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내용] ● 세계 각지에 나가 자신의 성취를 기할 뿐 아니라, 그러나 그 최상과 그 사랑이 좁은 테두리에 갇혀서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형제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행동하면, 그것은 악일 뿐 아니라, 따라서 그 사랑이나 최상을 바탕으로 이웃과 다른 생명의 사랑으로 확산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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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님의 paper land에 관한 글을 보다보니 유대민족의 방랑이 연상된다.
* [참고] paper land 라는 용어는 lab님이 자신의 글( http://story007.tistory.com/711)에 댓글을 달면서 만든 신조어인데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이에 관한 내용을 우선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관련글 http://story007.tistory.com/711 --------------- 아래는 lab님의 paper land 의 댓글 ------------ Lab value 2012/08/18 10:22 잡담 코너에 글을 좀 적었는데, 역시 관련된 페이지에 이어 붙이는 것이 적절할 듯 해서 다시 옮겨 붙입니다. /// PAPER COMPANY PAPER MONEY ● PAPER LAND 오스트레일리아를 호주라고 표시하여 청주 제주 이런 식으로 우리 영토의 한 부분으로 관념하는 것과 비슷하다. PAPER-가 앞에 붙은 것은 그에 해당하는 실물이 없으면서도 그 실물이 행하는 기능을 대부분 갖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요새 영토문제가 이웃 국가 사이에 불거지고 있고 각국의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핑퐁게임처럼 서로 주거니 받거니, 상대의 상처를 자극하면서 오가는 모습인데, 여기에는 영토에 대한 집착이 바탕되어 있다고 본다. 실물의 영토란 그 안에 주권을 가진 국민이 살고 그 영토에서 이익을 취득하고 배타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 현재는 어느 정도 자주적인 국방력을 갖추고 살고 있지만, 그러나 상대적으로 살핀다면, 역시 다만, 독도 등의 문제에 대해서, 다른 페이지에서도 글을 썼지만, 우리나라의 주권이 완전히 다른 나라에 뺏기지 않는 상태에서 독도만 갑자기 뺏기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본다. 문제는 오히려 독도 문제가 빌미가 되어 언젠가는 다시 서로의 주권을 뺏거나 뺏길 수 있는 전쟁상태로 들어가 다시 과거의 불행한 사태가 서로에게 재발될 수도 있다는 점을 늘 마음 속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사실 이제 과거처럼 군사력을 수단으로 다른 나라에 침입해서 주권을 뺏는 그런 시도는 서로 자제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새로 개척할 미지의 신대륙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의 영토를 확대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PAPER LAND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이미 실물영토를 기반으로 각국의 국민이 주권과 배타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타국의 영토를 그 본심이나 결과 영향력 의도가 모두, 타국의 실물적 지배권에 위해를 가하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이 법적으로는 우리 국민의 비자발급이나 영주권, 여행, 사업활동 등등이 모두 잘 보장될 수 있어서,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활동 목적이나 형태가 그런 경우에 타국의 정부나 타국 국민들도 우리가 그 타국을 우리의 PAPER LAND 로 삼아 활동하는 것을
그리고 이들이 운영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한 것은, 이제 시대가 바뀐 현재 이런 점을 생각해본다. 그러나 우리도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개인도 활동 영역을 세계로 넓혀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거기에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상대 영역에 쑥 들어가도 상대가 적극 환영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그래서 가장 첫번째 전제조건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후 세계는 그야말로 우리의 PAPER LAND 가 된다. 그러나 한국국적을 가진 각 개인이 다른 나라에서 자꾸 소란을 일으키고 시끄럽고 범죄 형태로 활동을 해나가게 되면 자제해야 하는데, 여전히 과거의 생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 ● PAPER LAND를 세계에서 만들어 가지려면 우선 실물영토를 갖고 있고 실물을 차지하고 살고 있는 타국 정부와 타국 국민들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처음에는 비자 면제 이런 식으로 시작하다가.. 그러기 위해서 한국인들의 마음이 그런 대우를 받을 만큼 모두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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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건대,
오늘날 세계화의 추세에 비춰 볼 때
어느 한 민족이 세계 각곳에 퍼져 살아가는 현상은
어떤 특별한 민족만의 일은 아니다.
한 민족이 세계로 펴져 나가 생활하는데는
해외 개척과 개발에 따른 진출도 있지만,
동시에 본국에서의 생활에서의 고난을 피해 나가는 현상도 한 몫한다고 본다.
마치 영국에서의 청교도 박해가 미국의 개척으로 이어진 것과 같다.
우리 민족도 과거 일제시대때 한국민이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 많이 이주한 것은
그런 배경이 있었다고 이해해야 한다.
여하튼 세계적으로 각 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해 두고 사는 민족에서는
한국인도 빠지지 않는다고 본다.
[재외 한인동포 726만 ] 참조 fr
http://www.radiokorea.com/news/article.php?uid=944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760397
한 민족이 세계 각국에 펴져 살아갈 때
여러 기준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에 부딛힌다.
우선 각 개인의 면에서 보면,
그가 살고 있는 그 타국 사회에서 신분이나 지위, 경제적인 면에서
성취를 거두고,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그 사회에서 존중받고
즐겁게 그리고 가치있게 잘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한민족이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각 개인이 그 타국에서 신분이나 지위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보통은 각국의 언어나 문화적 장벽에 부딛히고
주류 세력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아,
주변 소수인으로 좀 낮은 상태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측면에서 보면 차별을 받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
각국의 주류세력에 보다 더 동화되어 가는 것이 필요할 수 있지만,
한국민족은 어느 정도 신체적 특성이 현지인과 뚜렷이 구별되어져
비록 노력을 통해 언어능력이나 문화면에서는 동질화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현지 주류세력과 완전히 동화되어 살아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인종적 특성이 유사한 아시아권에 한민족이 진출한 경우와 달리,
인종적 특성이 다른 미주나 호주 기타 유럽국가나 아프리카 등에 한국인이 진출한 경우 부딛히게 되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현지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므로,
한민족끼리 집단을 형성해서 한인촌을 형성하고 한민족 한국인 사이에서만
주된 사회관계를 형성해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 생활하지만, 사실상 상대하는 고객 대부분이 한국인인 경우와 같다.
한인촌이 형성되고 이 안에서만 사회관계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한인들이, 민족의 정체성(언어나 문화 풍습)을 간직하고
한인 사회를 발전시키고,
또한 본국간의 관계를 증진시키게 되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경우, 또 반대로 현지에서 본국민과의 관계는 융화되지 못하고
고립되거나 소외 차별받거나, 일정 세력이상 커지면 경계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아마 민족단위로 세계 진출을 생각할 때는
이처럼 한 민족 개개인이 전 세계로 진출하여
그 타국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또 영향력을 발휘하고
더 나아가 그 각 개인이 전 세계에서 민족적 정서와 공통성을 통하여 서로 단결하여 결합하여
민족을 단위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또 본국 정부는 본국 정부대로 이 민족적인 교류와 유대 연결을 통해
전체적인 영향력을 증대시키고
또 한편 현지에서 이들 각각이 위험에 처할 때 이들을 보호해주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되리라 본다.
아마 이런 면에서는 세계적으로 화교, 즉 중국민족이나 유대인들이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러나 또 한편, 한 민족이 외국 각지에서 이렇게 영향력을 강화해나가면
또 현지에서는 경계대상이 쉽게 되기도 한다.
즉, 현지 입장에서는 현지에 동화되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자신들만의 사회를 구축하고
영향력 강화를 꾀하는 측면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건대,
아마 과거 유대인들도 이런 관계를 형성해 가는 가운데
유럽 각국에서 박해를 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과거 유대인들이 현지에서 박해를 당하게 될 상황에서
외국정부와 교섭하여 이들을 보호를 해주고 피해를 예방하거나,
귀환을 보장할만한 본국 정부가 없어서,
그런 피해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면도 지적해 볼 수 있다.
즉 한 개인이나 한 집단이 자신만의 이익극대화나 향상을 추구할 때
나타나기 쉬운 현상인데,
자신만이 우월하다는 독선적인 입장이 되고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에만 주력하고,
자신이 속한 현지에서 다른 집단이나 개인들과
이익을 공유하거나 베풀지 않으려 하는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그런 박해나 차별을 불러 일으켰을 가능성도 크다.
유대인들은 또 상대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는데
본래 어떤 이가 상대적으로 높은 성취를 얻으면,
한편으론 주변으로부터 시샘이나 질투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런데 그가 소수민족으로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면
더더욱 그런 질시의 대상이 되기 쉽고
또 공격이나 박해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증대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불만을 갖는 이가 다수인 현지에서
정치 사회상황의 변동에 따라, 현지민들에 의한 박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 따라서 각 개인이 외국에서 성취를 얻고 두각을 나타내는 면도 증요하지만,
그 이익이나 성취의 결과를 현지민들과 공유하고 베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한개인이 향상과 성취를 꾀할 때 자신만 향상을 꾀하지 말고
다 함께 같이 향상과 성취를 향해 나갈 때 그런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더 가치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은 과거 미국사회에서 LA 폭동의 희생자가 되어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받은 일이 있는데, 이런 사건도 동일한 교훈을 주는 사건이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세계적으로 그 민족적 우수성을 인정받으면서도
거의 2000여년에 가깝게 국가가 없이 세계에서 방랑생활을 하며 박해를 당했던,
유대민족의 경우를 참조할 만하다고 본다.
사실 유대민족은 어떻게 보면 역사적으로 시련을 많이 겪었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과 동병상린의 아픔을 나눌만하다.
특히 국가를 타국에 뺏긴 상황에서 이민족에게 당한 고통은
유사점이 많다.
○ 그러나 여기서 보다 중점을 두어 생각할 관점은 유대민족에게서 빼내야 할 단점이나, 배워야 할 장점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라고 본다.
우선 유대인은 그 민족적 자질이 뛰어나서 각 분야의 상층부를 점유하지만,
그 이익을 현지민들에게 베풀거나 공유하는 측면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 그 민족이 갖는 종교적 측면에서부터 유대교의 선민사상을 통해 독선적인 면이 강하고
타 민족을 배척하는 특성이 강하고
또 그 문화적 전통을 고집하는 자세 역시
타국 현지민들의 문화와 융화되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유대인들은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려지는 탐욕스런 유대인의 모습이 유대인을 비난하기 위해 과장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시의 유대인들이 표준적으로 갖던 인상과 단편을 당시 세익스피어가 그렇게 그려낸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세익스피어가 유대인을 특히 미워해 그렇게 묘사했던, 아니던간에
여하튼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서 박해를 당하게 하는데,
그것은 상대적으로 현지에서 소수인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다수의 현지인들과
관계를 형성할 때
표준적인 사람들의 심리를 놓고 생각할 때
무언가 현지인들에게 미움과 질시 배척을 받을 만한 형태로 생활했었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찾아 볼 수도 있다.
한편 세계 각국사람들도 조금 더 선량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할 수는 있지만,
또 표준적으로는 그들 역시도 또 외국인이나 외국민족에게 배타적이고
차별하며 경쟁 질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통의 상태라고 봐야 한다.
한마디로 유대인들이 각 현지에서 미움의 대상이 되어 활동하게 된 것은
그런 측면들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본다.
● 그래서 한국민이 세계 각지에서 활동할 때 주의할 점도 또한 그와 같은 점이라고 본다.
우선 본국은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고 주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각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한민족들이 서로 관계를 형성해 교류하는 구심점이 되어 주어야 하고,
또 현지에서 위험에 빠지게 되는 한민족을 보호해주는 역할도 담당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 한민족이나 한국 정부나 모두 자국만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여
타국이나 타국민으로부터 미움이나 질시의 대상이 되고
배척 경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 개인 입장에서는
민족 언어나 문화나 역사지식등을 공유하여 어느 정도 민족정서를 공유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현지의 언어나 문화에도 융통적으로 동화 화합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런 가운데 개인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거두어야 함과 함께
그 성취의 취지나 동기 그리고 결과면에서
그 성취를 현지의 사람들, 민족들
더 나아가 모든 인류와 생명과 함께 나누고 베푼다는 자세를 가져야만 하는
어려움을 말한다.
그런 경우에만 세계 누구도 그의 성취를 시기하거나 방해하거나 질시하지 않고
또 박해하거나 위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민이 세계에 진출하여 활동하려고 할 때에도
그런 입장에서 평화적으로 진출하고 성취해 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
유대인에 대한 통계를 참조하다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어서 첨부해본다.
/// 참조 ///
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25%(1,330만명)남짓하다.
그런 유대인들의 노벨상 수상자는 1901년부터 올해까지 조직이나 단체를 빼고 수상자가 모두 179명으로 나와 있다. 숨은
유대인까지 포함하면 줄잡아 1/3이 넘는다는 얘기이다.
특히 노벨상에서 경제학 분야에서의 수상은 6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
또한 현재 미국의 경제, 언론, 금융, 문화, 예술 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 IT왕국 실리콘밸리, 영화업계 등 금융과 언론, 문화, 예술계에서 유대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유대인들은 꾸준히 성공신화를 써오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평균 IQ가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각 국가의 평균 IQ를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이 싱가포르 홍콩의 뒤를 이어 일본 중국들과 함께 최상부를 형성하고 있다.
* 2002년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가 세계 185개국 국민의 평균 IQ를 조사한 결과,
이스라엘의 IQ는 95(26위)이고 한국106(2위), 미국 98(19위)등이다.
* 어떻게 보면 유대인들의 성취가 선천적인 능력 때문이라기 보다는
후천적인 개발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위 내용을 보면
한국인도 이런 점에서 그 성취 가능성과 잠재력을 높이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 결과면에서는 유대인의 성취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민족의 앞으로 발전 가능성을 생각하면 희망적인데,
그러나 더욱 더 노력해야 할 내용도 많다고 본다.
여기에는 한국민이 갖고 있는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그 교육열이 향하는 방향과 결과면에서 유대인들의 내용과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검토해 살펴야 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우선 교육열이 현실적 개인 성취에만 목적이 두어져서
높은 교육을 받고 성취를 이룬 개인들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사회에서 존중을 받는 측면도 있지만,
오히려 사회에서 이기적인 형태를 취하고
때로는 부정비리의 주체나 고급 화이트 범죄의 범죄자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각 개인이 학문이나 지식탐구를 주체적으로 오랜 기간 꾸준히
스스로 즐겨하는 면보다는
부모나 학교의 강제나 입시열 경쟁등으로 인해 괴로움의 인내 극복과정으로 대하게 되어
늘 피동적 강제적 억압적으로 학문을 대하고
일정기간 노력하여 입시나 취직 등의 결과를 이룬 후에는
꾸준히 즐겁게 자발적으로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또 대부분의 우수한 자질들이 세속적인 성취를 바로 거두는 분야에만
밀집되고 나머지 여러 학문분야에 골고루 포진하지 않는 측면도
대부분 세속적 성취나 출세의 수단으로 학문을 대하는
한국인의 자세와 관련이 된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유대인들의 가정 교육에서 배울점과
버릴 단점은 없는가도 살펴봐야 한다고 본다.
유태인의 자녀교육 53가지 지혜란 내용이 있어서 - 출처 fr http://blog.daum.net/chicagoacetaxi/32
이를 인용해 한 번 검토해 보기로 한다.
○ 유태인의 자녀교육 53가지 지혜
1, 남보다 뛰어나게가 아니라 남과 다르게... [ ○ 각 개인의 개성과 능력 소질을 존중하고 개발시킨다는 점에서 좋음 ]
2,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 남의 의견을 듣고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대와 융화하는 점에서는 오래 참고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
3, 머리를 써서 일하라.
4, 지혜가 뒤지는 사람은 매사에 뒤진다. [ => 지혜 자체보다는 지혜를 수단으로 이루려는 일이 이웃을 돕는 선한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또 사회적 약자도 함께 돕고 각기 소질을 개발하여 이끄는 자세가 필요하다. ]
5, 배움은 벌꿀처럼 달다.
6, 싫으면 그만두라 그러나,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 ( ○ 자발적인 자세를 중시하는 좋은 측면이라고 본다. )
7, 아버지의 권위는 자녀들의 정신적 기둥... [=> 권위적으로 이끌기보다는, 자녀와 친하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이끄는 자세가 더 중요 ]
8, 배운다다는것 은 배우는 자세를 흉내내는것에서 시작된다.
9, 배움을 중지하면 20년 배운것도 2년 내에 잊게 된다.
10, 상상력에도 한계는 있다.
11, 추상적 사고는 `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 각 개인의 종교적 선택과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특히 자신의 신앙으로 배타적인 자세를 가지면 안된다. ]
12, 어머니의 과보호가 때론 아이의 독창적인 재능을 살릴수도 있다.
13, 형제간의 두뇌 비교는 둘을 다 해치지만 개성의 비교는 둘을 살린다.
14, 외국어는 어릴때부터 습관화 시킨다.
15, 이야기나 우화의 교훈은 어린이 자신이 생각토록 한다.
16, 어떤 장난감이라도 교육용 완구가 될 수 있다.
17,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거나 애기를 들려준다.
18, 오른손으로는 벌을 주고 왼손으로는 껴안아준다.
19, 심한 꾸지람을 했더라도 재울 때는 다정하게 대한다.
20, 어른들이 쓰는 물건과 장소에는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한다.
21, 평생을 가르치려면 어릴 때 마음 껏 놀게 하라.
22, 가정교육에서 좋지 못한 것은 서슴없이 거절한다.
23, 조상의 이름을 통해 가족의 맥을 일깨워 준다.
24, 아버지의 휴일은 자녀교육에 꼭 필요하다.
25, 세대가 다른 여러 사람과 친밀하게 접촉하라.
26, 친구를 선택할때는 한 계단 올라서라.
27, 아이들끼리 친구라고 해서 그 부모들까지 친구일 수는 없다. [=>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과 작은 인연을 통해서라도 화합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본다. ]
28, 남의 집은 방문할 때는 젖먹이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
29, 친절을 통해 아이를 지혜로운 인간으로 키운다.
30, 자선행위를 통해 사회를 배운다.
31, 돈으로 선물을 대신하지 말라.
32, 음식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은 곧 신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33, 성 문제는 사실만을 간결하게 가르친다.
34, 어릴 적부터 남녀의 성별을 자각시킨다.
35, 텔레비전의 폭력 장면은 보여주지 않지만, 다큐멘터리 전쟁영화는 꼭 보여준다.
36, 자녀에게 거짓말을 하여 헛된 꿈을 갖게 하지 않는다.
37, 자녀를 꾸짖을 때는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38, 최고의 벌은 침묵이다.
39, 협박은 금물이다. 벌을 주든 용서를 하든지 하라.
40, 자녀들의 잘못은 매로 다스린다. [ => 폭력으로 악을 억누르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선을 행하게 될 수 있도록 상대를 이해시키고 이끌 수 있어야 한다. ]
41, 어떤일이든 제한된 시간 내에 마치는 습관을 길러준다.
42, 가족 모두가 모이는 식사시간을 활용한다.
43, 외식을 할 때는 어린 자녀를 데려가지 않는다.
44, 한 살이 될 때까지는 부모와 함께 식탁에 앉히지 않는다.
45, 편식 버릇을 방관하면 가족이란 일체감을 잃게 된다.
46,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은 위생상, 외견상 목적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
47, 용돈을 줌으로써 저축하는 습관을 길들인다.
48, 은은 무거워야 한다 다만 무겁게 보여서는 안된다.
49, 내것,네것,우리 것을 구별시킨다.
50, 노인을 존경하는 마음은 아이들의 문화적 유산이다.
51, 부모에게 받은 만큼 자식들에게 베풀어라.
52, 남한테 받은 피해는 잊지 말라, 그러나 용서하라. [ ○ 잘못한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며 함께 더 나은 상태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피해를 잊지 않는 것은 동일한 실수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다. ] ,
53, 기회 있을 때마다 민족의 긍지를 심어준다. [ ○ 자신의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좋다. => 그러나 그 사랑이 타 민족에 대해 배타적이거나 차별적인 자세를 형성하는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 자신의 가족, 민족의 사랑을 기초로 그 사랑을 전세계 인류 생명으로 확대시키는 자세가 필요하다. ]
출처 fr http://blog.daum.net/chicagoacetaxi/32
이렇게 뛰어난 성취를 각 분야에서 보이는 유대민족은 그러나
왜 수천년간 각지에서 박해를 당하였는가를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 유대민족이 세계 곳곳에서 방랑하면서 그 뛰어난 자질을 통해 각 곳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현재 뿐만 아니라 그 구체적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과거시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대인은 또 한편 각 곳에서 배척당하고 박해 당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우선 이렇게 뛰어난 자질을 갖춘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오랜 기간 방랑하게 된 데에는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 우선 그 민족성이 특별히 단결하지 못하고 내부 분열 대립을 일삼는 특성을 가졌다거나,
아니면 타국과 전쟁시 무력하게 대처하는 특별히 나약한 민족성을 가졌더가나 해서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도 아니면 유대민족만 아주 특수하게 오로지 평화를 사랑하고 존중 강조하여서 그런 것인가.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유대인이 대외 침략을 일삼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러나 반드시 평화적인 입장만을 취하거나,
특별히 나약한 측면을 보인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처음 유대인이 세계각지를 방랑하기 시작한 것은 A.D. 70년 경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함락된 사건이 배경이 된다.
물론 유대민족은 그 이전에도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이집트나, 앗시리아, 신바빌로니아, 알렉산더의 그리스, 로마 등의 지배를 받아온 민족이다.
그런데 로마의 예루살렘 함락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를 유랑하면서 여기저기서 박해를 당하는 민족이 된 것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세계각지를 방랑하게 된 것은
유대민족이 로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긴 시간에 걸쳐 저항한 독립 운동을 펼치다가
로마에게 패망한 사건이 배경이 된 것이다.
그리고 특히 최근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대량 학살을 당한 것은 그런 박해의 절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곳곳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빈번하게 발생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여하튼 이후 유대인은 1948년에 이스라엘을 공식으로 건국하여 국가를 유지하고 있으나,
여전히 팔레스타인과 아랍 국가들과 대립 긴장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결국 유대인의 방랑이 시작된 것은 유독 유대인이 나약하거나 평화를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민족의 인구수가 적고 군사력이 약한데도 당시의 강대국 로마에 대항하다
전쟁에서 패한 결과라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솔직한 평가라고 본다.
○ 한편 이스라엘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한 것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보면 체육부분에서 상대적으로 약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야곱이 하느님의 천사와 겨루어 이겼다는 데에서 지어진 이름이듯,
반드시 체력적으로 약한 민족이라고 볼 것은 아니다.
단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인구수가 좀 상대적으로 적으면서
각 가정의 부모들이 좀 더 지적인 분야에 집중하고,
중국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집중적으로 체육분야의 선수를 발굴해 육성하는 정책을 시행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 그래서, 유대민족이 전 세계로 방랑을 다니면서 각 곳에서 박해를 당하게 된 데에는,
오히려 유대민족이 개개인이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민족 고유의 특수한 종교를 배경으로 대외민족과 관련해 형성해 갖는
독선과 배타성도 한 몫하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오랜 기간 방랑한 사실도 매우 특이한 일이고
동시에 유대인들이 또 각지에서 뛰어난 성취를 거둔 일도 특이한 일이지만,
또 한편 미스테리한 사실은 그렇게 오랜 기간 나라를 잃고 세계 각곳을 방랑하고 지내왔는데,
민족적 종교인 유대교와 언어나 문화 등 민족성을 잃지 않고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그런데 이런 측면 가운데 유대인들이 개인적으로 전 세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측면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지만,
유대민족이 그 뛰어난 능력으로 각 분야에서 성취를 거두면서도
그 성취의 결과를 주변민족과 세계 각국 현지민들 더 나아가 전 인류와 함께 공유하고 베풀어가며
잘 융화하여 화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편협한 유대민족의 테두리에 너무 갇히고
현지민들과 융화하지 못하고,
또 한편으로는 타 민족에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여,
다른 현지민들의 경계 대상이 되거나 미움 질시의 대상이 되고 박해의 대상이 되는 측면은 배우지 말고
오히려 반면 교사로 그 반대의 측면을 배워야 할 내용이라고 본다.
즉 자신이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해 그 현지에서 자신의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고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매우 필요하지만,
동시에 현지민과 융화하고 협조하고,
함께 향상을 꾀하는 자세가 더욱 요구되고 바람직한 것이다.
○ 또 만일 자신의 본국이 주권을 상실하고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거나 없어질 때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자국민들이 언제나 쉽게 현지 주류민들의 공격이나 박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
비록 한민족이 세계 각곳에 흩어져 살더라도
늘 본국과 관계를 유지해서,
민족적 인종적 박해가 현실화될 상황에서
그런 위험을 예방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도 절실하다고 볼 것이다.
즉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더라도,
자신의 나라를 굳건하게 보존하고 유지하고 강하게 발전 시킨 가운데
자신이 세계 각지를 돌아다녀도 돌아다니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런 국가나 민족 자체가
세계 각국과 평화적이고 협조적인 관계에서 같이 향상해나고자 하는 자세를
형성하는 것도 함께 필요하다.
한마디로 세계 각곳에서 그 국가나 민족이 동시에 미움과 질시 배척을 당하는
상태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 결론적으로 한 개인은 무엇이 필요한가..
자신이 최상의 상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 형제, 민족을 사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 최상과 그 사랑이 좁은 테두리에 갇혀서
다른 이를 차별하거나 배타적인 자세가 되어서는 안되고,
그 최상을 다른 이들과 민족 인종을 떠나 널리 나누고 함께 최상이 되도록 이끌어야 하며,
또 자신에 대한 사랑도 그 사랑을 기반으로 다른 이들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 형제 민족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그 것'만 ' 사랑하고
다른 이웃에 대해 미움을 갖고 배척하고 다툼을 벌리는 것은 나쁘고 죄악이 된다.
그렇게 행동하면, 그것은 악일 뿐 아니라,
또 유대인과 같은 박해를 당하게 되는 위험에 수시로 노출되고
실제로 그 개인이나 민족의 삶도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그 사랑이나 최상을 바탕으로 이웃과 다른 생명의 사랑으로 확산시키고
다른 이웃 다른 생명과 함께 최상을 향해 나아가고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
○ 추가로 한 민족의 세계화에 대해서는 다음의 측면도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우선 해외로 나가 살 경우에 있어서 법률적인 관계면도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법률적으로는 타국의 국적을 취득한 경우 한국 국적을 계속 보유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있고,
그리고 각 국가에서 부담하는 의무와 누릴 수 있는 권리의 균형문제가 제기된다.
한 개인이 어떤 국가에서 어떤 지위에 놓이는가는 개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국내의 한국인이 누리는 권리와 의무와의 관계에 비해
여러 경우가 공평하게 되도록 조정해나가면 될 것이라고 본다.
○ 한편, 앞으로 세대가 내려갈 수록 한민족의 정체성을 어떤 기준에서 확보할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한 개인이 타국에 나가 생활하고 결혼해나가면,
2세 3세로 내려갈 수록
현지인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민족이나 인종과 섞이는 현상이 일어난다.
현재 한국 안에서도 농촌을 중심으로 외국인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아져
이런 현상은 한국 안에서도 아주 흔하게 찾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 생활에서는
2세 3세가 혈연적 특성 외에도,
한국어 사용을 잘 하지 못하고
문화적 전통이나 풍습의 내용도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백인계나 흑인계와 결혼하여
아예 백인이나 흑인의 특성이 보다 뚜렷한 2세 3세도 있게 되고,
비록 한국계만으로 계속 이어졌다고 하더라도
아예 한국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로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일부의 경우 3세 정도에서는 단지 그 뿌리가 한국에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점외에
어떤 유사점이나 공통점을 찾아 내기 힘든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이들을 한 민족에 포함시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제외시켜 생각할 것인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 우선 민족의 문제는 국적의 문제와 달리, 상호간의 공통성에 기초한 정서적 관념으로 보게 된다.
신체적으로 특성이 유사하고,
언어나 문화 풍습이 유사하고,
또 지식 기반도 유사하다는데
민족적 정체성을 찾게 되고
이를 기초로 서로간에 친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를 엄격히 요구하면, 4 세대 정도를 놓고 생각할 때
3대째 직계조상 8인이 모두 한국인이면서,
그리고 본인들이 다시 한국어를 잃지 않고 사용할 줄 아는 동시에,
문화 풍습도 공통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아주 느슨하게 요구하여,
직계 조상 8인 가운데 1인 정도만 한국인이면,
비록 언어나 풍습 문화에 공통성이 없더라도 같은 한민족에 포함시켜 이해할 여지도 있다.
앞의 상태를 동일한 민족 정서를 형성해 갖는데에
적용하는 폐쇄적 기준이라 한다면,
뒤의 경우는 개방적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 폐쇄적 기준의 적용의 경우
오늘날 한국 현실에서도 내부적으로
베트남계 필리핀계 중국계, 등등 수많은 혼혈자손이 출생하는 현실에서
과거와 같은 편협한 폐쇄적 기준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앞으로는 한국 안에서도 이런 조건을 만족시킬 대상은 줄어들고
한국 외에서는 점점 더 찾아 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한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성씨를 차지하는 김해김씨의 직계 조상도
인도 계의 허 황후에 그 최초의 뿌리를 두고 있고
그외에도 많은 성씨가 중국 등에 기원을 갖고 있다.
또 폐쇄적인 기준을 적용하다보면,
한반도 안에서도 북쪽과 남쪽 그리고 중국내 거주 조선인
일본 거주 재일동포에서도 차이가 발견되고,
또 같은 한국 안에서도 각 지방따라 차이를 벌려 세울 수도 있다.
심지어 거기에 다시 종교나, 출신학교 등까지 다른 요소까지 겹쳐 나누다보면,
더더욱 편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특성에 따라 내부적으로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자체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양상도 실제로 나타난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서는 서울 안에서도
강남 강북의 분열을 말하게 된다.
이런 것이 사회의 대립 갈등 및 분열로 이어지는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점을 생각해봐도
이런 폐쇄적 기준은 문제가 많다고 보게 된다.
폐쇄적 기준을 엄격하게 지키려하면
혈연관계도 오히려 근친혼을 장려하게 되고,
생물학적으로도 유전자 가운데 열성적인 특성을 강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정서적 심리적으로도 매우 편협하고 배타적이며 부정적인 태도를 형성시키게 된다.
예를들어
사람들은 자신과 공통성이 적다고 인식하는 다른 이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심리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심리가 바탕이 되어
배타적이며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상태로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상호 교류과정에도
스스로 아주 좁고 폐쇄적인 상태로 사회관계를 형성해가는 부정적인 측면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브라질 원시림 속의 원주민들이나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처럼
오지나 산지에서 폐쇄된 부족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해야 한다.
///
○ 폐쇄적 기준의 과학성 여부,
한편 이런 폐쇄적 기준을 적용하려는 입장에 대해서는
이런 문제 이전에
한민족의 전형적인 형태가 과연 정확히 무엇이며,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미 중국이나 북방 민족과 역사적으로 많은 교류를 거친 한민족은
비록 황인종이나 몽고계인종으로서의 넓은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지만,
그러나, 혈연적으로는 엄밀한 구체적 정형적인 표준을
결정하기는 힘들게 된다.
얼굴 하나를 놓고 보아도 둥근형 네모난 형 가운데
어떤 것만이 한국인의 전형이라고 결정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머리카락도 곱슬, 대머리, 뻣뻣한 머리카락, 부드러운 머리카락, 검은 머리카락. 고동색 머리카락 가운데
어떤 것만이 한국인의 전형에 해당한다고 결정하기는 힘들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의 직계 조상수를 생각해보기로 한다.
수학적으로 자신의 직계 부모는 아버지와 어머니 2 분이고
다시 아버지는 또 아버지와 어머니 (조부, 조모) 2분을 갖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또 아버지와 어머니 (외조부, 외조모) 2분을 갖는다.
그리고 그 각분은 또 그와 같이 그 부모 2분을 갖게 된다.
그래서 수학적으로는 10 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2의 10승 1024 명의 직계조상을 벌려 세울 수 있게 되는데
앞과 같이 엄격한 폐쇄적 조건을 적용한다면,
이들이 모두 다 한민족인 경우만을 생각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30 대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60 대로 거슬로 올라가면 더더욱 직계조상수는 많아지게 된다.
예를들어
30 대 직계 조상수는 10억여명 (1,073,741,824) 명이 벌려 세워지고
60 대 직계 조상수는 다시 115경 2900조 (1,152,921,504,606,846,976) 명이 수학적으로 벌려 세워진다.
1세대가 평균 30 년이 소요된다면, 60대는 1800 년 정도의 시간을 예상할 수 있는데,
대략 1800 년 이전에 자신의 직계 조상수가 115 경이 벌려 세워진다는 것은
수학적인 계산 결과이다.
그러나 이런 직계 조상 숫자는 ,
역사적 현실과는 맞지 않는 결과가 된다.
즉, 1800년 전에 한반도에 115 경 2900 조 명에 해당하는 인구 자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수학적 계산이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고,
결국 1800 년 전 일정 범위의 인구수에 위 정도로 상호 공통관계가
상대적으로 중복되어 있다고 보게 된다.
즉 1800년 전에 살았던 한 사람은 현재 자신의 친가쪽 할아버지도 되는 동시에
외가쪽 할아버지도 되는 그런 중복적인 지위를 상대적으로 매우 중복해서
다중적으로 갖는 것을 말한다.
당시의 한 사람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로 중복적인 신분지위를 가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당시 인구를 백만 명 정도로 잡는다면 한 사람이
약 1조( 1,152,921,504,606 ) 가지 정도의 중복지위를 갖는 것을 말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관계를 따지면 1800년 전 당시에
한반도 안에 존재하던 한 사람이
이런 자신의 직계 조상수에 포함될 확률은
포함되지 않을 확률보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사실 A.D 200년경,
북쪽의 부여나, 동예, 옥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지방에서 살던
각 사람은 사실 오늘날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직계 조상에
골고루 포진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국이나 몽고 일본
또는 그외에
지역적으로 아주 먼 곳에 있는
예를들어 아프리카나 유럽쪽의 사람과는
자신과의 관계성이 상대적으로 이들보다는 보다 희박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엄밀히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의 결합으로 한 개인이 탄생하는데
성염색체는 부계로부터 계속 이전받으며,
그외의 개인의 특성은 골고루 이전받게 되고,
또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DNA는 모계 계통으로부터 계속 이전받는다고 한다.
만일 직계 조상을 찾아 1800년 전이 아니라 십만년전 백만년전으로 자꾸 나아가면
현재 생물학적으로 다른 종으로 생각하는 종과 인류와의 공통성마저도
찾아지게 된다.
○ 이런 바탕에서 앞으로 후세대 들간에 무엇을 근거로
한 민족의 전형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또 이를 기초로
서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다양한 필요성과 기준에 의해 서로 유대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또 적대적인 관계가 되기도 한다.
예를들어, 일본의 천황의 계보에 백제계나 신라계 고구려계의 왕족들이
들어가 있지만,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매우 적대적인 대립관계를 형성해 갖는다.
그와는 반대로 상대적으로 혈연적 문화적 관련성이 적어 보이는
미국에 대한 관계는 이보다 더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반면, 오늘날 서구 인종과 결혼하여,
신체적 특성이 백인이나 흑인의 특성과 가까워
한국인의 특성과는 매우 다르고,
외국에서 생활하여 문화적 특성마저 매우 달라져서,
이질감이 느껴져도
또 매우 가까운 관계로 인식하게도 된다.
대표적인 예로 미식축구 스타 하인즈 워드를 생각할 수 있는데,
어머니가 한국인이고 아버지가 흑인으로서,
한국인이 흑인 혼열에 대해 많이 편견을 갖지만,
그가 그후 미식축구 스타로 성장하자,
같은 한국계임을 강조하게 되는 현상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가 인터뷰차 찾아온 기자들을 상대로
그간 같은 한국민으로부터 편견과 차별 등을 받아 슬픔을 느꼈던 것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바로 위 내용들과 관련이 된다고 본다.
즉 무엇을 기준으로 우리가 유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또 무엇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적대적이고 배척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문제이다.
이를 위해 앞의 폐쇄적인 경우와는 반대로
좀 더 개방적인 예들을 살펴보자.
○ 개방적인 경우의 실례
○ 오늘날 이스라엘은
널리 광범한 지역에서 유대인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사실 유대인들도 수천년에 걸친 방랑의 세월을 거치면서
인종적 특성이 많이 희석된 상황이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사실 근본적으로는
어떤 DNA 요소나 어떤 신체적 특성만 가지고
유대인의 표준적 정형적 특성을 정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또 다른 민족사이에서 몇몇 구별되는 특성을 기준으로
대강 찾아내게 되는데,
대강 유대교라는 종교적 특성과,문화적 특성. 그리고 몇몇 신체적 특성으로,
유대인여부를 판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사실 백인에서부터 흑인에까지 다양한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이스라엘은
솔로몬과 시바 사이에서 낳은 메네릭의 후손으로 전해지고,
이디오피아에 거주하는 흑인(Falash Mura)들을
그들이 비록 기독교도이지만,
유대인으로 인정해 이주를 허용하고 있다.
비록 이들도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인종적 특성으로 인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하지만,
여하튼 개방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널리 유대인의 범위를 인정한 것이다.
관련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0103436
그러나 유대인들이 나름대로 개방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반면,
타민족 타종교인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대립관계를 형성해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동전의 양단면처럼,
우리라는 의식이 갖는 긍정적 측면의 반대면으로
부작용과 단점의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좀더 개방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예를 살펴보면,
중국과 같은 경우도 생각할 수 있고,
아예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과 같은 다민족 국가를
살펴볼 수 있다.
미국과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는 대법관에 흑인도 있고 백인도 있으며,
최근에는 대통령도 흑인마저 탄생하였다.
어떻게 보면 미국의 주류는
백인 앵글로 색슨 청교도로 보게 되지만,
미국은 종교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다양한 형태가 뒤섞이고 모여 있는 가운데
또 미국이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서로 서로 공동체 의식을 갖고 국가를 형성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생각해보면
아무리 한국계라고 해도
흑인 대통령이나 흑인 대법관을 상상하기 힘든 것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 한국민도 최근 인종적으로는 가까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넘어
백인계 흑인계 등으로 광범위하게 혈연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들 후손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들 후손은 각 민족의 중간 영역에 남기 쉬운데,
앞에서 본 것처럼
우리가 이들을 폐쇄적 기준을 적용하여 배척할 것인가.
아니면 개방적으로 적용하여 우리의 범위 안에 포함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입장에서도 고려가 필요하고,
또 상대의 입장에서도 고려가 필요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민족적 정서가 형성되는 요소는 상호간에 갖는 유사 공통성이고
그런 유사 공통성이 서로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은
개인대 개인이 유대감을 쉽게 형성하고
또 친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이익을 교류하게 하는 기초가 되어준다.
그런데 폐쇄적 기준과 개방적 기준 가운데 어떤 측면이 좋은가.
본래 넓은 다수가 어느 한 공통 요소로 '우리'라는 관념을 함께 갖게 될 때,
함께 유대관계를 갖고 친밀감을 갖고 쉽게 상호 이익을 교류하면서
공동체를 건설하는 긍정적인 작용도 갖지만,
또 그 우리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이들을 남이라고 관념하고
밖으로 배척하고 차별하는 부작용도 일어난다.
따라서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이 우리의 관념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공통 요소를 널리 인정해
유대와 사랑을 갖는 그 '우리'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한편,
그 우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그 범위 밖의 사람들에게 대하여 반대로
차별이나 배척의 형태로 발산시키지 말고,
그 범위 밖의 사람들에게도 '우리'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그 사랑을 널리 확대 발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우선 '우리'로 관념하는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큰 바다가 바다가 되는 데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만일 개방적 기준을 적용하여 유대관계를 형성하면,
우리는 바다처럼 넓어지게 되지만,
그런데 만일 이런 민족적 정서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매우 폐쇄적 기준을 적용하면,
한민족은 세계와 교류하면 할 수록
더욱더 좁은 골짜기 내지는 호수의 상태처럼 그 입지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런 폐쇄적 기준을 갖고 다른 이와 관계를 형성하게 되는 이에게
부정적인 정서를 갖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역량을 함께 모아 교류하고
결집시키는데 서로간에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한국계 가운데,
어떤 이는 흑인이라고 편견을 갖고
또 어떤 이는 백인이라고 편견을 갖고
어떤 이는 중국계나 동남아계라고 편견을 갖는 것이
바로 그렇게 정체해 썩어들어가는 호숫물의 형태로
한민족을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범위를 편협하게 폐쇄적으로 형성하는 것보다는
공통요소를 널리 찾아 그 바탕에서 넓은 우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우선 서로 유대관계를 널리 형성하고
넓은 기반에서 상호간에 교류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 개방적 기준을 적용하면,
어떻게 보면 공통점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서로간에 쉽게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친밀한 교류를 할 근거가 찾아지게 된다.
사실 민족적 정서를 어떤 기준을 통해 형성해 갖고 유지할 것인가는
어떻게 보면 각 개인의 정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그런데 개방적 기준을 통해 동질감을 형성하게 되면,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요소가 더 많아지고
차별하거나 배척하게 하는 요소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점에서도
개방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게 된다.
다만, 점차 세대를 내려갈 수록
한국계와 관련이 적어지고
신체적 인종적 특성도 사라지고,
언어나 문화적 특성마저도 공통성을 찾아 보기 힘든 상태에서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관계성을 찾아 유대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남는다.
사실 과거의 족보나 호적제도처럼,
외국에 나간 한민족의 후손들에게 이들 내용을 적용해
서로간의 관계성을 증명하거나 확인할 방안은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후세의 각 개인이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나름 개방적 태도를 갖고
또 한국과 유대적 관계를 가질 필요성을 갖고
개별적으로 노력을 할 사항이라고 본다.
그것은 또 반대로 본국이라고 할
한국이 그런 이들에게 널리 개방성을 갖고
차별없이 공평하게 대우해주는 자세를 유지함과 함께,
또 한국과 관계를 맺으면 가질 수 있는
긍지나 장점들을 많이 갖고 있을 때 가능하다.
즉 후대로 내려갈 수록
한 개인은 수많은 국가나 민족과 관계를 가질 가능성이 많은데
한 개인이 이런 수많은 관계 가운데 한국과 갖는 관계성으로부터
한 개인이 자긍심을 갖고
한국과 유대적인 관계를 형성할 계기가 마련되어질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후대의 한 개인이
부족한 한국어를 다시 배워야 할 필요성도 자각하고
또 한국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추고 노력하여
한국인들과 개방된 기준에서
동질성을 회복해낼 것인가 아닌가는
후세의 개개인의 선택 사항이 된다고 본다.
만일 명백히 외국인인 경우에도 그런 노력을 하는 경우에는
한국적을 취득하고 새로운 한국인이 되기도 한다.
한국관광공사의 독일계 귀화인 이참씨와 같은 경우는
사실 원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다운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또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그런
개인의 노력에 바탕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한편 이처럼 우리가 우리를 관념하는 기준이 매우 넓어져
우리의 범위가 아무리 넓게 되더라도
그 범위로 우리의 범위를 닫아버리고,
그 범위 외의 사람들을 남이라고 생각하여 배척하거나 차별하는 형태로 나아가면 안된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갖는 사랑을
다시 이를 우리의 범위를 넘어
다른 모든 인류와 생명으로 널리
공유하고 베푸는 마음과 실천행위를
확대시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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