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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정신의 위치에 관한 판단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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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내용] 정신의 위치에 관한 착오 
 - 정신은 육체의 사멸에 따라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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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의 위치에 관한 착오 문제

○ 서- 논의 이유 


정신의 위치에 관한 착오문제는 

정신이 

자신의 눈으로 바라 본 자신의 육체의 사멸에 따라 

함께 소멸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둔다. 


이 문제는 자신이 살면서 

목표를 설정하고 

인과관계를 이용하여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와 인과관계와 관련하여 

고려에 넣어야 할 기간을 

단순히 자신의 육체가 존속하는 기간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는 것도 의미한다.  


그래서 정신의 위치와 함께

정신과 우리가 생각하는 육체의 관계를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신의 위치에 관하여 사람들이 착각을 일으키는 문제를 

그 동안 반복해 기술했는데 

어디에서 기술했는지 찾아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가운데 하나를 찾아 제시하니 

미리 논의할 내용의 대강을 파악하고자 한다면, 

참고해주기 바란다. 


2012년 12월 30일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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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고 닫기 ]

참고 http://essay007.tistory.com/798#comment11623727




이는 최근 little님이 제기한 의문과도 관련된다. 


즉 다음의 질문이다. 
[ 펼치고 닫기 ]

참고 http://essay007.tistory.com/881#comment12418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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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진리에 관한 판단, 

가치에 대한 판단, 

목표의 설정과 

그 실현방안에 대한 판단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과 착각이 

삶의 전반적인 내용을 잘못된 형태로 이끌어가는 경향이 많다고 본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자신과 자신의 정신의 정체, 

정신의 위치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는 잘못된 판단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특히 자신의 정신이 

물질[육체)의 자극 반응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의 물질 현상에 불과하며, 

자신의 육체의 소멸과 함께 정신도 소멸되어 버리는 것인가. 

그래서 정신은 한 생으로 그 존재를 그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신은 

머무르는 육체의 종류(생명의 형태)를 달리하여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볼 것인가의 문제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것은 삶의 목표나 인과관계의 고려 등에 있어서 

고려할 기간을 달리하는 문제를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의 위치와 정체를 밝히는 문제가 

선결문제로서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관해 일반적으로 갖는 착오가 무엇인가를 밝히려면, 

되도록 그림을 잘 그려서 설명을 함께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한 페이지에 그림을 그려 붙여 설명하기로 한다. 


 



[ 참조 그림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2327E45525704BE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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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에 관한 수많은 오류와 착각의 문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진리에 관한 판단에는 수많은 오류와 착각이 들어 있다. 



특히 이 논의에는 정신작용과 관련하여 

논의를 하게 되는데 

마음 안의 내용물을 언어로 가리킬 때는 

그 표현이 정확히 어떤 내용을 가리키는 것인가를 

글만 가지고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위와 같은 그림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비록 그림의 도움을 받지만, 

그래도 위 그림이 무슨 내용을 가리키는가에 대해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선 그림으로 표시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위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면 무언가 보인다. 

이처럼 눈을 감고 뜸을 반복하는 가운데 

자신이 눈을 뜨면 나타나 얻게 되는 내용을 

한 순간에 불잡아 둔다고 생각하자. 


그것이 위 그림 5 에 그려진 내용이다. 


여기에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 '2' 와 또 다른 제 3자 '3' 이라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꽃도 하나 있다고 그려 놓았다. 

그러나 하늘과 별과 구름...세계, 우주 그런 모든 것이 위 그림에 포함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사물[그림에서 4], 

정신[그림에서 5, 5^], 

생명체[1, 2, 3], 

이렇게 나열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 참조 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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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그림의 자세한 설명 ] 


참고 그림에서 각 기호 숫자 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위 그림은 1 이라는 사람(자신)이 

2 라는 사람 즉 2 인칭의 상대(너)와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가정해서 그린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내용은 자신과 상대, 그리고 3 이라는 3 인칭의 사람 (그)의 정신활동과 

그 외 외계의 사물로 생각하는 자연, 하늘, 별, 그리고 꽃나무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여기서 1, 2, 3 인의 밖에 존재하는 외부의 사물로 생각되는 것의 대표로 4 의 꽃을 표시했다. 


한편, 이 전체 그림은 1인칭 자신 즉 1 이라는 사람이 바라본 모습을 그려 놓은 것이다. 


먼저 자신은 눈을 떠 바라볼 때 

자신의 눈이나 이마, 뒷머리, 등, 허리 등이 보이지 않고 

자신의 손과 발 등 자신의 몸으로 생각하는 것 가운데 일부만을 보게 된다. 


그리고 2 와 3 이라는 사람의 모습과 

꽃이라는 4 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자신이 눈을 떠 바라보는 모습을 큰 사각형 그림 안에 담아 보았다. 

이 내용물 전체를 담은 네모선(그릇)을 5 라고 표시해본다. 


그래서 5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결국 자신이 눈을 떠 얻어낸 감각내용물 전체를 뜻한다. 

그리고 이 5 안에 들어온 각 내용물은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들어 와 있는 내용물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5 를 이런 각 내용물을 담은 일종의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관념하고 

이것을 자신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정신은 

시각적 감각내용물만 담는 그릇이 아니고 

기타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의 감각내용물도 담고, 

그외 

관념적 내용(생각) 등도 담고 

기타 잠재적인 정신 내용들도 담는 그릇이므로 

그림 5 의 선 안에 담겨진 내용물 외에 

좀 더 다른 내용까지 함께 담는 큰 그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설명과 이해의 편의를 위해 

그림에 그려진 시각적 감각 내용물을 

자신의 정신의 그릇에 담긴 내용물 전체로 보기로 한다. 

그리고 5 로 표시된 네모 선(그릇)이 

자신의 정신이란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한편 자신의 정신을 5 라고 표시한다면,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2 라는 사람도 

자신과 유사하게 그런 정신의 그릇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을 자신의 5 와는 구별하여 5^ (= 5캐럿)으로 표시하기로 한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 즉 2 라는 사람도 

그의 정신 영역 안에 

1 자신이 본 내용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1^, 2^, 3^, 4^,  [^= 캐럿] 으로 표시하여 나타내기로 한다. 


이 때 사람 1 의 정신 5 에 담긴 내용물과 

사람 2 의 정신 5^ 에 담긴 내용물은 

특히 각기 1 과 2 자신의 모습에서 차이가 있다. 


즉 사람 2 의 정신 안에 얻어진 내용물에서는 

2 자신의 모습은 2^ 으로서 

역시 2 자신의 일부 모습을 얻게 될 것이다. 

즉 2 자신의 눈이나 이마, 그리고 등과 허리 등 뒷 모습은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1 의 정신 5 에서는 

1 자신의 모습의 일부만 얻는 것과 상황이 같은 것이다. 



위 내용을 이해하고 [ 참조 그림 ]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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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식적으로 갖는 오류 착각의 내용들 



그런데 이들과 관련하여 상식적으로 갖게 되는 판단에는 수많은 착각과 오류가 들어 있다. 

우선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나열해보기로 하자. 



▼ 우선 대표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물[그림에서 4]을 보았다면 이것을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 이것이 착각의 하나다.

즉 자신이 어떤 사물[그림에서 4]를 보았다면, 

이 사물[그림에서 4]를 '대상'으로 하여, 자신[그림에서 1]과 자신의 눈[그림에서 안 나타나지만, 그림 1에 붙어져 있는 눈]이 관계하여 

그 모습[그림에서 4]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자신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나, 2, 3 등]을 자신이 그 내용을 얻게 된 대상 자체로 이해한다. 

- 이것이 진리판단에 관련한 착각의 하나다. - 



▼ 또 자기 자신을 자신이 자신으로 본 모습[그림에서 1]로 생각한다. 

또 상대나 제 3자도 역시 그와 같이 자신이 본 모습[그림에서 2나 3]으로 생각한다. - 이것도 착각의 하나다. 



▼ 그런 가운데 

자신의 정신은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이 물질적 자극- 반응의 관계를 거쳐서 

내용을 얻는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은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에 위치하는 것이고

자신이 자신의 육체로 본 내용[그림에서 1]이 죽어 허물어지게 되면, 

자신의 정신도 함께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이해한다. 

-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고 오류의 판단이다.  



▼ 한편 위와 같은 내용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를 한다. 


즉 2 라는 사람이 어떤 정신내용을 일으킨다면, 

자신이 외부대상으로 본 내용 [그림에서 4]와 그 2라는 사람[그림에서 2]가 관계하여 

그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관계로 이해한다.  

즉 다른 사람 2 라는 사람의 정신은 자신이 본 2 의 육체[그림에서 2] 안에 위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다. 

또 그런 관계로 제 3자의 육체로 본 내용[그림에서 2나 3]이 죽어 허물어지면 

그 사람의 정신도 함께 사라져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다.   




▼ 더 나아가 자신이 위와 같은 내용을 보았다면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의 실재내용을 다시 추리해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본 내용[그림 전체의 내용]과 같은 것이 

실재내용으로도 그대로 존재한다고 추리해 생각하게 된다. 

- 이것도 하나의 오류판단이다. 

 


기타 진리판단에 관해서는 이외에도 수많은 오류와 착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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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설적 결론의 제시 


이하에서는 이와 같은 상식적인 판단들이 왜 진리에 관한 오류의 판단인지를 자세히 제시해 나가기로 한다.  


그러나 그 근거를 제시하고 설명을 붙이면 내용이 복잡하고 분량이 많아지게 된다. 


따라서 우선 위에 밝힌 내용이 오류임을 전제로 하고  

대신 어떤 내용을 옳은 내용으로 보아야 하는 지를 먼저 간단히 밝히기로 한다. 


이 내용은 이 논의가 논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결론적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아직 그렇게 보아야 할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가운데 

미리 결론으로 제시하는 내용이므로,  

이들은 본 논의에 앞서 앞으로 논의를 통해 얻어 내고자 하는 

가설적인 결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를 가설적 결론이라고 표현한다면, 

그런 가설적 결론은 다음과 같다. 



▼ 우선 대표적으로 자신이 어떤 사물[그림에서 4]을 보았다면 이것을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 이것이 착각의 하나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어떤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을 대상으로 보고 

또 이런 내용을 자신의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물질로 생각한다. 

또한 이로써 자신이 물질로 이해한 내용과 자신이 정신으로 이해한 내용이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놓이는 내용으로 생각한다. 


▽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이에 대한 가설적 결론은 다음이다.  


=> 어떤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는 자신이나 '자신의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자신의 정신 안에 이미 얻어 놓은 정신적 결과물이고 정신적 내용물이다.  

이런 내용을 물질이란 단어로 표현하고 이해하였다면, 이런 물질은 정신 안의 내용이고 정신적 내용물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이런 내용은 자신이 대상으로 본 내용[그림에서 4의 내용]을 대상으로 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즉,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는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게 해준 대상이 아니다. 

다만 대상의 의미는 상대적이다. 

만일 다른 관념적 내용[ 예를 들어 꽃의 모습을 보고 생각하게 된 아름다운 꽃 등의 생각]의 경우에서는 

이런 꽃의 모습[그림에서 4]를 대상으로 하여 그런 관념적 내용을 일으켜 가졌다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을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게 해준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게 하는 과정과 그 대상은 

정신이 어떤 실재의 대상[#]을 상대하여 자신의 정신 안에 그런 내용을 얻게 된다고 '추리'할 수는 있다. 

이런 경우 그런 실재의 대상[#]의 정체는 뒤에 다시 자세히 논의한다. 


보통 이런 내용을 얻게 해준 실재의 대상[#]은 

자신이 얻어 놓은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와 동일하거나, 

또는 그와 유사하거나, 

적어도 그와 비례적인 관계를 갖는 어떤 내용으로 추리하게 되지만, 

그것은 모두 그렇게 단정할 근거가 없는 사변적인 추리에 불과하다. 

만일 이렇게 추리해 생각하면 이것도 하나의 오류의 판단에 들게 된다.  



▼ 한편, 자기 자신을 자신이 자신으로 본 모습[그림에서 1]로 생각한다. 

또 상대나 제 3자도 역시 그와 같이 자신이 본 모습[그림에서 2 나 3]으로 생각한다. - 이것도 착각의 하나다. 


▽ 이에 대한 가설적 결론은 다음이다. 


=> 자신이 자신으로 본 모습,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는 앞의 사물의 모습과 같이 

역시 자신의 정신 안의 내용물이다. 

이는 앞의 내용에 준하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 그런 가운데 자신의 정신은 자신의 육체[그림 1]이 물질적 자극- 반응의 관계를 거쳐서 

내용을 얻는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의 정신은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에 위치하는 것이고

자신이 자신의 육체로 본 내용[그림에서 1]이 죽어 허물어지게 되면, 

자신의 정신도 함께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이해한다. 

-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고 오류의 판단이다.  


▽ 이에 대한 가설적 결론은 다음이다.  


=> 자신이 자신의 모습으로 본 모습,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은 

자신의 정신 안의 내용물이고 

자신의 육체가 아니다. 

또한 자신의 정신은 자신이 육체로 본 모습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자신이 육체로 본 모습에 상응하는 실재의 육체[#]를 추리한다면, 

이런 실재의 육체[#]에 자신의 정신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역시 '추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앞의 사물의 경우와 같이 

자신의 실재하는 육체에 대한 추리에 있어서도 

그 실재하는 육체는 

자신이 스스로 본 자신의 육체의 모습과 동일하거나, 유사하거나, 

비례하는 어떤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만일 이렇게 추리해 생각하면 이것도 하나의 오류의 판단에 들게 된다. 


한편, 자신의 정신은 오히려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이나,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 타인의 육체의 모습[그림에서 2,3]을 

모두 그 안에 내용물로 담고 있는 전체의 그릇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위 그림에서 본다면 5 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정신이란 그릇이 거꾸로 그 안에 담긴 내용물에 머물러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한편, 이렇게 정신 안에 존재하는 모든 내용물은 

정신적 내용물로써 

크게 감각적 내용물[색깔,소리,냄새, 맛,촉감]과 관념적 내용물[생각, 분별, 판단..]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우리가 대하는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내용의 전부이고 또 현상적 내용들이다. 


그리고 현실 세계의 현상적 내용을 분류해 제시할 때 

이런 내용을 크게 분류해 나열하게 된다. 


즉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그리고 관념적 내용들, 

또는 고체, 기체, 액체, 에너지, 공간 등으로 분류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신이란 그릇에 담긴 내용물만을 분류해 넣고 

이들 내용을 담는 그릇 자체는 빠뜨리기 쉽다. 

즉 이들 내용물이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는 요소인 

정신이란 그릇[그림에서 5]을 빠뜨리게 되는 것이다. 


또는 비록 앞의 내용을 나열할 때 

이들 내용을 얻게 되는 정신적 과정이나 작용을 생각하고 

정신의 정체나 위치를 추리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주로 관념적 내용을 얻는 과정을 정신이라 생각하고 

그런 정신은 앞에서 본 정신적 내용물 가운데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과 같이 물질적 내용으로 이해한 내용들이, 즉 물질이, 

서로 반응하여 일으키는 한 변화로만 이해한다. 

그래서 정신은 물질적 존재 즉 육체[그림에서 1]에 존재하는 것이고 

또 정신작용은 그런 육체의 물질적 변화과정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잘못된 추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정신은 그런 육체[그림에서 1]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육체[그림에서 1]의 모습 및 다른 사람이나 사물 세계의 모습을 

모두 그 내용물로서 그 안에 담고 있는 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이란 그릇은 

그 그릇 안의 여러 내용물과 함께 

현상적 요소의 하나라고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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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한편 위와 같은 내용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를 한다. 


즉 2 라는 사람이 어떤 정신내용을 일으킨다면, 

자신이 외부대상으로 본 내용 [그림에서 4]와 그 2라는 사람[그림에서 2]가 관계하여 

그 육체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관계로 이해한다.  

즉 다른 사람 2 라는 사람의 정신은 자신이 본 2 의 육체[그림에서 2] 안에 위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다. 

또 그런 관계로 제 3자의 육체로 본 내용[그림에서 2나 3]이 죽어 허물어지면 

그 사람의 정신도 함께 사라져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 이것도 하나의 착각이다.   



▽ 이에 대한 가설적 결론은 다음이다.  

=> 이는 앞에서 본 자신의 관계에 대한 설명과 같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마치 다른 사람 2 와 같은 사람이 나[그림에서 1]의 정신과정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것과 같다. 


즉  나[그림에서 1]의 정신과정은 

2 라는 사람이 바라보고 얻는 내용 가운데에서 

2 라는 사람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과 

2 라는 사람이 본 나[1]의 모습[그림에서 1^]이 서로 관계하여 

어떠한 내용을 얻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이 잘못이다. 


위 서술에서 4 와 4^ 를 구별해야 하고 

1 과 1^ 를 구별해 음미해야 한다. 


1 은 그 잘못이 무엇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1 이 2 의 정신과정을 4 와 2 의 관계에서 어떤 내용을 얻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이다. 



그런데 인과관계적 설명에서는 

앞의 자신에 관한 설명과 

이 남 2에 대한 설명은 조금 의미가 다르다. 


인과관계의 설명은 기본적으로 

현실 현상에서 얻는 내용을 가지고 

현상의 내용이 나타나는 과정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래서 비록 이는 실재의 대상과 관련하여 설명하지 않는 관계로 

불충분한 것이지만, 

현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 

2 의 정신작용을 설명하는 하나의 현상적 설명방식으로는 

2 라는 사람의 정신작용이 

4 라는 대상과 2 라는 주체가 서로 관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방식은 

그래도 비교적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또 같은 이유로 

2 의 정신이 2 의 육체[그림에서 2]안에 머무른다고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현상적 설명으로 적절할 수는 있다. 


이것은 다음의 설명과는 차이가 있다. 


즉 

2 의 정신이 2가 스스로 본 자신의 육체의 모습[그림에서 2^]안에 

머무른다고 이해하는 것과는 이 설명은 다른 것이다. 


현상적 설명이란, 우리가 얻을 수 있고 얻는 내용을 가지고 

얻은 내용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불완전하지만, 

현상적 내용이 나타나게 되는 근본 바탕이라고 할 실재 내용을 

직접 얻지 못하므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설명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정신이 어디에 존재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 현상적 설명방식으로는 

앞과 같이 설명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즉 현상적 설명으로는 2 의 정신은 2 의 육체[그림에서 2]안에 머무른다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2 의 정신은 2가 스스로 바라본 자신의 육체의 모습[그림에서 2^] 안에 머무른다고 표현하면 적절하지 않다. 


관찰자 1의 입장에서 보면, 

2의 육체라고 표현한 부분은 2 의 정신 외부에 있는 것으로서 

2가 스스로 바라본 자신의 육체의 모습[그림에서 2^]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서 

이런 설명방식을  관찰자인 1의 정신에 대해 적용하면 더 큰 잘못이 된다. 


즉,  

관찰자인 1 이 자신의 정신은 

스스로 자신이 바라 본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 안에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역시 현상적 설명의 입장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는 마치 2가 말하길, 

2 자신의 정신[그림에서 5^]이 

자신이 스스로 본 자신의 육체[ 그림에서 2^] 안에 존재한다고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큰 오류인 것과 사정이 같다. 


이는 현상적 설명에서도 

2 자신의 정신[그림에서 5^]은  

관찰자 1 이 바라볼 때의 2 의 육체[그림에서 2] 안에 존재한다고 설명하는 것과는 

큰 차이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관찰자인 1 이 자신의 정신은 

스스로 자신이 바라 본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 안에 존재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역시 현상적 설명의 입장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이 경우 관찰자 자신의 정신[그림에서 5]은 

오히려 자신의 육체의 모습을 포함하여 세계의 모습을 

모두 다 그 안에 포함해 담고 있는 하나의 그릇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고 

설명해야 적절해진다. 


또한 이 그릇은 눈을 떠 그런 내용물이 들어와 있던

눈을 감아서 그런 내용물이 하나도 담겨져 있지 않던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그런 것으로 관념해야 한다. 


그래서 그 그릇 자체를 

눈을 떠 얻은 내용물 안에서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의 정신의 현상적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런 현상적인 설명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는 

정신이란 그릇을 그 그릇안의 내용물이라고 할 

육체에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질문한 

LITTLE님의 질문과도 관련된다. 


한편 육체와 정신의 관련성은 

육체안의 여러 기관이 변화함에 따라, 

그 정신이란 그릇안의 내용물의 내용도 함께 변화함을 관찰함으로써 

그 상호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상호 관련성을 가지고 

육체나 육체의 자극 - 반응 자체를 

정신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편, 이러한 현상적 설명은 오직 현상 안에서 얻은 내용물을 가지고 

설명하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적 설명도 

정확히 보면, 근본적인 오류를 갖는 것은 마찬가지다. 


즉 1 이 바라본 2 의 육체[그림에서 2]는 여전히 1 의 정신 안의 내용물이고 

2 의 육체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현상적 설명을 고집하게 되면, 

그것은 2 라는 사람이  나 [그림에서 1] 자신의 정신이 

2 가 바라본 나의 모습[그림에서 1^]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고집해서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된다. 


그래서 이런 현상적 설명은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불가피하게 현상적으로 얻는 내용을 가지고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은 육체에 머물러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표현하게 되는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에도 

정신은 육체의 물질적 반응의 과정이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육체적 눈을 뜨면 그 정신이란 그릇에 일정한 내용물이 맺혀 들어오고 

육체적 눈을 감으면 그 정신이란 그릇에 일정한 내용물이 맺히지 않게 되는 등으로 

육체기관과 정신 안 내용물은 서로 관련은 되지만, 

정신은 육체와 별개로 존재하는 현상적 요소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은 그것이 얹혀지고 활동하는 근거를 

매 생마다 달리하여 변화해 가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 참고로 LITTLE님의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위 내용과 관련이 된다고 본다. )  


 

그것은 앞에서 현상적 요소를 

전체적으로 나열할 때 

정신이란 그릇과 

그 정신이란 그릇의 내용물을 고체, 기체, 액체, 에너지, 공간 등으로 나열해 분류하고, 


이들이 각기 결합과 화합 상태에 따라 

그 구체적 모습은 달라지지만, 

그 내용이 근본 재료로서 현상적으로 계속 유지되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사정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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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자신이 위와 같은 내용[그림에서 5안의 여러 내용]을 보았다면 

그런 내용을 얻게 한 외부의 실재내용을 다시 추리해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본 내용[그림 전체의 내용]과 같은 것이 

실재내용으로도 그대로 존재한다고 추리해 생각하게 된다. 

- 이것도 하나의 오류판단이다. 



▽ 이에 대한 가설적 결론은 다음이다.  


=> 실재내용은 궁극적으로 끝내 그 내용을 얻을 수 없다. 

실재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하고 서술하려면, 

그 이전에 실재의 내용을 

단 하나라도 얻어야, 그에 대해서 서술하고 

또 실재와 현상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떤 내용을 추리하고 판단해나갈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그런데 그 단 하나의 실재내용도 얻지 못하므로 

비록 실재내용에 대하여 

그것이 있다 없다 -이다 - 아니다 -와 같다 -와 다르다. 하나다 여럿이다.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등등으로 

여러가지 추리나 상상, 사변적 판단을 행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단정적으로 옳다 그르다라고 밝힐 수 없는 것이다. 


인과관계에 대해 설명도 같은 한계를 갖는다. 

우리가 현상에서 여러가지 내용들간에 현상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게 되지만, 

이 내용은 실재의 내용이라고 단정하거나, 

실재의 내용과 관련하여 단정하여 제시할 수 없다. 


그 사정은 앞의 사정과 같다. 


또 현상적 내용이 모두 사라지면 실재내용만 남게 되는 것이라고 추리할 수 있지만, 

이 실재 내용은 이런 현상적 내용과 인과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더 나아가 현상적 내용도 실재내용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현상적 내용이 실재내용과 인과관계의 관계로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 사정은 역시 앞에서 제시한 사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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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각의 이유 


먼저 위에 일반적으로 착각이며 오류라고 나열한 내용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내용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착각이고 오류의 판단이지만, 

그런데 이런 내용을 상식적으로 옳다고 보게 되는 데에도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다. 


즉 자신이 눈을 떠 바라볼 때 사물로 보는 내용[그림에서 4나 사람 2,3 등]을 

자신이 그런 내용을 얻게 된 대상 자체로 보는 것에도 나름 그 이유가 있고 

또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1]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데에도 

나름 이유가 있다. 



▼ 우선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1]을 자신이라고 왜 생각하게 되는가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자신이 눈을 떠 바라본 여러가지 모습이 위 그림처럼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여러가지 모습 가운데에서 특정한 부분[그림에서 1부분]을 자신이라고 

이해하게 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작용한다. 


우선 내가 발을 움직인다거나 손을 움직인다고 할 때 

변화를 일으키는 부분이 그 부분들이다. 


또 내가 몸을 움직여 장소를 이동해간다고 할 때 

보통의 경우에는 외부 사물은 그대로인데 반해 

자신이 움직일 때 따라 변화하고 움직여 나온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역시 그 특정한 부분들[그림에서 1의 부분] 이다.  


즉 위 그림과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자신의 몸을 움직인다고 한다면, 

나머지는 대부분 그대로인데, 

위 그림에서 1에 해당한 부분들만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감각기관을 동원할 때도 이 착각은 옳은 것이라고 지지를 받게 된다.  

즉 자신의 손으로 그림 1의 부분 가운데 한 부분(예를 들어 다리)를 만질 때는 

만지는 손에도 촉각이 느껴지고 

만져지는 부분(예; 다리)에도 촉각이 느껴진다. 


그것은 1 이외의 부분과는 다르다. 


즉 꽃을 만질 때는 다리를 만질 때와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꽃을 만진다고 생각할 때는 손에만 촉각이 느껴진다. 

다리와는 사정이 다른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림에서 1의 부분을 자신 자체라고 잘못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한편 꽃[그림에서 4]를 바라볼 때도 

그렇게 자신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을 그 모습을 얻게 한 대상자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위 그림과 같은 상태에서 

그 꽃을 손으로 붙잡아 움직여 보이지 않게 상자 속에 넣어 버린다면, 

이제 꽃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꽃의 모습을 자신이 보게 되었다면, 

자신이 본 그 꽃의 모습[그림에서 4]가 

그 꽃의 모습을 얻게 해준 대상 자체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감각기관을 동원하여 이를 함께 결합시켜 이해할 때도 

이런 판단은 지지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눈으로 꽃을 만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손이 꽃을 잡는 모습이 보일 때 

자신은 그런 모습과 함께 

그 꽃에 대한 촉감도 함께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통해 

그 꽃의 모습[그림에서 4]를 대상으로 하여 자신의 손[자신의 손의 모습]이 접촉할 때, 

자신의 손이 촉감을 얻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이를 통해 꽃의 모습[그림에서 4]는 자신이 촉감을 얻게 되는 대상물 자체라고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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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착각이나 오류판단도 사정이 같다. 


자신과 상대방 [그림에서 2]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럴 때 상대방이 움직인다고 하면 

이후 변화를 보이는 부분은 

그림에서 2 의 부분이 변화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그림에서 2의 부분이 그 상대방인 것이다. 



또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보면, 

그 상대방이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어떤 정신작용을 일으킨다고 이해하게 된다. 


즉 자신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를 그대로 두고 

상대방[그림에서 2]에게 말을 해서 

눈을 감으라고 하고 다시 눈을 뜨라고 계속 말로 지시하고 

상대가 눈을 뜨고 감는 모습을 관찰하는 가운데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보고하라고 상대에게 요구한다고 하자. 


그러면 상대는 눈을 뜨면 꽃이 보인다고 말하고 

눈을 감으면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추리를 하게 된다. 


상대방 [그림에서 2]가 눈을 감고 뜸을 반복함에 따라 

꽃이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오직 상대방 뿐이다. 


즉 자신이 보기에는 상대가 눈을 뜨던 감던 관계없이 

꽃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가 눈을 감으면 꽃이 사라져 안보이게 되고, 

눈을 뜨면 그 꽃이 다시 보이고 나타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니

그 변화는 오직 상대방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서 그 변화는 상대방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정신작용은 자신이 본 상대방[그림에서 2]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정신은 상대방의 몸[그림에서 2]안에 머무른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자신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는 

상대방이 그런 정신작용을 일으키게 된

대상 그 자체로 잘못 생각하게 된다. 


한편 이 과정에서 

그 꽃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상자 속에 집어 넣으면 

그 상대방이 눈을 뜬다해도 

꽃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상대가 꽃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자신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를 대상으로 하여 

상대방[그림에서 2]과 그의 눈이 관계하여 

그런 변화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상식적으로 잘못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앞에서 착각과 오류의 판단이라고 제시한 내용들은 

이처럼  모두 상식적으로 그런 판단을 옳은 판단이라고 받아들일만한 

근거를 나름대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오류와 착각의 판단을 

상식적으로 올바른 것이라고 이해하고 살아가게 된다. 



○ 위와 같은 대부분의 판단은 상식적으로 모두 옳다고 받아들이게 되는 내용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판단들이 모두 착각이고 오류라고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이런 상식적인 판단이 착각이고 잘못이라고 말하면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착각이고 잘못인가, 이렇게 반문하기 쉽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평생을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내용은 

위의 그림에 표시한 내용과 같은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평생동안 큰 불편없이 

자신의 정신이 얻어 놓은 내용물에 스스로 

갇혀 살다 가기 때문이다. 


위 그림에서는 

눈을 통한 감각내용만 나열했지만, 

귀를 통한 소리

코를 통한 냄새

혀를 통한 맛 

몸을 통한 촉감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생각을 통하여 갖게 되는 여러 관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고 

이들도 모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사람들이 물질과 정신을 구별해서 생각할 때 

그 물질이란 단어로 생각하는 것은 


위 그림에서 나열한 것과 같은 

눈을 통한 감각내용[색깔] 

귀를 통한 소리

코를 통한 냄새

혀를 통한 맛 

몸을 통한 촉감이다. 


그런데 이렇게 물질로 생각하는 것은 

이들 내용 즉 색깔,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이 

자신의 정신 외부에 있는 내용이란 생각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본 것처럼 

[그림의 1 ]만을 자신이고 

자신의 몸으로 볼 때는 오히려 당연한 상식적 생각일 수 있다. 


[그림의 1 ]이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물질(육체)라고 보기 때문에, 

그 외의 것은 자신 외부에 있는 물질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한편, 

정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정신기관 자체와, 

정신기관의 활동(정신작용), 

그리고 정신기관의 활동을 통하여 얻은 내용(정신적 내용물)을 구별하여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물질과 정신의 관계를 이해할 때, 

정신적 내용물은 

앞에서 본 물질(색깔, 소리...)은 제외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생각하여 얻는 관념적 내용물을 주로 정신적 내용물로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정신적 내용물은 

예를 들어 자신이 눈을 떠 보게 되는 꽃의 모습(색깔)은 정신적 내용물이 아니라 

정신 외부의 물질적 내용이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단지 이를 바탕으로 하여 얻게 되는 다른 내용물

예를 들어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생각만으로 떠올리게 되는 꽃의 모습(관념적 내용)이나, 

또는 사랑의 감정이나 느낌 또는 '평화'와 같은 관념적 추상적 내용을 주로 떠올려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물질의 내용을 위와 같이 이해하고 

다시 그런 물질적 내용은 정신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도 또 하나의 진리판단에 관련된 착각이고 오류다. 


물론 철학적으로 이런 내용을 물질로 이해하지 않고 

이들은 감각적 현상적 내용이라 보는 동시에, 

이런 감각적 현상적 내용을 얻게 해주는 실재로서의 물질 자체를 

추상적으로 추리해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앞에서 살핀 것과 같은 실재 내용[#]으로서 물질이나, 

영원불변한 실체[$]로서의 물질의 본체를  

살피는 문제가 된다. 


이 경우는 다시 

실재 내용[#]으로서 물질이나, 

영원불변한 실체[$]로서의 물질의 본체가 

자신이 감각을 통해 얻는 현상적 정신내용물의 내용과 

동일하다거나 또는 적어도 유사하거나 비례하는 그 무엇이라고 

추리해서 단정하기 쉽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앞과는 또 다른 

철학적 사변적 오류가 된다. 

이런 실재내용[#]과 실체나 본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서술하기로 한다. 



그러나, 

여하튼 이런 물질과 정신에 대한 이해는 

기본적으로 한 생명이 

앞의 그림으로 표시한 것과 같이 

자신의 정신으로 얻는 내용물만을 

그 자신이 얻을 수 있고 

또 살아서 죽을 때까지 이런 내용안에 

그 자신이 갇혀서 지낸다는 기본 사정에서 비롯된다. 



앞에서 본 착각이나 오류가 왜 진리에 관한 판단 오류인가는 

어느 부분부터 논의를 시작해도 관계가 없다고 보지만, 

우선 위에 제시한 순서 가운데 

첫번째 내용부터 살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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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 그림 ] 은 인터넷 페이지가 길어서 참조가 필요할 때 찾아 참조하기가 불편하므로 관계되는 곳에 반복해 붙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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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눈을 떠 얻은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가 그 모습을 얻게 한 대상 자체라는 판단의 오류문제 



우선 위에 제시한 여러 상식적인 판단이 왜 오류이고 잘못인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간단한 실험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중 하나의 실험은 자신이 눈을 뜨고 감고를 반복하면서 

이 사이에 어떤 변화를 얻는가를 스스로 잘 관찰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과 동일 유사하다고 볼 다른 한 사람을 자신 앞에 놓고 

그 역시 눈을 뜨고 감음을 반복하도록 요구하고, 

그 과정에서 외부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관찰자가 관찰하고 

동시에 그 다른 사람으로부터도 어떤 변화가 있는지에 대해 언어적 보고를 함께 받는 실험을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그 상대방과 자신의 입장, 또는 또 다른 제 3자의 입장을 

자신이 서로 번갈아 바꿔 가면서 

앞에서 제시한 여러 내용들이 

어떤 점에서 어떤 내용이 잘못이고 착각인가를 생각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이 관찰 실험과정에서 

제 3자가 눈을 뜨고 감음을 반복하는 가운데 

어떤 변화를 얻는지는 언어적 보고 외에 그 변화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이것은 이 실험과정에서 관찰자가 갖게 되는 한계의 하나다. 


쉽게 말해 자신의 정신 내용은 다른 사람이 직접 얻어가질 수 없고 

또 자신은 다른 사람의 정신내용을 직접 얻어가질 수는 없다. 


그래서 위 그림에서 다른 사람이 얻는 내용으로서 

숫자 옆에 (^)을 붙여 1^ 2^ 3^ 4^ 등으로 표시한 내용은 

오직 그런 내용을 얻으리라고 추리해 표시한 것이며 

그 내용은 그 당사자[그림에서 2] 자신 외에 직접 그 내용을 얻어 직접 확인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동일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생체 구조나 감각기관의 유사성 

그리고 상호간의 언어적 대화, 

또는 그 사람의 이후 행동이나 외부적 생리적 변화[뇌파나 뇌혈류의 변화 등]의 관찰 

기타 사정을 통해   

서로가 얻는 내용 간에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갖으리라고 추리할 수 있다. 


그런 바탕에서, 

이제 다른 제 3자 [그림에서 2나 3]이 어떤 내용을 얻는다고 할 때, 

만일 그것이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이라고 할 때 


그런 내용을 얻게 된 것은 

그 사람 자신이 자신의 모습으로 본 모습[그림에서 2^]과 

그 사람이 얻은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이 서로 관계하여, 

그 모습을 얻게 된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어떤 오류를 갖는다고 생각하는가. 


관찰자 1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설명이 갖는 오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관찰자 1 은 2 라는 사람이 그의 마음 안에서 어떤 내용을 얻는다면, 

그것은 2 라는 사람의 외부에 있는 어떤 사물[그림에서 4]와 

2 라는 사람[그림에서 2]가 서로 관계하여 

그런 내용을 얻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만일 이 과정을 

그 2 라는 사람이 본 어떤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과 

그 2 라는 사람이 본 어떤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2^]이 

서로 관계하여 

2 라는 사람이 어떤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는 것으로 

이해하면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정은 자신에서도 같은 것이다. 


자신의 경우를 생각할 때는 

자신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와 

자신이 본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1]이 


사실은 

2의 입장에서

2가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

2가 스스로 본 자기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2^]과 

그 위치의 성격이 동일함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2가 생각하는 그런 이해가 잘못이듯

자신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를 

그 모습을 얻게 한 대상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역시 잘못인 것이다.



[ 참조 그림 ] 은 인터넷 페이지가 길어서 참조가 필요할 때 찾아 참조하기가 불편하므로 관계되는 곳에 반복해 붙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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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이 관계를 좀 더 자세히 살피자면 다음과 같이 살필 필요가 있다. 


우선 다른 사람 2 라는 사람이 눈을 감고 뜸을 반복할 때, 

그가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가 보이는 것을 반복 경험하게 됨을 

보고 받는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내용이 보이지 않았다가 보이게 되는 것인지

관찰자 1인은 직접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1 자신도 직접  그 2 라는 사람이 하듯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1 자신도 눈을 감고 뜨고를 반복하는 가운데 

눈을 감을 때 무언가 보이지 않았다가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보이지 않다가 보이게 되는 것이 무엇들인가를 붙잡아 둘 필요가 있다. 


만일 1 자신과 2 라는 사람이 서로 동일 유사한 감각기관을 갖고 있고, 

또 동일 유사한 환경에서 실험을 하고 있고, 

또 서로가 서로에게 거짓으로 보고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본다면, 


2 라는 사람이 보인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 그 변화는 

자신이 눈을 뜨고 감음을 반복할 때, 자신이 느낀 변화와 

동일 유사한 변화라고 추정할 수 있다. 



▽ 이 상태에에서 이제 그 2 라는 사람은 계속 그와 같이 

눈을 뜨고 감음을 반복하게 하고 

자신은 계속 눈을 뜨고 그 상황을 지켜 본다고 하자. 


이 경우 그 2 라는 사람은 계속 보이다가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다고 말하지만, 

1 자신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눈을 뜨고 감는 동작의 변화만 보일 뿐 

그 외는 큰 변화가 없음을 관찰하게 된다. 


즉 꽃[그림에서 4]를 놓고 2 라는 사람이 눈을 뜨면 꽃이 보이고 

눈을 감으면 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1 자신의 입장에서는 2 라는 사람이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별 관계없이 계속해서 그 꽃[그림에서 4]가 일정하게 계속 보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통해 미루어 추리한다면, 

2 가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무언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다는 등의 

변화를 보고하는 것은 

그 변화가 자신이 보는 꽃[그림에서 4]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고, 

상대방 2[그림에서 2]의 내부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라고 

추리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 2가 보인다고 할 때 정확히 무엇이 보이고 

안 보인다고 할 때는 정확히 무엇이 보였다가 안 보이게 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내용이 무엇인가는 앞과 같이 자신이 직접 실험을 하여 

그 내용을 미루어 추정하게 된 것이다. 



▽ 그래서 1 자신이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변화한 내용을 

붙잡아 그것을 그림 5와 같이 표시한 다음  

그 내용과 유사한 내용이 상대방 2에게 있어서도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상대방 2의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내용으로 5^으로 표시해 그려 넣은 것이다. 





[ 참조 그림 ] 은 인터넷 페이지가 길어서 참조가 필요할 때 찾아 참조하기가 불편하므로 관계되는 곳에 반복해 붙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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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이제 이런 상태에서 

그 2 라는 사람 안에서 일어난 변화의 의미를 음미해보자. 


만일 이 경우에 2라는 사람이 어떤 꽃의 모습[그림 4^]을 보게 되었다고 보고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 꽃의 모습[그림 4^]이라는 모습을 보게 된 것에 대해 

그 2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기술하면 옳다고 볼 것인가. 


 즉 그 2 라는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모습이라고 본 내용[그림에서 2^]이 

자신이 꽃이라고 생각한 내용[그림에서 4^]을 대상으로 하여, 

그런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게 된 것이라고 이해하고 

기술한다면 이를 옳다고 볼 수 있는가. 


관찰자 1 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잘못임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즉 만일 2 라는 사람이 그의 내부에서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은 것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관찰자 1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을 

관찰자가 본 2가 상대하여 그 2의 내부에서

그런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게 된 것이라고 이해해야 

옳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정확히 음미하면 이것도 잘못된 해석이기는 하다. 

그러나 앞의 해석보다는 더 적절하다고 보는 것이다. 


즉 2 라는 사람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그림에서 4^] <-> [그림에서 2^] => [그림에서 4^]

그런데 관찰자 1 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그림에서 4]  <-> [그림에서 2]  => [그림에서 4^] 


즉 ^ 표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 차이를 갖는다. 


그런데 왜 이런 해석의 차이를 갖는가. 


우선 2 라는 사람은 관찰자 1 이 보게 되는 

[그림에서 4]와 [그림에서 2] 를 보지 못한다. 


이것은 우선 2 라는 사람이 얻게 되는 정신내용  5^ 밖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내용은 사실은 

관찰자 1 의 정신 안에 들어와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여하튼 2 라는 사람의 정신 안의 내용 5^ 안의 내용은 아니다. 


그래서 2 라는 사람은 자신의 정신이 얻은 내용만을 가지고 

그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 앞에서 본 해석의 차이 가운데 

비교적 적절한 것은 그래도 관찰자 1이 해석한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제 그 관찰자 1 의 해석을 가지고 이 과정을 

해석하면, 

2 라는 사람이 그의 정신 안에 얻는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을 

그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을 얻게 한 '대상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즉 그 꽃의 모습[그림에서 4^]은 대상이 아니고 

단지 어떤 대상을 그 2가 상대하여 그의 정신 안에 

얻어 놓은 정신적 결과물이고 정신 내용물인 것이다. 


▽ 이제 앞의 해석을 그대로 가지고 

자신에게 돌아와 적용해보자. 


앞에서 한 해석은 그 2 에게서만 적용되는 내용은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관찰자 1 자신과 2 라는 사람은 

동일 유사한 감각기관을 갖고 동일 유사한 환경에서 

동일 유사한 정신내용을 갖는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 2 라는 사람이 어떤 정신 내용물을 얻는 과정에 대한 해석은 

관찰자 1이 어떤 내용을 얻는 과정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해석해야 한다. 


▽ 그런 결과, 

이제 2 라는 사람이 관찰자 1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이 과정을 역으로 적용해보자. 



이제 자신이 눈을 뜨고 감음에 따라 

변화할 때, 

자신에게서는 꽃의 모습[그림에서 4]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변화를 보인다. 


눈을 감아도 꽃의 모습[그림에서 4]가 그래도 여전히 남아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통해  관찰자 1 자신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는 

사실은 2의 입장에서는 그의 내부에서 2가 얻는 정신적 내용물로서 꽃의 모습[그림에서 4^]과 

그 위치와 성격이 같은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다. 


즉 자신이 눈을 감은 상태에서 꽃의 모습[그림에서 4]가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 

2 라는 다른 사람에게 여전히 꽃이 보이는가 묻는다면, 

그는 자신이 눈을 감아 꽃을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와 관계없이 

여전히 꽃은 보인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원래 관찰자 1 이 2 가 정신내용물을 얻는 과정에 대한 해석은 

자기가 꽃의 모습[그림에서 4]라는 정신 내용물을 얻는 과정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해야 할 내용임을 미루어 알 수 있게 된다고 할 것이다. 



▽ 결국 이를 통해 

자신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는 '대상'이 아닌 것이고 

그것은 다른 실재 대상을 자신이 상대하여 그 결과로서 

자신의 정신에서 얻은 정신적 내용물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즉 자신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는 '대상'이고 

또 이 대상을 자신이라고 스스로 본 육체[그림에서 2]가 상대하여 

그런 내용을 얻은 것이 아닌 것이다. 


이는 앞에서 2 라는 사람에 대해서 자신이 행한 해석을 

거꾸로 자신의 정신 과정에 대해서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통해 

이런 정신적 결과물을 얻게 한, 

실재 대상[#]과 실재 주관, 주체[#]를 

자신이 스스로 본 어떤 내용[그림에서 4]와 

스스로 자신의 육체라고 본 내용[그림에서 2]와는 별개로 

설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


[ 참조 그림 ] 은 인터넷 페이지가 길어서 참조가 필요할 때 찾아 참조하기가 불편하므로 관계되는 곳에 반복해 붙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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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판단


▼ 한편, 자기 자신을 자신이 자신으로 본 모습[그림에서 1]로 생각한다. 

또 상대나 제 3자도 역시 그와 같이 자신이 본 모습[그림에서 2 나 3]으로 생각한다. - 이것도 착각의 하나다. 


▽ 이에 대한 가설적 결론은 다음이다. 


=> 자신이 자신으로 본 모습, 자신의 육체[그림에서 1]는 앞의 사물의 모습과 같이 

역시 자신의 정신 안의 내용물이다. 

이는 앞의 내용에 준하므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


자신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이 실재 대상이 아니듯, 

자신이 본 자신의 육체의 모습[그림에서 1]도 실재의 주체 자신이 아니다. 


앞에서 자신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이 실재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같은 방식을 적용하여 

자신이 본 자신의 육체의 모습[그림에서 1]도 실재의 주체 자신이 아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전체적으로 

다른 사람 2가 얻는 내용을 놓고 

이것을 자신의 경우라고 이해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다른 사람 2는 자신이 얻은 정신적 내용물을 놓고, 

그 안의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을 실재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그 안의 2 자기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2^]을 실재의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 이유는 이미 앞에서 보았다. 

그 다른 사람 2는 그와 같은 자신의 정신 안의 내용물만 얻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내용을 관찰자 1 이 관찰할 때는 

그것은 잘못된 이해다. 


그런데, 관찰자 1 의 경우에는 그런 잘못이 

바로 관찰자 자기자신의 모습[그림에서 1]과

자기자신이 본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에서 발생한다. 


이것을 관찰자 자신은 실재의 주체 자기자신이나, 

실재의 대상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이 잘못을 이해하려면, 

자신이 이렇게 관찰하는 가운데 

눈을 뜨고 감음을 반복하여 

자신이 그 모습을 보지 않거나 보는 변화가 있을 때 


다른 사람 2 도 그렇게 되는가를 물어 보면 

알 수 있다. 


즉 이 관계가 앞에서 관찰자 자신이 

다른 사람 2 에 대해서 관찰한 관계와 같은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이를 관찰자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자신이 본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1]은 

실재의 자기 자신이 아니고 

자신의 정신 안에 얻은 정신내용물임을 알 수 있다. 




[ 참조 그림 ] 은 인터넷 페이지가 길어서 참조가 필요할 때 찾아 참조하기가 불편하므로 관계되는 곳에 반복해 붙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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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만일 다른 사람 2 의 잘못된 오류의 판단을  

자신의 판단의 과정과 동일시할 수 있다면 

쉽게 자신의 판단과정의 오류를 이해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 2 가 자신의 정신 안 내용물 가운데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과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2^]을  

실재 사물 대상과 

실재 자신 주체로 판단하고 

이들이 서로 관계하여 어떤 내용을 얻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와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2]를  

실재 사물 대상과 

실재 자신 주체로 판단하는 것이 오류임을 알 수 있다. 




▼ 그런데 비록 

다른 사람 2 의 앞과 같은 판단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관찰자 1 자신이 스스로 행하는 판단은 잘못이 아니라고 

고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즉  

자신이 눈을 떠 얻게 된 모습 

사물의 모습[그림에서 4]와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2]는 


다른 사람 2의 경우와 다르다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다. 


그것은 다른 사람 2 의 경우는 

눈을 감으면 보이지 않고 

눈을 뜨면 보인다고 하는 내용 

즉 그 2 라는 사람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과 그 2 자신의 모습의 내용[그림에서 2^]은  

그 2 라는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난 변화이고 

그 2 라는 사람의 정신 안의 내용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경우에 있어서 

그 2 라는 사람의 정신 내용물 밖의 내용이라고 할 

자신이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

자신이 본 그 2 라는 사람의 모습[그림에서 2]

그리고 자신이 본 자기 자신의 모습 [그림에서 1]

등은 모두 그 2 라는 사람의 정신 안의 내용물이 아니고, 

2 라는 사람의 정신 밖의 내용물로서

실재의 대상과 실재의 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들이 서로 관계하여, 

관찰자 2 가 정신 안의 내용물을 얻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고 

더 나아가 

관찰자 1 자신이 이것들의 관계를 통해 1 자신의  정신 안의 내용물을 얻는다고 이해하는 것은 

적절한 해석이 아닌가 잘못 생각하게 된다. 


이런 해석은 결국 사람 2의 경우에서 그의 내부에서 얻게 된다고 보는 전체 정신적 내용물 5^ 과  

관찰자 자신이 눈을 감았다거 떠서 얻게 되는 전체 내용 5 가 서로 

그 성격이 다르다고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 이럴 때는 역시, 자신이 눈을 감았다가 뜸을 반복함에 따라서 

자신이 얻는 내용 5 가 전부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것을 반복하는 도중에 

다른 제 3자 즉 2 나 3과 같은 사람들의 경우에서도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지 질문을 던져 봄으로써 

그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들 2 나 3 들이 자신처럼 같이 눈을 감았다 뜸을 반복하지 않는다면, 

관찰자 1 자신이 눈을 감았다 뜸을 반복함에 따라 

5 의 내용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변화를 보이는 가운데에서도 

다른 2 나 3은 그와 관계없이 일정한 내용이 계속 유지된다고 보고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간단히 말하면 

자신이 눈을 감아 5 의 모습 전체가 보이지 않더라도 

이와는 관계없이 그 5 와는 별도로 

그 내용들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 사물을 관찰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처음 관찰자 1 이 

다른 사람 2 가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는 가운데 

발견해낸 판단의 오류와 성격이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눈을 떠 얻은 내용은 

결국 다른 사람 2 의 경우처럼 

자신의 정신 안 내용물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얻어낸 정신 안 내용물 가운데 

외부 사물로 본 꽃의 모습[그림에서 4]나 

자기 자신으로 본 자신의 모습[그림에서 1] 역시 

실재 대상이나 실재 주체 자기자신이 아니고 

자신의 정신 안에 얻어진 정신적 내용물임을 알 수 있게 된다. 



▼ 참고로 관찰자 1 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는 

자신의 눈이나 자신의 뒷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이 본 자신의 모습 [ 그림에서 1 ]이 

실제 이런 모습을 보고 얻는 진짜 실재 자신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지 자신의 정신 안에 얻어 놓은 정신적 내용물로서 자신의 모습일 뿐인 것이다. 






 









[ 현재 글 작성 중--- 계속됨 ] 


/// 참고 /// 


작성 도중의 글들 가운데 글 순서에 맞지 않는 작성중의 글들은 

댓글란에 임시 작성해 두고 

편집과정에서 본 페이지 안으로 옮겨 붙입니다. 



///




댓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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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Lab value 2013/10/07 22:03   

위 글은 내용이 길고 복잡한 관계로 

계속 부분 부분 시간을 두고 이어서 작성해나가기로 합니다.


Lab value 2013/10/08 02:39  

글의 서술과정상 작성도중 잦은 수정과 변경이 이뤄짐을 양해 바랍니다. 

오늘은 시간이 늦은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Lab value 2013/10/08 21:37  

mun님의 지적에 따라 그림의 ' 기호 부분을 ^표로 수정하고 

표현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이후 내용은 시간을 두고 계속 이어서 작성해나가고자 합니다.


Lab value 2013/10/09 00:59   

글이 길어짐에 따라 이 글도 잡담공간에서의 댓글처럼 

댓글을 통해서 작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즉 잦은 수정이 이뤄져야 하고, 

전체 서술 과정에서 각 부분별로 글 순서와 달리 서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리판단에 관한 착오 문제는 

그 범위가 상당히 방대하여, 서술해야 할 내용이 범위가 넓은데, 

하나의 페이지에 계속 이어서 서술하면 

글의 수정 정리가 복잡해지게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선 댓글란을 통해 추가할 내용을 적어 나가고 

최종적으로 이것을 정리하여 본 페이지에 정리내용을 올리고자 합니다. 






댓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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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Lab value 2013/10/09 01:16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A와 B가 서로 원인이나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려면 

어떤 관계성이 상호간에 파악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A가 있거나 없거나 B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경우에는 A는 'B의 있음'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 다른 경우로서, 

A가 있거나 없거나 B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에도 A는 'B의 없음'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A와 B가 인과의 관계가 있다고 보려면, 

A가 있을 때 B가 있는데, 

그러나 그런 경우 A가 없으면 B가 없게 되는 관계성이 

파악되어야 A의 있음과 B의 있음이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이 

있다고 보게 된다. 


이것을 정리하여 

A가 있을때( 또는 없을 때, 또는 생겨날 때, 또는 사라질 때)

B가 있고 ( 또는 없고, 또는 생겨나고, 또는 사라지고)


그 경우에 만일 

A가 없으면 ( 또는 있으면, 또는 사라지면, 또는 생겨나면)

B가 없는 ( 또는 있는, 또는 사라지는, 또는 생겨나는)

그런 상호 관계성이 파악이 되어야 


이 둘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어떤 A가 있거나 없거나 생겨나거나 사라지거나, 

B가 그로 인하여 아무런 관계있는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A와 B는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왼 손가락을 구부려 보거나 

펴보거나 한다고 하여 

이 내리는 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면, 


자신이 왼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펴는 행위는 

이 내리는 비와는 원인 결과 관계가 없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실재내용은 

실재내용은 현상의 본 바탕이 된다고 보는 것인데, 

왜 현상과 원인 결과의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보게 되는가. 


특히 현상이 모두 사라지면 

그 경우에는 오직 실재내용만 있게 된다고 보는 경우에도 

왜 현상과 실재내용은 

서로 원인 결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가. 


이것은 실재내용이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와 같다 -와 다르다 등의 

판단을 행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의 방식으로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내용이 못 되는 것이다.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Ω♠문서정보♠Ω

™[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3-10-09-수-01-13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O:/G/G/07/703-PSYC/정신의_위치에_관한_판단착오.HTM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ж[ 웹 ]ж [web] http://essay007.tistory.com/883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 관련문서]⇔

{!-- 관련 문서 링크--}

인터넷상의 목록 http://story007.tistory.com/829

디스크상의 목록 ●추구미작전 O:/G/G/05/eisc/eisc-catalog.htm

Ш[ 관련 문서 인용 부분 ]Ш

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Lab value 2013/10/09 12:57   




[ 작성 도중의 글 임시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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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실재내용을 현상에서 얻는 내용과 동일하다거나, 

유사하다거나, 또는 비례관계에 있다는 등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 

--> 추후 논의 






댓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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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정신의 위치를 정하는 문제 


정신의 위치를 정하고자 할 때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육체[그림에서 1]안에 정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  2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2 의 육체[그림에서 2] 안에 정하는 것은 판단오류다. 


우선 다른 사람 2 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2 의 육체[그림에서 2] 안에 정하는 것은 판단오류인 이유는 다음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 2 가 생각하기를 

관찰자 자신 1 의 정신이 

2 가 관찰자 1 을 바라보고 얻는 1 의 모습, 즉 1 의 육체에 

관찰자 자신의 정신이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옳은 판단이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관찰자 자신이 바라보아 얻은 2 의 모습에 

2 의 정신이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그림 상에서는 마치 2 의 정신이 

2 의 육체에 얹혀져 있고 

그래서 5^ 으로 표시된 정신 내용물이 

2 의 모습 위에 또는 머리 안에 넣어져 있다고 표시했지만, 

이것은 일단 현상적 설명을 위한 표시이며 

2 의 정신이 자신이 바라본 2 의 모습 위에 얹혀져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인 것이다. 



그래서 현상적 내용에서 

정신의 위치를 찾는다면 

오직 관찰자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이 현상적 내용과 관련하여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결국 그림에서 나타낸 5 와 같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은 타인의 정신을 직접 관찰할 수 없기에 

관찰자 자신이 자신의 정신 내용물 안에서 

타인의 정신을 찾고 그 위치를 찾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정신내용물 안에 타인의 정신이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된다. 


사실은 자신의 정신도 자신의 정신 내용물 외에는 

명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다. 



▼ 또 하나의 판단 오류는 

자신의 정신 내용물을 자신의 정신과 동일시하는 오류다. 



///


▼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육체[그림에서 1] 안에 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오류다. 


이는 다른 사람 2 의 경우를 놓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만일 어떤 다른 사람 2 가 자신이 바라 본 자신의 모습 [그림에서 2^] 안에 자신의 정신이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엉터리 해석임을 관찰자 1 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자신의 경우에 적용하면,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육체[그림에서 1]안에 정하는 것은

앞과 동일한 오류를 자신이 범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 정신의 위치 




Ω♠문서정보♠Ω

™[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3-10-09-수-12-53

♨[수정내역]♨

▩[ 디스크 ]▩ [DISK] ● 정신의 위치 O:/G/G/07/703-PSYC/정신의_위치에_관한_판단착오.HTM ♠● 실재내용을 현상에서 얻는 내용과 동일하다거나,

ж[ 웹 ]ж [web] http://essay007.tistory.com/883 ♠● 실재내용을 현상에서 얻는 내용과 동일하다거나,

⇔[ 관련문서]⇔

{!-- 관련 문서 링크--}

인터넷상의 목록 http://story007.tistory.com/829

디스크상의 목록 ●추구미작전 O:/G/G/05/eisc/eisc-catalog.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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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Lab value 2013/10/09 13:58   

[ 작성 도중의 글 임시보관 ] 

● 정신이 왜 정신 내용물의 변화 파괴와 관계없이 계속 유지된다고 볼 것인가. 


관찰자 1 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일단 세계나 우주의 모습을 바라보고 

정신 내용물로서 일정한 소리나 냄새 맛 촉감도 얻고 

또 생각도 하고 

기타 무의식적 반응도 일으키고 한다고 할 때

이 모든 내용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어떤 그릇을 

추정할 수 있다. 


만일 정신이 정신 자신을 직접 앞의 내용처럼 

직접 감각하여 정신내용물로 확보할 수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상의 존재물들을 나열할 때, 

정신의 위치를 잘못 잡고 

정신을 그 현상 구성요소에서 빠뜨리는 착오를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신은 그 그릇안에 정신 내용물만을 담거나 담지 않거나 할 뿐 

그 그릇이 자기 자신을 그 내용물로 담아 놓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정신 안 내용물과는 달리 이 정신이란 그릇을 

현상적 요소에서 빠뜨리기 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정신을 현상적 요소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가. 


정신 안 내용물은 자신이 얻는데 

이 내용물을 얻는 어떤 장소나 기관은 

빠뜨리는 것이 적절한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비록 정신이 정신내용물만 우리에게 얻게 해주고 

정신 자신은 그 내용물에서 빠진다고 하여도 

우리는 이런 정신내용물을 통해서 

이들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정신이란 그릇을 생각하고 

또 그 위치를 잡아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신이란, 세계나 우주의 모습, 생각 등의 정신 안 내용물을 모두 

그 안에 담고 있는 그릇처럼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그런데 정신이나 그 위치를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착각을 범하기 쉽다. 


즉 정신 안 내용물이 정신이란 그릇에 들어올 때만 

정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은 정신 안 내용물이 전혀 없을 때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또 정신 안 내용물이 있을 때에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을 감으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눈을 뜨면 그 모습이 정신내용물로 담길 

그 정신이란 그릇은 그릇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추정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신 안 내용물이 있을 때에도 

앞과 같은 이유로 정신이란 그릇은 내용물로서 포착되지 않는다. 

또 정신 안 내용물이 비워져 있을 때에도 

역시 같은 이유로 정신이란 그릇은 내용물로서 포착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 안 내용물이 있을 때나 없을 때에도 

계속 정신이란 그릇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여 

이 두 경우에나 언제나 그대로 포착되는 어떤 것을 찾아서 

그것을 정신이라고 생각하려면 

정신을 포착해내기 힘들고 

정신의 위치도 잡아내기 힘들다. 


여하튼 정신의 위치를 정신 안 내용물과 관계하여 추정한다면, 

세계나 온 우주의 모습을 담고 있을 때 

이 현상적 내용물을 모두 정신내용물로 담고 있는 

어떤 그릇과 같은 것을 

현상적인 정신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정신을 현상적 요소에서 빠뜨리면 안 된다고 본다. 


이 정신은 그렇다고 하여 실재대상이나 실재 주체의 실재 주관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실재대상이나 실재 주관을 이 정신과 관련하여 

추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적인 정신의 존재와 그 위치를 

문제삼는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의 위치를 잡을 때 

그 정신이란 그릇은 

다른 정신 안 내용물과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정신 안 내용물이란 결국 

관찰자 1 의 입장에서는 그 관찰자 1인이 파악해 얻어낸 

모든 현상적 내용을 다 포함한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이 모든 현상적 내용을 다 비운다 해도 

그 정신이란 그릇은 여전히 현상적 요소로 존재하는 것이고 


또 현상적 내용이 가득차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 현상적 내용물들과 함께 

같이 현상적 요소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지금 문제삼는 것이 

정신의 실재내용이 아니고 

현상적 차원에서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상적 차원의 정신은 

비록 다른 현상적 내용물과 같이 

감각적 내용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허공이 직접 감각으로 파악되지 않지만, 

그 현상적 존재를 인정받듯

정신이란 그릇도 현상적 존재로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이란 그릇은 

앞에서와 같이 

즉 눈을 감아 눈으로 얻은 모든 현상적 내용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존재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다음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찰자 1 자신이 파악한 내용 가운데에서 

어떤 부분은 그 정신의 정신 내용물의 변화에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즉 관찰자 1 자신이 스스로 본 1 자신의 육체 부분이다. 


이 육체부분에서 눈을 감기우면 정신 안 내용물 가운데에서 

색깔로 얻는 정신내용물이 모두 사라지고 

또 뜨면 나타남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다른 신체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나 

외부 사물 꽃 등과 같은 부분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 관련성을 가지고 

이 육체를 자신의 정신 기관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 2의 경우를 놓고 이해하면 쉽다. 


만일 2 라는 사람이 

자신이 바라본 2 ^ 의 모습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때는 

그 2 자신의 정신적 내용물 5^ 의 내용이 함께 변화한다는 관계성을 파악하였다고 하여 


자신이 바라 본 스스로의 모습 2^ 이 정신적 기관이라고 이해하면 

오류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 관계성은 사실은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와 

2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사이에서 

어떤 관계성이 있다고 보는 그런 관계와 같다. 


여기서 우리는 관찰자 1 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는 

2 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과는 달리, 

2 라는 사람의 실재 주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록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는 

2 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과는 달리, 

2 의 주관적 정신 내용물 밖의 내용임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2 라는 사람의 실재 주체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관찰자 1의 정신 안에 들어와 있는 정신내용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여기서 우리는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 나 

2 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은 

모두 2 라는 사람의 실재 내용이 모두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만일 2 라는 사람의 실재 내용이 

우리는 관찰자 1 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 와 

동일 유사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이 관계의 추리는 비교적 쉬울 수 있다. 


즉 2 라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건대 

자신이 얻는 정신 내용물 5^ 가운데에서 

일정한 부분 즉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육체라고 보게 되는 부분 즉 그림에서 2^ 의 부분이

변화하면 

정신 내용물 5^ 도 변화한다는 관계성은 


사실은 관찰자 1이 관찰할 때, 

얻는 내용 가운데 일정한 부분 

즉 관찰자 1 이 2 의 육체라고 보게 되는 부분 즉 그림에서 2 의 부분이

변화하면 그에 따라 2 의 정신내용물 5^ 이 변화하는 관계를 


2 의 정신 안에서는 그와 같은 관계로 이해해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추 추리할 수 있다. 

즉 앞에서 관찰자 1 이 관찰하게 되는 그런 변화와 

2 의 정신 내용의 변화를 


2 자신은 

자신이 얻는 정신 내용물 5^ 가운데에서 

일정한 부분 즉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육체라고 보게 되는 부분 즉 그림에서 2^ 의 부분이

변화하면 

정신 내용물 5^ 도 변화한다는 관계성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2 라는 사람의 실재 내용이 

우리는 관찰자 1 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 와 

동일 유사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앞의 추리를 바탕으로, 

실재 내용도 이런 관계성에 대한 추리 내용과 

동일하거나 유사하거나 적어도 이와 비례하는 

그 어떤 내용이라고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추리는 사실은 

관찰자 1 이 관찰하는 2의 모습도 

사실은 2 의 실재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그런 유추 추리의 근거를 잃게 된다. 


또한 실재내용은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으며, 

현상 내용과 실재 내용 사이에서는 서로 그렇게 상응관계나 

비례 관계, 동일관계, 유사관계를 모두 

단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추리는 다시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한편, 

관찰자 1 자신이나 

다른 사람 2 의 경우에나 

사실은 정신이란 그릇이 놓이는 

어떤 지점을 현상 안에서 찾아 제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정신이란 그릇은 

현상안의 모든 내용을 

그 안에 담고 있는 그릇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현상안 내용물을 다 담는 그릇의 위치를 

그 그릇이 담고 있는 현상안 내용물안에서 

찾아내는 것은 곤란한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현상적으로는 

2 가 스스로 그 자신의 모습이라고 보는 2 ^ 의 내용이 파괴되거나 변경되면, 

또는 관찰자 1 이 2 의 육체라고 보는 2 의 내용이 파괴되거나 변경되면, 

또는 관찰자 1 이 자신의 육체라고 보는 1 의 내용이 파괴되거나 변경되면, 

그에 따라 각각의 정신 내용물이 변화되는 관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이 각기 파괴되면 

자신의 정신이란 그릇도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육체의 죽음과 정신의 소멸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상식적 믿음이다. 


그러나, 앞의 관계성은 어디까지나, 

실재의 관계성에 대해 현상적으로 파악해낸 관계성에 불과하다. 


오히려 정신이란 그릇은 

그 안의 모든 정신 안 내용물이 다 사라지고 없어져도 

또 다른 구비조건만 충족되면 

또 그 안에 정신 안 내용물을 채워 넣는 

그릇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정신 안 내용물 가운데에서 

일부의 정신 안 내용물[즉 각각의 육체]와 

정신 안 내용물이 일정한 관계를 갖는 것처럼 파악되더라도 


그것은 오직 정신 안 내용물을 그와 같이 

얻어내는 데에서만 작용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선

다시 현상안의 존재, 즉 정신 안 내용물을 모두 다 비운 가운데 

그리고 나서 정신이란 그릇은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되는가를 

관찰하는 실험이 별도로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잠정적 결론은 


근본 정신은 정신이 어떤 실재적 주체 상태나, 현상적 육체와 관련하여 

각 생에서 어떤 정신적 내용물을 얻고 

어떤 내용을 그 자신의 육체로 파악하게 되는가와 관계없이 

그 근본정신의 존재는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매 생마다, 다른 생명의 형태로 바꾸어 살아가게 된다고 보는 것은 

이 근본 정신이 매 생마다 

다른 육체와 관련하여 정신 내용물을 얻어 갖게 되는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비록 정신을 

관찰자 1 자신이 얻는 모든 정신적 내용물[=현상적 내용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고 

따라서 정신의 위치를 

관찰자 1 자신이 얻는 모든 정신적 내용물[=현상적 내용 전체]를 포함해 담을 수 있는 

어떤 위치에 놓이는 그릇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때에도 


이 정신이 그 정신 안 내용물의 변화와 큰 관계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은 

별개의 실험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론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현상적 내용물들의 구성요소로서 

고체, 액체, 기체, 에너지, 공간 등을 나열하는 가운데 

현상의 모든 모습이 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이들 근본 재료 자체는 늘고 줆이 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질량 에너지 불변의 법칙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는 현상적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실재내용과 관련해서는 

그 내용을 역시 얻을 수 없는 것이므로, 

늘고 줆 자체도 역시 말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여하튼 현상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 근본 재료 요소는 

그 구체적인 모습의 변화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관념하게 된다. 


이 때 이들 현상적 요소를 모두 그 안에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현상적 요소인 정신이란 그릇도 

이와 같은 사정을 갖는다고 이해해야 한다. 


즉, 

앞에서 현상적인 근본 재료 요소를 나열하는 과정에서 

빠뜨리기 쉬운 

또 다른 현상적 요소

즉 이들 현상적 내용물과 요소를 모두 그 내용물로 담게 되는 

현상적 요소인 

정신이란 그릇도 


정신 안 내용물의 근본재료 요소가 그러하다고 보듯, 


정신 안 내용물이 매 순간 변화하고 모습을 달리하고, 

그 정신의 작용이 매순간 변화해가는 것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계속 이어져 유지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현상적 요소를 인정할 때 

현상적 범위에서는 그 근본재료들이 

모두 늘고 줆이 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과 

같은 내용인 것이다. 


....











댓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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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정신이 왜 정신 내용물의 변화 파괴와 관계없이 계속 유지된다고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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ㅹ[ 코멘트 등 정리 내역]ㅹ


Mun Tokyun 2013/10/09 14:31   

lab님의 글을 보면서 

일체 유심조라는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시간이 늦게 밥을 먹으려 하는데 

생각해보니 정신의 위치나 정신의 정체를 밝히는 문제는 


그릇에 밥을 넣고 그릇 안의 밥 안에서만, 

그 그릇을 찾아 보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원래, 밥만 볼 때는 밥만, 현상적 내용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 밥을 담은 그릇이 보이지 않더라도 

밥을 현상적 내용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담긴 그릇도 현상적 내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lab님이 제시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 밥과 그 그릇에 대한 실재내용을 

또 생각해 나가는 것인가요.

여하튼 추후 논의를 기대해봅니다. 


●일체유심조



Lab value 2013/10/09 17:35   




● 인과관계의 판단 착오


우리는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사물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사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다. 

또는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나는 것을 관찰한다. 

또는 화분을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면, 공중의 화분과는 달리 화분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관찰한다. 

또 막대기를 세개 서로 지지해 놓으면 서로를 의지하여 세울 수 있는 것도 관찰한다. 

그런데 이들 모든 요소 즉 종이, 불, 연기, 재, 화분, 탁자, 막대기...등은 

모두 우리가 눈을 떠서 얻거나, 귀로 대하거나...손으로 만지거나 해서 얻은 내용들이다. 

또한 이들 각각은 그렇게 얻은 내용에 대해 다시 분별을 통해 관념을 세워 얻은 내용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사실은 우리의 마음 안 내용물을 이처럼 서로 관련시켜 이해하는 방식임을 

생각해야 한다. 


마음은 매 순간 이전의 내용과 다른 내용이 점유하게 된다. 


그래서 사실 마음을 하나의 창고처럼 이해한다면, 

창고 안의 내용이 비워져야 그 안에 다른 내용이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마음 안의 내용도 앞 내용이 마음에서 자리를 비켜 줘야 그 다음 내용이 

차지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따. 


앞에서도 무엇을 대상으로 우리가 대하여 앞과 같은 

마음안의 여러 내용을 얻었는지가 의문시 된다. 

우리가 실재로 상대한 실재 대상의 내용은 무엇이고 

또 이것과 실재로 상대한 실재의 주체와 주관 실재의 정신은 

어떤 것일까. 

이런 것도 의문이 된다. 


그런데 이 실재내용은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오로지 마음 안에 얻은 

정신 내용물만을 가지고 

현상내 여러 현상 

즉 없다가 무엇이 나타나는 경우, 왜 그것이 나타나는가. 

또는 무엇이 있다가 왜 그것이 사라지는가. 

또는 무엇이 없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이것은 있는가. 

또는 무엇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이것은 없는가. 등의 

여러 의문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 때 그 답을 현상안에서 이미 얻어 놓은 다른 내용물과 관련시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추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A가 있을 때 (,나타날 때, 없을 때, 사라질 때) B가 있고 (나타나고, 없고, 사라지고)

그 상황에서 그 A가 없다면, (,사라진다면, 있다면, 나타난다면, ) 

B가 없는( 사라지는, 있는, 나타나는) 그런 관계성이 파악될 때 


이 A가 있기( 나타나기, 없기, 사라지기) 때문에 B가 있다( 나타난다, 없다, 사라진다)는

상호 관계를 인정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현상적으로 인식하는 인과관계의 내용이다. 


그래서 만일 이런 관계가 파악되지 않는다면, 

즉 예를 들어 

A 가 있거나 없거나 어느 경우에나 B가 있다면 

A는 B의 있음에 대하여 원인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여하튼 우리가 현상적으로 이해하는 인과관계의 내용은 대강 위와 같다. 


그런데 이 A와 B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면 이 A가 B에 대해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작용하는 관계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 2 를 놓고 이해하면 

이런 인과관계의 이해가 어떤 오류를 갖는 해석인지 이해할 수 있다. 


2 는 그의 마음 5^ 안에 얻어진 내용만을 얻는다. 

즉 그의 마음 5^ 밖에 있는 내용은 그 자신은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2 가 이 인과관계의 내용이나 요소로 이해하는 것들은 

모두 2 의 마음 안의 내용들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관찰자 1 이 이런 2 의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를 

살피게 되면 그것이 기본적으로 오류를 갖는 판단임을 보게 된다. 


즉 비록 2 의 판단에서는 2 의 마음 5^ 안에 들어와 있는 내용들 간에서 

일정한 관계가 앞에 나열한 것처럼 파악이 된다고 하여도, 

이들 각 내용은 사실은 

서로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작용을 주고 받는 관계로 보기는 힘든 것이다. 


즉 2 의 마음안의 정신적 내용물인 불이 

마음안 정신적 내용물인 종이에 붙어, 

그런 연기와 재를 나타나게 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보다는 차라리 다음과 같은 해석이 비교적 적절할 것이다. 

즉 2 가 종이에 불이 붙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고 이해하는 과정은 

2 의 마음안 내용물들이 그런 관계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관찰자 1 의 입장에서 볼 때 

2 의 마음 밖의 내용들로서 4 와 같은 내용들은 서로 관계하고 

다시 그것이 2 와 관계하여 

2 의 마음 안에 즉 5^ 안에 

2^ 이나 4^ 과 같은 그런 내용들로 인식되게 되고

다시 이들간의 내용이 

앞과 같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그와 같이 관련시켜 이해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두번째 해석은 또 문제가 있다. 


즉 관찰자 1 의 입장에서 볼 때 

2 의 마음 밖의 내용들로서 4와 같은 내용들은 서로 관계한다고 본 것은 

사실은 관찰자 1 의 정신 안의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거꾸로 

관찰자 1 이 눈을 떠서 사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관계나 

또는 관찰자 1 이 종이에 불이 붙어 타게 되는 모습을 

2 라는 사람이 이해하기를 

1 의 정신 밖에 있는 즉 2 자신이 보는 

1^ 이나 4^ 이 서로 관계하여 그런 내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은 해석방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사실은 다 

정신적 내용물 즉 현상 밖의 실재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결국 실재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다시 관련된다. 


▽ 한편 인과관계를 이런 실재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할 때는 

실재내용을 얻을 수 없고 

또 그렇게 얻을 수 없기에 

있다거나 없다거나 -이다 -아니다 -와 같다 -와 다르다. 

등등의 분별을 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 실재내용을 현상의 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실재내용은 현상 안에서 분별해 구분하는 여러 

요소들로 그렇게 나뉘어진다거나 묶인다고 이해할 근거도 

없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인해 

현상내 내용물과 -> 실재내용 간에서는 

또는 반대로 실재내용과 -> 현상 간에서는 

서로 인과관계와 같은 관계로 이해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일정한 감각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일정한 관념을 얻어내는 관계 등은 

그 기본재료가 모두 정신적 내용물로서, 

그런 정신적 내용물이 직접 관계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이 

진리의 판단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있게 된다. 


즉 감각내용과 관념은 그렇게 서로 일치 상응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기본적 한계가 있게 된다. 


이는 별도로 후술하기로 한다. 


여하튼 우리가 지금 논의대상으로 삼고 있는 여러 

인과관계적 내용은 

현상 안에서 이들을 서로 관련시켜 이해하는 방식이며, 

이들이 직접 실재로 서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보기는 곤란한 것이다. 


▽ 한편 이런 인과관계와 관련한 문제는 

앞의 여러 문제들과 관련하여 

실재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하려는 방식에서 

모두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 인과관계의 판단 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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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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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댓글 



  • Lab value 2013/10/07 22:03   

    위 글은 내용이 길고 복잡한 관계로 
    계속 부분 부분 시간을 두고 이어서 작성해나가기로 합니다.

    • Lab value 2013/10/08 02:39  

      글의 서술과정상 작성도중 잦은 수정과 변경이 이뤄짐을 양해 바랍니다. 
      오늘은 시간이 늦은 관계로 이만 줄입니다.

    • Lab value 2013/10/08 21:37  

      mun님의 지적에 따라 그림의 ' 기호 부분을 *표로 수정하고 
      표현도 조금 수정하였습니다. 
      이후 내용은 시간을 두고 계속 이어서 작성해나가고자 합니다.

  • Lab value 2013/10/09 00:59   

    글이 길어짐에 따라 이 글도 잡담공간에서의 댓글처럼 
    댓글을 통해서 작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즉 잦은 수정이 이뤄져야 하고, 
    전체 서술 과정에서 각 부분별로 글 순서와 달리 서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리판단에 관한 착오 문제는 
    그 범위가 상당히 방대하여, 서술해야 할 내용이 범위가 넓은데, 
    하나의 페이지에 계속 이어서 서술하면 
    글의 수정 정리가 복잡해지게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우선 댓글란을 통해 추가할 내용을 적어 나가고 
    최종적으로 이것을 정리하여 본 페이지에 정리내용을 올리고자 합니다. 

    • Lab value 2013/10/09 01:16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A와 B가 서로 원인이나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려면 
      어떤 관계성이 상호간에 파악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자. 
      A가 있거나 없거나 B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경우에는 A는 'B의 있음'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 다른 경우로서, 
      A가 있거나 없거나 B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에도 A는 'B의 없음'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A와 B가 인과의 관계가 있다고 보려면, 
      A가 있을 때 B가 있는데, 
      그러나 그런 경우 A가 없으면 B가 없게 되는 관계성이 
      파악되어야 A의 있음과 B의 있음이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이 
      있다고 보게 된다. 

      이것을 정리하여 
      A가 있을때( 또는 없을 때, 또는 생겨날 때, 또는 사라질 때)
      B가 있고 ( 또는 없고, 또는 생겨나고, 또는 사라지고)

      그 경우에 만일 
      A가 없으면 ( 또는 있으면, 또는 사라지면, 또는 생겨나면)
      B가 없는 ( 또는 있는, 또는 사라지는, 또는 생겨나는)
      그런 상호 관계성이 파악이 되어야 

      이 둘은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게 된다. 

      그래서 어떤 A가 있거나 없거나 생겨나거나 사라지거나, 
      B가 그로 인하여 아무런 관계있는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A와 B는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왼 손가락을 구부려 보거나 
      펴보거나 한다고 하여 
      이 내리는 비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면, 

      자신이 왼 손가락을 구부리거나 펴는 행위는 
      이 내리는 비와는 원인 결과 관계가 없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실재내용은 
      실재내용은 현상의 본 바탕이 된다고 보는 것인데, 
      왜 현상과 원인 결과의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보게 되는가. 

      특히 현상이 모두 사라지면 
      그 경우에는 오직 실재내용만 있게 된다고 보는 경우에도 
      왜 현상과 실재내용은 
      서로 원인 결과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게 되는가. 

      이것은 실재내용이 
      있다 없다 -이다 -아니다 -와 같다 -와 다르다 등의 
      판단을 행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의 방식으로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성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내용이 못 되는 것이다.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Ω♠문서정보♠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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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3-10-09-수-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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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ж[ 웹 ]ж [web] http://essay007.tistory.com/883 ♠● 실재내용을 인과관계로 관련시켜 이해할 수 없는 이유
      ⇔[ 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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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b value 2013/10/09 12:57   

    [ 작성 도중의 글 임시보관 ] 

    ● 실재내용을 현상에서 얻는 내용과 동일하다거나, 
    유사하다거나, 또는 비례관계에 있다는 등으로 
    단정할 수 없는 이유 
    --> 추후 논의 


    ● 정신의 위치를 정하는 문제 

    정신의 위치를 정하고자 할 때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육체[그림에서 1]안에 정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 2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2의 육체[그림에서 2] 안에 정하는 것은 판단오류다. 

    우선 다른 사람 2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2의 육체[그림에서 2] 안에 정하는 것은 판단오류인 이유는 다음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 2가 생각하기를 
    관찰자 자신 1의 정신이 
    2가 관찰자 1을 바라보고 얻는 1의 모습, 즉 1 의 육체에 
    관찰자 자신의 정신이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옳은 판단이겠는가. 

    그와 마찬가지로 관찰자 자신이 바라보아 얻은 2 의 모습에 
    2의 정신이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그림 상에서는 마치 2 의 정신이 
    2의 육체에 얹혀져 있고 
    그래서 5* 로 표시된 정신 내용물이 
    2 의 모습 위에 또는 머리 안에 넣어져 있다고 표시했지만, 
    이것은 일단 현상적 설명을 위한 표시이며 
    2 의 정신이 자신이 바라본 2 의 모습 위에 얹혀져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인 것이다. 


    그래서 현상적 내용에서 
    정신의 위치를 찾는다면 
    오직 관찰자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이 현상적 내용과 관련하여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결국 그림에서 나타낸 5와 같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은 타인의 정신을 직접 관찰할 수 없기에 
    관찰자 자신이 자신의 정신 내용물 안에서 
    타인의 정신을 찾고 그 위치를 찾는 것은 곤란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정신내용물 안에 타인의 정신이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된다. 

    사실은 자신의 정신도 자신의 정신 내용물 외에는 
    명확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다. 

    ▼ 또 하나의 판단 오류는 
    자신의 정신 내용물을 자신의 정신과 동일시하는 오류다. 


    ///

    ▼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육체[그림에서 1]안에 정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오류다. 

    이는 다른 사람 2의 경우를 놓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만일 어떤 다른 사람 2가 자신이 바라 본 자신의 모습 [ 그림에서 2 * 별표] 안에 자신의 정신이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엉터리 해석임을 관찰자 1 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자신의 경우에 적용하면,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자신이 본 육체[그림에서 1]안에 정하는 것은
    앞과 동일한 오류를 자신이 범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 정신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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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3-10-09-수-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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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b value 2013/10/09 13:58   

    [ 작성 도중의 글 임시보관 ] 
    ● 정신이 왜 정신 내용물의 변화 파괴와 관계없이 계속 유지된다고 볼 것인가. 

    관찰자 1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신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일단 세계나 우주의 모습을 바라보고 
    정신 내용물로서 일정한 소리나 냄새 맛 촉감도 얻고 
    또 생각도 하고 
    기타 무의식적 반응도 일으키고 한다고 할 때

    이 모든 내용을 그 안에 담고 있는 어떤 그릇을 
    추정할 수 있다. 

    만일 정신이 정신 자신을 직접 앞의 내용처럼 
    직접 감각하여 정신내용물로 확보할 수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상의 존재물들을 나열할 때, 
    정신의 위치를 잘못 잡고 
    정신을 그 현상 구성요소에서 빠뜨리는 착오를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신은 그 그릇안에 정신 내용물만을 담거나 담지 않거나 할 뿐 
    그 그릇이 자기 자신을 그 내용물로 담아 놓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정신안 내용물과는 달리 이 정신이란 그릇을 
    현상적 요소에서 빠뜨리기 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정신을 현상적 요소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가. 

    정신안 내용물은 자신이 얻는데 
    이 내용물을 얻는 어떤 장소나 기관은 
    빠뜨리는 것이 적절한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비록 정신이 정신내용물만 우리에게 얻게 해주고 
    정신 자신은 그 내용물에서 빠진다고 하여도 
    우리는 이런 정신내용물을 통해서 
    이들 내용을 담을 수 있는 정신이란 그릇을 생각하고 
    또 그 위치를 잡아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정신이란, 세계나 우주의 모습, 생각 등의 정신안 내용물을 모두 
    그 안에 담고 있는 그릇처럼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그런데 정신이나 그 위치를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착각을 범하기 쉽다. 

    즉 정신안 내용물이 정신이란 그릇에 들어올 때만 
    정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은 정신안 내용물이 전혀 없을 때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또 정신안 내용물이 있을 때에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눈을 감으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눈을 뜨면 그 모습이 정신내용물로 담길 
    그 정신이란 그릇은 그릇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추정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신안 내용물이 있을 때에도 
    앞과 같은 이유로 정신이란 그릇은 내용물로서 포착되지 않는다. 
    또 정신안 내용물이 비워져 있을 때에도 
    역시 같은 이유로 정신이란 그릇은 내용물로서 포착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안 내용물이 있을 때나 없을 때에도 
    계속 정신이란 그릇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여 
    이 두 경우에나 언제나 그대로 포착되는 어떤 것을 찾아서 
    그것을 정신이라고 생각하려면 
    정신을 포착해내기 힘들고 
    정신의 위치도 잡아내기 힘들다. 

    여하튼 정신의 위치를 정신안 내용물과 관계하여 추정한다면, 
    세계나 온 우주의 모습을 담고 있을 때 
    이 현상적 내용물을 모두 정신내용물로 담고 있는 
    어떤 그릇과 같은 것을 
    현상적인 정신이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정신을 현상적 요소에서 빠뜨리면 안 된다고 본다. 

    이 정신은 그렇다고 하여 실재대상이나 실재 주체의 실재 주관처럼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물론 실재대상이나 실재 주관을 이 정신과 관련하여 
    추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삼는 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적인 정신의 존재와 그 위치를 
    문제삼는 것임을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렇게 정신의 위치를 잡을 때 
    그 정신이란 그릇은 
    다른 정신안 내용물과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정신안 내용물이란 결국 
    관찰자 1인의 입장에서는 그 관찰자 1인이 파악해 얻어낸 
    모든 현상적 내용을 다 포함한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이 모든 현상적 내용을 다 비운다 해도 
    그 정신이란 그릇은 여전히 현상적 요소로 존재하는 것이고 

    또 현상적 내용이 가득차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 현상적 내용물들과 함께 
    같이 현상적 요소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지금 문제삼는 것이 
    정신의 실재내용이 아니고 
    현상적 차원에서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상적 차원의 정신은 
    비록 다른 현상적 내용물과 같이 
    감각적 내용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허공이 직접 감각으로 파악되지 않지만, 
    그 현상적 존재를 인정받듯
    정신이란 그릇도 현상적 존재로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이란 그릇은 
    앞에서와 같이 
    즉 눈을 감아 눈으로 얻은 모든 현상적 내용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여전히 존재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다음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관찰자 1 자신이 파악한 내용 가운데에서 
    어떤 부분은 그 정신의 정신 내용물의 변화에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는 부분이 있다. 

    즉 관찰자 1 자신이 스스로 본 1자신의 육체 부분이다. 

    이 육체부분에서 눈을 감기우면 정신안 내용물 가운데에서 
    색깔로 얻는 정신내용물이 모두 사라지고 
    또 뜨면 나타남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다른 신체기관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나 
    외부 사물 꽃 등과 같은 부분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 관련성을 가지고 
    이 육체를 자신의 정신 기관이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 2의 경우를 놓고 이해하면 쉽다. 

    만일 2 라는 사람이 
    자신이 바라본 2 * 의 모습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때는 
    그 2 자신의 정신적 내용물 5* 의 내용이 함께 변화한다는 관계성을 파악하였다고 하여 

    자신이 바라 본 스스로의 모습 2*가 정신적 기관이라고 이해하면 
    오류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 관계성은 사실은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와 
    2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 사이에서 
    어떤 관계성이 있다고 보는 그런 관계와 같다. 

    여기서 우리는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는 
    2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 와는 달리, 
    2 라는 사람의 실재 주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록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는 
    2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 와는 달리, 
    2 의 주관적 정신 내용물 밖의 내용임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2 라는 사람의 실재 주체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관찰자 1의 정신 안에 들어와 있는 정신내용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여기서 우리는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 나 
    2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얻는 모습 2 * 은 
    모두 2 라는 사람의 실재 내용이 모두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만일 2 라는 사람의 실재 내용이 
    우리는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 와 
    동일 유사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이 관계의 추리는 비교적 쉬울 수 있다. 

    즉 2 라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건대 
    자신이 얻는 정신 내용물 5* 가운데에서 
    일정한 부분 즉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육체라고 보게 되는 부분 즉 그림에서 2*의 부분이
    변화하면 
    정신 내용물 5* 도 변화한다는 관계성은 

    사실은 관찰자 1이 관찰할 때, 
    얻는 내용 가운데 일정한 부분 
    즉 관찰자 1 이 2의 육체라고 보게 되는 부분 즉 그림에서 2 의 부분이
    변화하면 그에 따라 2의 정신내용물 5*가 변화하는 관계를 

    2의 정신 안에서는 그와 같은 관계로 이해해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추 추리할 수 있다. 
    즉 앞에서 관찰자 1 이 관찰하게 되는 그런 변화와 
    2의 정신 내용의 변화를 

    2 자신은 
    자신이 얻는 정신 내용물 5* 가운데에서 
    일정한 부분 즉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육체라고 보게 되는 부분 즉 그림에서 2*의 부분이
    변화하면 
    정신 내용물 5* 도 변화한다는 관계성으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2 라는 사람의 실재 내용이 
    우리는 관찰자 1이 바라보는 2 라는 사람의 모습 2 와 
    동일 유사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앞의 추리를 바탕으로, 
    실재 내용도 이런 관계성에 대한 추리 내용과 
    동일하거나 유사하거나 적어도 이와 비례하는 
    그 어떤 내용이라고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추리는 사실은 
    관찰자 1 이 관찰하는 2의 모습도 
    사실은 2 의 실재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그런 유추 추리의 근거를 잃게 된다. 

    또한 실재내용은 
    그 내용을 끝내 얻을 수 없으며, 
    현상 내용과 실재 내용 사이에서는 서로 그렇게 상응관계나 
    비례 관계, 동일관계, 유사관계를 모두 
    단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추리는 다시 그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한편, 
    관찰자 1 자신이나 
    다른 사람 2 의 경우에나 
    사실은 정신이란 그릇이 놓이는 
    어떤 지점을 현상 안에서 찾아 제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히려 정신이란 그릇은 
    현상안의 모든 내용을 
    그 안에 담고 있는 그릇으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현상안 내용물을 다 담는 그릇의 위치를 
    그 그릇이 담고 있는 현상안 내용물안에서 
    찾아내는 것은 곤란한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현상적으로는 
    2 가 스스로 그 자신의 모습이라고 보는 2 *의 내용이 파괴되거나 변경되면, 
    또는 관찰자 1이 2 의 육체라고 보는 2 의 내용이 파괴되거나 변경되면, 
    또는 관찰자 1이 자신의 육체라고 보는 1 의 내용이 파괴되거나 변경되면, 
    그에 따라 각각의 정신 내용물이 변화되는 관계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이 각기 파괴되면 
    자신의 정신이란 그릇도 파괴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육체의 죽음과 정신의 소멸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상식적 믿음이다. 

    그러나, 앞의 관계성은 어디까지나, 
    실재의 관계성에 대해 현상적으로 파악해낸 관계성에 불과하다. 

    오히려 정신이란 그릇은 
    그 안의 모든 정신안 내용물이 다 사라지고 없어져도 
    또 다른 구비조건만 충족되면 
    또 그 안에 정신안 내용물을 채워 넣는 
    그릇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정신안 내용물 가운데에서 
    일부의 정신안 내용물[ 즉 각각의 육체 ]과 
    정신안 내용물이 일정한 관계를 갖는 것처럼 파악되더라도 

    그것은 오직 정신안 내용물을 그와 같이 
    얻어내는 데에서만 작용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선
    다시 현상안의 존재, 즉 정신안 내용물을 모두 다 비운 가운데 
    그리고 나서 정신이란 그릇은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되는가를 
    관찰하는 실험이 별도로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잠정적 결론은 

    근본 정신은 정신이 어떤 실재적 주체 상태나, 현상적 육체와 관련하여 
    각 생에서 어떤 정신적 내용물을 얻고 
    어떤 내용을 그 자신의 육체로 파악하게 되는가와 관계없이 
    그 근본정신의 존재는 유지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매 생마다, 다른 생명의 형태로 바꾸어 살아가게 된다고 보는 것은 
    이 근본 정신이 매 생마다 
    다른 육체와 관련하여 정신 내용물을 얻어 갖게 되는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비록 정신을 
    관찰자 1 자신이 얻는 모든 정신적 내용물[=현상적 내용 전체]를 포함하는 것이고 
    따라서 정신의 위치를 
    관찰자 1 자신이 얻는 모든 정신적 내용물[=현상적 내용 전체]를 포함해 담을 수 있는 
    어떤 위치에 놓이는 그릇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때에도 

    이 정신이 그 정신안 내용물의 변화와 큰 관계없이 
    그대로 이어지고 유지된다는 것은 
    별개의 실험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론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현상적 내용물들의 구성요소로서 
    고체, 액체, 기체, 에너지, 공간 등을 나열하는 가운데 
    현상의 모든 모습이 변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이들 근본 재료 자체는 늘고 줆이 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질량 에너지 불변의 법칙의 내용과 유사하다. 
    이는 현상적으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실재내용과 관련해서는 
    그 내용을 역시 얻을 수 없는 것이므로, 
    늘고 줆 자체도 역시 말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여하튼 현상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들 근본 재료 요소는 
    그 구체적인 모습의 변화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관념하게 된다. 

    이 때 이들 현상적 요소를 모두 그 안에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현상적 요소인 정신이란 그릇도 
    이와 같은 사정을 갖는다고 이해해야 한다. 

    즉, 
    앞에서 현상적인 근본 재료 요소를 나열하는 과정에서 
    빠뜨리기 쉬운 
    또 다른 현상적 요소
    즉 이들 현상적 내용물과 요소를 모두 그 내용물로 담게 되는 
    현상적 요소인 
    정신이란 그릇도 

    정신안 내용물의 근본재료 요소가 그러하다고 보듯, 

    정신안 내용물이 매 순간 변화하고 모습을 달리하고, 
    그 정신의 작용이 매순간 변화해가는 것과 관계없이 
    일정하게 계속 이어져 유지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현상적 요소를 인정할 때 
    현상적 범위에서는 그 근본재료들이 
    모두 늘고 줆이 없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과 
    같은 내용인 것이다. 

    ....












    ● 정신이 왜 정신 내용물의 변화 파괴와 관계없이 계속 유지된다고 볼 것인가. 

    Ω♠문서정보♠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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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3-10-09-수-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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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ж[ 웹 ]ж [web] http://essay007.tistory.com/883 ♠● 정신이 왜 정신 내용물의 변화 파괴와 관계없이 계속 유지된다고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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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un Tokyun 2013/10/09 14:31   

    lab님의 글을 보면서 
    일체 유심조라는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시간이 늦게 밥을 먹으려 하는데 
    생각해보니 정신의 위치나 정신의 정체를 밝히는 문제는 

    그릇에 밥을 넣고 그릇 안의 밥 안에서만, 
    그 그릇을 찾아 보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원래, 밥만 볼 때는 밥만, 현상적 내용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 밥을 담은 그릇이 보이지 않더라도 
    밥을 현상적 내용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담긴 그릇도 현상적 내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lab님이 제시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그 밥과 그 그릇에 대한 실재내용을 
    또 생각해 나가는 것인가요.
    여하튼 추후 논의를 기대해봅니다. 

    ●일체유심조

  • Lab value 2013/10/09 17:35   

    ● 인과관계의 판단 착오 

    우리는 예를 들어 

    눈을 뜨면 사물이 보인다. 눈을 감으면 사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다. 
    또는 종이에 불을 붙이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나는 것을 관찰한다. 
    또는 화분을 탁자 위에 올려 놓으면, 공중의 화분과는 달리 화분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도 관찰한다. 
    또 막대기를 세개 서로 지지해 놓으면 서로를 의지하여 세울 수 있는 것도 관찰한다. 
    그런데 이들 모든 요소 즉 종이, 불, 연기, 재, 화분, 탁자, 막대기...등은 
    모두 우리가 눈을 떠서 얻거나, 귀로 대하거나...손으로 만지거나 해서 얻은 내용들이다. 
    또한 이들 각각은 그렇게 얻은 내용에 대해 다시 분별을 통해 관념을 세워 얻은 내용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서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은 
    사실은 우리의 마음 안 내용물을 이처럼 서로 관련시켜 이해하는 방식임을 
    생각해야 한다. 

    마음은 매 순간 이전의 내용과 다른 내용이 점유하게 된다. 

    그래서 사실 마음을 하나의 창고처럼 이해한다면, 
    창고 안의 내용이 비워져야 그 안에 다른 내용이 들어가게 되는 것처럼, 
    마음 안의 내용도 앞 내용이 마음에서 자리를 비켜 줘야 그 다음 내용이 
    차지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따. 

    앞에서도 무엇을 대상으로 우리가 대하여 앞과 같은 
    마음안의 여러 내용을 얻었는지가 의문시 된다. 
    우리가 실재로 상대한 실재 대상의 내용은 무엇이고 
    또 이것과 실재로 상대한 실재의 주체와 주관 실재의 정신은 
    어떤 것일까. 
    이런 것도 의문이 된다. 

    그런데 이 실재내용은 끝내 얻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오로지 마음 안에 얻은 
    정신 내용물만을 가지고 
    현상내 여러 현상 
    즉 없다가 무엇이 나타나는 경우, 왜 그것이 나타나는가. 
    또는 무엇이 있다가 왜 그것이 사라지는가. 
    또는 무엇이 없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이것은 있는가. 
    또는 무엇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왜 이것은 없는가. 등의 
    여러 의문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 때 그 답을 현상안에서 이미 얻어 놓은 다른 내용물과 관련시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추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A가 있을 때 (,나타날 때, 없을 때, 사라질 때) B가 있고 (나타나고, 없고, 사라지고)
    그 상황에서 그 A가 없다면, (,사라진다면, 있다면, 나타난다면, ) 
    B가 없는( 사라지는, 있는, 나타나는) 그런 관계성이 파악될 때 

    이 A가 있기( 나타나기, 없기, 사라지기) 때문에 B가 있다( 나타난다, 없다, 사라진다)는
    상호 관계를 인정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현상적으로 인식하는 인과관계의 내용이다. 

    그래서 만일 이런 관계가 파악되지 않는다면, 
    즉 예를 들어 
    A 가 있거나 없거나 어느 경우에나 B가 있다면 
    A는 B의 있음에 대하여 원인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여하튼 우리가 현상적으로 이해하는 인과관계의 내용은 대강 위와 같다. 

    그런데 이 A와 B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면 이 A가 B에 대해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작용하는 관계로 잘못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 2 를 놓고 이해하면 
    이런 인과관계의 이해가 어떤 오류를 갖는 해석인지 이해할 수 있다. 

    2 는 그의 마음 5* 안에 얻어진 내용만을 얻는다. 
    즉 그의 마음 5 * 밖에 있는 내용은 그 자신은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2 가 이 인과관계의 내용이나 요소로 이해하는 것들은 
    모두 2 의 마음 안의 내용들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관찰자 1 이 이런 2 의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를 
    살피게 되면 그것이 기본적으로 오류를 갖는 판단임을 보게 된다. 

    즉 비록 2 의 판단에서는 2 의 마음 5 * 안에 들어와 있는 내용들 간에서 
    일정한 관계가 앞에 나열한 것처럼 파악이 된다고 하여도, 
    이들 각 내용은 사실은 
    서로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작용을 주고 받는 관계로 보기는 힘든 것이다. 

    즉 2 의 마음안의 정신적 내용물인 불이 
    마음안 정신적 내용물인 종이에 붙어, 
    그런 연기와 재를 나타나게 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보다는 차라리 다음과 같은 해석이 비교적 적절할 것이다. 
    즉 2가 종이에 불이 붙어 연기와 재가 나타난다고 이해하는 과정은 
    2 의 마음안 내용물들이 그런 관계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관찰자 1의 입장에서 볼 때 
    2 의 마음 밖의 내용들로서 4와 같은 내용들은 서로 관계하고 
    다시 그것이 2 와 관계하여 
    2의 마음 안에 즉 5 * 안에 
    2* 나 4 * 와 같은 그런 내용들로 인식되게 되고
    다시 이들간의 내용이 
    앞과 같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그렇게 인식하게 되기 때문에 
    그와 같이 관련시켜 이해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두번째 해석은 또 문제가 있다. 

    즉 관찰자 1의 입장에서 볼 때 
    2 의 마음 밖의 내용들로서 4와 같은 내용들은 서로 관계한다고 본 것은 
    사실은 관찰자 1의 정신안의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거꾸로 
    관찰자 1이 눈을 떠서 사물의 모습을 보게 되는 관계나 
    또는 관찰자 1이 종이에 불이 붙어 타게 되는 모습을 
    2라는 사람이 이해하기를 
    1 의 정신 밖에 있는 즉 2 자신이 보는 
    1* 이나 4* 가 서로 관계하여 그런 내용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은 해석방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사실은 다 
    정신적 내용물 즉 현상 밖의 실재 내용이 아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결국 실재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다시 관련된다. 

    ▽ 한편 인과관계를 이런 실재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할 때는 
    실재내용을 얻을 수 없고 
    또 그렇게 얻을 수 없기에 
    있다거나 없다거나 -이다 -아니다 -와 같다 -와 다르다. 
    등등의 분별을 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 실재내용을 현상의 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게 된다. 

    더욱이 실재내용은 현상 안에서 분별해 구분하는 여러 
    요소들로 그렇게 나뉘어진다거나 묶인다고 이해할 근거도 
    없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인해 
    현상내 내용물과 -> 실재내용 간에서는 
    또는 반대로 실재내용과 -> 현상 간에서는 
    서로 인과관계와 같은 관계로 이해할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게 된다. 


    한편, 일정한 감각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일정한 관념을 얻어내는 관계 등은 
    그 기본재료가 모두 정신적 내용물로서, 
    그런 정신적 내용물이 직접 관계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이 
    진리의 판단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있게 된다. 

    즉 감각내용과 관념은 그렇게 서로 일치 상응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기본적 한계가 있게 된다. 

    이는 별도로 후술하기로 한다. 

    여하튼 우리가 지금 논의대상으로 삼고 있는 여러 
    인과관계적 내용은 
    현상안에서 이들을 서로 관련시켜 이해하는 방식이며, 
    이들이 직접 실재로 서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보기는 곤란한 것이다. 

    ▽ 한편 이런 인과관계와 관련한 문제는 
    앞의 여러 문제들과 관련하여 
    실재내용과 관련시켜 이해하려는 방식에서 
    모두 같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 인과관계의 판단 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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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Lab value
    ◑[작성일]◐ 2013-10-09-수-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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