상황이 어렵고 난처한 상황이다. 


이 인턴연구원을 낳는 진짜 부모는 뭐하는지 

아예 현장에도 없고 사후보고에도 관심도 없다.



얼마나 길게 설득을 했겠는가.


이곳 사장 회장님이 

마음이 관대해서 

원하면 언제나 방문해서 이 넓은 매장에 가득한 장난감을 

다 만지고 보고 기분내고 다 할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이것을 사가지고 들고 가려고 하는가.

여기가 네 집이나 

네 장난감 전문 보관창고라고 생각하고 

그냥 한번씩 방문해 놀고 가면 된다. 


정 원하면 여기서 아예 옮겨 살고 

가끔 부모들이 널 찾아가기를 원하면 

그렇게 해줄 수도 있는데 그것이 좋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그것은 

각 상황마다 조금씩 불만이 있음은 분명하고, 

역시 상대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번에도 본인이 같이 가기로 되었다고 말하니, 

그간의 학습효과로 역시 거부반응이다.


영화보고 나서 아래층 장난감 코너에 들러 

또 십만원짜리 레고 박스를 들고 올 계획이었는지 모르는데, 

내 나름의 사전 계획은 

눈을 미리 가리고 

다른 곳에 게속 집중시키며 끌고 나오는 방안이다. 


그런데 잘 보면 무언가 어떤 입장.

즉 세상의 표준어른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그런 사회의 지도자들이 갖는 어떤 측면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여하튼 고충이 많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일단 정말 재미없는 장르의 영화가 이미 선정되어 있다는 것이고 

본인도 나름 바쁜데, 

어떻게 그 시간동안 보낼까. 


소통을 정말 잘하려면 

눈높이를 맞춰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구체적 내용이나 전개 방법

대사의 톤 표정까지도 

정신집중해서 외우고 익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이번에 잘 학습을 하고 오라는 오더가 지금 하달된 오더다.



그러나 사실 시간이 아깝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되어 있으므로 

그 만화가 던지는 주제를 심각하게 

우주적 철학적 관점에서, 고민하면서 볼까 생각중이다.


저 화소는 왜 선택되었을까. 

왜 저렇게 나타날까, 

그리고 최종적으로 아이들은 왜 저 화면에 광분하는가. 

생각해보면 매우 심각한 주제다.


MUN님이 일찍이 던진 암파리는 

왜 수파리를 좋아해 

넓은 공간에서 힘들게 한 장소에 밀접해 서로 달라붙어 있는가. 

그 주제만큼 심각하다.





또 하나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역시 건강문제다. 


어제까지는 시기가 늦은 것으로 짐작되지만, 

며칠간 뇌 종양수술에 대한 걱정을 하며 지내다, 

늦었지만 뇌수술이라도 한번 받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그냥 끝내는것이 차라리 나은가 였는데


mun님의 유혹에 넘어가 병원을 방문하고 

다행히 좀 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다행히 문제는 

매번 병원을 방문해 주사를 맞어 해결할까,

귀찮으니 집에 마늘 1박스를 사서 해결할까로 바뀌었는데

MUN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사가 그래도 나은 선택 같다..


사실 간호사가 예쁘긴 하지만 

내 취향에 딱 맞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상대가 날 좋아하니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또 중요한 문제는 

이번에는 그럭저럭 넘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그렇게 넘길 수 없는 상황은 

결국 언젠가는 조만간 닥치게 되리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공통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라고 다르겠는가.


걱정들이근본적으로 잠재하게 되는 이유다.


한편 그 시점까지 일상생활에서는 

가본 데 또 가고 또 가고 하는 것은 

정말 삶에서 하기 싫은 재미없는 일인데, 

그러나 매일 가고 또 가고 

또 대하고 또 대하는 상황에서 

매번 다른 좋음을 끌어내 얻어낼 방안을 찾고 

그래서 그렇게 얻어내는 것이 결국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표준적 사람들이 

매번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삶을 

매일 새롭게 그리고 즐겁고 유익하고 보람되게 보내는 방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구체적 현실에서 

그 구체적 방안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삶에서 당면하게 되는 어려운 문제다. 


앞 문제들도 사실 같은 성격의 문제다. 


문제의 성격을 

이렇게 모두 단순하게 같게 보고 또 잘못 대하다보면, 

오히려 자칫 삶의 무의미함, 

우울함에 쉽게 빠져들어갈수 있다. 


다 그렇고 그런 것이고 

그래서 의미도 없고 부질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은 실제도 다 뜻과 달리 잘 안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즐거움도 보람도 잃어버리고

곧 삶의 침체상태와 고통에 깊게 빠지고, 

그리고 곧 자기 파괴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니 그것도 피해야 한다.



그래서 당장은 해결이 좀 어렵지만 

결국 삶에서 잘 해결해야 할 성격들의 난제들은 

결국 앞과 같은 성격의 문제들을 

매번 잘 해결해나가는 것이고 

그리고 그 공통원리를 찾아내 

매번 다른 문제에 

또 잘 계속 변형 적용시켜나가야 함이 아닌가.



어제 방문한 캠퍼스를 

욕심을 내지 않고 코스를 좀 남겨둔 것도 

그런 대비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사실 세상은 매순간 모든 것이 

다 서로 다르다 할 것도 하나 없고 

다 평등하게 공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좀 지루하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 공간대에 펼쳐진 세상일들이 

사실은 모두 본질이 

서로 다름이 없고 평등하게 공하다고 할 바탕에서 

이뤄진 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사실 좀 지루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PRAJNA님이 본인에게 PASS 해준

공한 제일의제에 관한 명제의 

정확한 표현은 다음이다.


모든 것이 제일의제 차원에서는 

서로 "다르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서로 같다고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을 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확히 말한다면, 

세상에서 자신의 눈에 동일하게 보이는 모든 것들도 

사실은 서로 같다 할 것도 없는 것이다. 


모두 새로운 낯선 것이라고 해도 된다.



실재의 본질은 본질대로 그렇다지만, 

또 현상은 어떠한가.



시간 공간적으로 

완전히 똑같은 두 현상을 찾아내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기준을 간단하게 세우면 

또 일체 현상은 하나 둘로 묶어 세울 수도 있다.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 

그런 방식도 그것이다. 


깨끗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그것도 그런 방식이다. 


기타 등등 생략하지만, 

사실 자신 취향에 따라 

편하게 원하는대로 취해 쓸 방안이 된다.



이런 바탕에서 반복되는 

삶의 고통스런 문제에 질리지도 않고 


그러나 엄밀하게 반복되지는 않는 

매번 다른 문제에 기본 공통원리의 응용을 

좋게 잘 해서 

좋은 결과를 매번 얻어내야 하는 것이 

현실의 숙제라면 숙제다.



어제 간 병원 조금 있다 또 가야되는데 

오늘은 MUN님이 같이 가기 싫어한다. 


상대의 마음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내 마음을 그냥 바꾸고 

혼자 쓸쓸이 가고 말것인가.


서로 자신의 집착에 고집을 피우면 

언제나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여기에서도 

제일 먼저 제기된다.


어제 mun님이 내게 사용한 방안을 

역으로 mun님에게 사용해보기로 한다. (^^)



web http ://blog.paran.com/thebest007/47282172

=> http://essay007.tistory.com/50



●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기초 



Ω♠문서정보♠Ω

™[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2/05/12 13:38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기초 O:/G/G/10/휴게소잡담공간/2012-05/2012-05월_댓글보전.txt ♠mun님의 글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다.

ж[ 웹 ]ж [web] http://essay007.tistory.com/56 ♠mun님의 글에 대한 본인의 입장이다.

⇔[ 관련문서]⇔ http://essay007.tistory.com/50

{!-- 관련 문서 링크--}

인터넷상의 목록 http://story007.tistory.com/829

디스크상의 목록 ●추구미작전 O:/G/G/05/eisc/eisc-catalog.htm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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